2. 신약 성경 개요
가. 신약의 뜻

성경전서는 크게 둘로 나뉘어져있다. 즉 구약과 신약이다. 그런데 신약이라는 He Kaine Diatheke(헤 카이네 디아테케)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것이다. 이 말은 새 계약, 또는 새 언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옛날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이(출24:1-8) 구약이고 예수가 최후 만찬의 자리에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맺은 것이 신약(눅22:14-20)이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이 잔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것을 상징적으로 한 말이다.

신약성서는 27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학적 성격에 따라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1) 처음 4권-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복음서
(2) 역사서 1권-사도행전은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처음 3권을 공관 복음이라고 하는데 이것들은 서로 다른 견지에서 예수님의 생활과 사역을 똑같이 기술하였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한 쌍을 이루는 책으로서 예수께서 이 세상을 마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그의 제자들이 활동한 이야기가 계속 기록되고 있으며 특히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울의 생애가 강조되고 있다. 다음 21권의 책은 서신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다음 책들-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유다서, 요한1서 등은 주로 교리적(Doctrinal)책이다.
이 책들은 대부분 교회들에게 보내는 서신 형식으로 기록되었는데 각 교회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요소들과 그리고 기독교 윤리의 실천을 가르치려는 목적에서 기록된 것이다. 이것들은 아마 로마서를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논증하려고 기록한 것이 아니다. 주로 교회들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비공식으로 다루면서 그 해결책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책들-디모데 전 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요한2,3서등-은 개인적인 책들이다. 이 책들은 어떤 무리들에게 쓴 것이 아니라 개인들에게 사사로운 서신으로 쓴 것으로서 개인적으로 가르치고 충고하려는 목적에서 쓴 것이다.
그러나 이 서신의 수취인들이 각 교회의 지도자들이기 때문에 이 책들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개인적 서신으로 보다는 교회들을 위한 공공의 문서로서 받아 드린 것이다. 한편 위의 서신들을 저자에 따라서 분류하여 바울 서신, 히브리서 및 보통서신으로 나누기도 한다.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예언적(Prophetic)인 책이다. 이 책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환상들과 초자연적 현상들이 포함되어 있어 크게 상징적인 스타일을 취하고 있어서 계시문학에 속한다.
나. 신약 책들의 기원
최초의 완역성서는 옥스퍼드의 학자 존 위클리프와 그의 후계자들의 번역본이며 이 필사본은 1420년경에 번역된 신약성서로 오늘날 현존하는 170권 중 의 하나이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 거의 20년 동안은 신약의 어느 책도 기록되지 않았다. 그리고 신약성서의 마지막 책이 기록되기까지는 약 65년의 세월이 경과하였다. 다시 말해서 주 후 50년경에 야고보서가 최초로 기록되고 그리고 96년경에 요한계시록이 최후로 기록된 것이다. 이 기간 동안에 초대교회는 유일한 성서로 구약성서를 소유하고 있었다. 베드로는 구약에 기초해서 그리스도를 전하였으며 (행2:16-21), 스데반은 구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의 설교에서 인용하였고(행7:), 빌립은 이사야 53장을 가지고 에디오피아의 한 내시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였다(행8:). 그리고 사도 바울은 어디를 가든 구약을 인용해서 말씀을 전파하였다. 이렇게 초대그리스도 인들이 구약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복음의 사역자 들이 그들에게 전하여 준 그리스도의 생애, 죽음, 부활, 승천에 관한 이야기로 말미암은 것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자서전을 기록하시거나, 또는 가르치신 교훈과 행하신 기사와 이적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서 기록하신 일이 없었다. 또한 그의 제자들에게 그런 것을 기록하라고 명하신 바도 없었다. 예수께서는 다만 제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셨다. 따라서 제자들은 주님의 분부대로 복음을 구두로 선포하였다. 더욱이 예수가 승천(?)한 후 얼마동안은 그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여 예수님의 생애나 교훈을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책을 기록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데다 예수님의 행적과 교훈을 직접 받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거기에다 근거 없는 전설이 끼어 들게되고 교회 안에는 일정한 교리와 규칙이 없어서 신앙과 사상에 혼란이 생기게 되고 이단 사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실정아래서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생애와 교훈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현재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순서대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서가 제일 먼저 기록된 것이 아니고 서신들이 먼저 기록되었다. 바울은 복음에 열심 있는 사도였다. 그는 갈라디아와 소아시아 각지를 비롯해서 멀리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여 그 결과 각 곳에 교회가 설립되었으며 많은 그리스 도 인들을 얻게 되었다. 바울의 전도로 복음을 받아들인 각 곳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 관해서 보다 완전하고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고 그리고 이에 대한 사실을 권위 있게 기록한 해석도 필요하였다. 한편 교회와 신자가 증가함에 따라 교회 안에는 개인적으로나 또는 단체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자연히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생활에 적용하느냐 하는 문제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서 소식만 듣게 되는 경우 바울을 위시한 다른 사도와 전도자들은 불가불 붓을 들어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바울 서신과 기타 서신은 바로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기록된 것이다. 그러다가 이와 때를 거의 같이 하거나 또는 조금 뒤늦게 그리스도 생애 자체에 대한 권위 있는 설명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예수에 관한 허다한 전설이 그 냥 구전으로 떠돌아다니는 것을 약간의 문서로 기록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이러한 문서를 재료로 하여 오늘의 공관 복음과 요한 복음이 기록되었다. 한편 사도 행전은 사도 시대에 권위 있는 역사를 기록할 필요성으로 인해 기록되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은 만물의 최후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제시하기 위해서 기록 된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에게 복음서, 사도행전, 서신들, 계시록으로 알려진 영감 받은 권위 있는 문헌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는 이 신약과 나란히 구약을 병용하였던 것이다.
다. 신약 성경를 기록한 언어
구약성서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신약성서는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헬라어에는 고전 헬라어와 일반 헬라어의 두 종류가 있었다. 일반 헬라어를 코이네(koine) 라고 하는데 신약성서는 바로 이 코이네로 기록되었다. 이 일반적인 헬라어인 코이네는 고전 헬라어에 비해서 속된 말이라는 것은 아니다. 본래 마게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하고 로마 권 판도에 통속적 세계어인 헬라어 코이네를 통용시켰다. 그것은 당시 세계 공통어인 코이네를 보급 시켜서 범 세계적인 문화교류와 정식적인 통일을 기도한데서였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처음부터 누구나 읽을 수가 있었고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가 있었다.
라. 정경으로서의 인정
정경은 헬라어 캐논(Canon) 에서 온 말로서 둥근 자 막대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는 주전 776년이래 올림픽 경기에서 판정을 내리는데 캐논을 사용하였다. 여기에서 여러 종교 문헌 가운데서 진위를 한정하여 신앙의 기준이 되는 책을 골라서 정경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성경는 기독교인의 정경이다. 이 성서만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표준이 되는 것이다. 지금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서만이 초대교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다 더 많은 복음서들이 복음서가 기록된 후에도 교계에 나돌아 다녔다. 그밖에도 많은 행전 들, 서신들 그리고 묵시들이 유포되고 있었으나 그 중에서도 특기할만한 책으로 로마의 클레멘트가 기록한 서신인 클레멘트 1서, 12사도의 교훈으로 알려진 디다케, 바나바 서신, 바울 행전, 허마의 목양서 및 베드로의 묵시를 들 수가 있다. 이러한 책들이 일부에서는 신약의 문헌들과 동등한 권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또 어떤 문헌은 어떤 한 지방에서는 성서로 인정받아 사용되었으나 다른 지 방 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래도 주 후 2세기 말에 이르러 신약은 근본적으로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성경을 인정하는 것과 같이 인정을 받는 동일한 책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들이 반드시 정경으로 받아들여질 때에 요구되는 4가지 조건이 있었다.
첫째는 사도성(apostolicity)이다.
책이 반드시 사도에 의해서 기록되었으며, 또는 책이 사도에 의해 기록되지 않았을 경우라도 적어도 그 책의 저자가 사도와의 관계를 뒷받침해서 자기가 쓴 책이 사도가 기록한 책과 동일 수준에 오르도록 되어있느냐는 문제이다.
둘째는 내용(contents)이다.
어떤 책의 내용이 정경의 계열에 오를 만큼 내용이 영적 성격을 띠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세째는 보편성(universality)이다.
그 책이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을 받아 용납되었느냐 하는 문제다.
네째는 영감성(inspiration)이다.
그 책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증거를 내보이고 있느냐는 문제이다. 이것이 최종적인 시험인데 이상의 모든 것이 결국은 영감 성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위와 같이 4가지 조건에 의해서 정경으로 받아들이는데 대체로 두 그룹이 있었다. 하나는 만민이 보편적으로 논란이 없이 정경으로 인정했던 책들(이것을 호모로구메나 Homologoumena-라고 한다)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경으로 인정 받기에 다소간 반대를 당했던 책들(이것을 안티레고메나 antilegomena-라고 한다)이 있었다. 오늘날의 성서가운데서 초대교회 소수 지도자들에게 정경으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했던 책은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후서, 요한2서, 요한3서, 히브리서, 및 계시록 등의 책이었고 나머지 책들은 아무 논란 없이 정경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정경을 재정 할 때에 우연히 어떤 개인의 의견으로 단시일에 결정된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여러 사람의 신중한 연구와 토의 끝에 결정된 것이다. 이러한 정경을 재정 하는 운동이 개인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는 주 후 140년 마르시온(Marcion)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였다. 그 후에도 189년 이레니어스(Irenaeus)와 367년 알렉산드리아 감독 아다나시우스(Athanasius) 등에 의하여 정경이 선포되었으나 이러한 선포나 주장은 다 개인의 의견이기 때문에 교회 전체가 이를 채택할 수가 없었다. 3세기 동안에 걸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안티레고메나의 정경에 대해서 논쟁이 있었는데 동방 교회에서는 특별히 요한계시록을 반대하는가 하면 서방 세계에서는 히브리서를 반대하였다. 이러한 4세기 동안에 걸친 정경에 대한 논란은 서방세계에서 먼저 일단락 되었다. 그간에 여러 번 종교회의가 있었지만 정경에 관한 문제를 회의가 취급하지 않았었다. 397년 칼타고에서 어거스틴이 친히 참석한 제 3차 종교회의에서 처음으로 정경에 대해 회의상의 결정을 내렸다. 이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 가운데에는 (정경으로 인정받은 책)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책도 성경이란 이름 아래 교회에서 읽을수 없노라고 했다. 그리고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는 책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오늘의 27권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었다. 이 회의 후로는 서방 교회에서는 어느 책에 대해서도 반발이 없었다. 그러나 동방에서는 그 후에도 일부 책에 대한 논쟁이 한동안 계속 되었으나 5세기 말에 가서 정경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 후 현대에 와서 1546년 트렌트(Trent)회의에서 다시 한번 27권을 신약의 정경으로 선포하였으며 1643년 위스터민스터 신앙고백에는 27권의 이름을 밝혀 다 싣고 있다. 위에서 본대로 약 250년 동안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경합되어 신약성서가 27권으로 낙착된 것이다. 성서가 27권으로 낙착된 과정은 예수의 영향을 받은 백인들과 유대인들에 의한 것이었다.
마. 신약의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각 책의 주제
1. 마태복음 : 메시야의 복음 (왕되신 예수)
2. 마가복음 :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섬기러 오신 예수)
3. 누가복음 : 구주의 복음(잃은 자를 찾으러오신 예수)
4. 요한복음 : 믿음의 복음(하나님의 아들 예수)
5. 사도행전 : 성령의 복음
6. 로 마 서 :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
7. 고린도전서 :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
8. 고린도후서 : 바울의 사역 편지
9. 갈라디아서 : 그리스도인의 자유
10.에베소서 :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연합
11.빌립보서 : 그리스도 안의 기쁨
12.골로새서 : 그리스도의 우월
13.데살로니가전서: 새 교회의 성장
14.데살로니가후서: 교회의 기대(주의 재림과 교회)
15.디모데전서 : 젊은 교역자 에게 주는 충고
16.디모데후서 : 복음 위해 싸우는 예수의 군병
17.디 도 서 : 건전한 교회
18.빌레몬서 : 그리스도인의 형제 사랑
19.히브리서 : 영원하신 대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20.야고보서 : 생활의 표준(산 믿음)
21.베드로 전서 : 고난을 통한 구원(산 소망)
22.베드로 후서 : 하나님의 참 지식(보배로운 믿음)
23.요한 1서 : 영생의 확신(하나님의 참 사랑)
24.요한 2서 : 충성(참 진리)
25.요한 3서 : 진리의 실천
26.유 다 서 : 배교에 대한 경고
27.요한 계시록 :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6. 신약의 저술 시기, 저자, 저작 장소
1. 마태복음은 80-90경 디아스포라 출신의 한 레위인 그리스도교도가 시리아의 안디옥 교회에서 썼다고 하며 그는 사도 마태와는 다른 인물이다
2. 마가복음은 50-70경 한 레위인 그리스도 교도가 갈릴레아(또는 로마?)에서 썼으며 16장9절 이하는 후세의 사본가가 가필을 하였다.
3.누가복음은 저자가 바울의 제자 누가라고 하나 바울 계통의 이방인 그리스도교도가 80-90경 불명의 장소에서 누가의 이름으로 지었다고 한다.
4 요한복음은 그노시스 파가 아닌 그리스도 교도로써 여러 종교와 사상을 잘 아는 인물이 0-100년 어간에 시리아에서 썼고 후에 유대 계와 헬레네즘계의 교회적 편집가필이 있었다고 본다.
5 사도행전은 80-90년 경 누가복음의 경우와 같으며 사실은 누가복음의 제2부가 된다.
6 로마서는 57-58년경 바울이 고린도에서 썼고 그리스에 있는 미지의 로마교회 방문하면서 쓴 그의 사상적 자기소개이다.
7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55-56년 경 에베소에서 썼으며 그 목적은 소아시아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8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55-57년 경 마케도니아에서 썼다.
9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57-58? 에베소?에서 신앙 칭의론을 중심으로 썼다.
10에베소서는 제2의 바울이 80-100 경 소아시아에서 쓴 편지 형식의 교회론이다
11빌립보서는 바울이 57-61년 가이샤라 감옥에서 쓴 옥중편지이다.
12 골로새서는 바울 또는 제2의 바울이 58-100년 가이사랴의 옥중에서 쓴 편지
13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이 50년경? 고린도?에서 쓴 바울의 편지 중 가장 오랜 편지이다.
14 데살로니가 후서 제2바울의 문서로서 1세기말 불명의 장소에서 쓴 편지 체제의 종말론이다.
15 디모데 전서 제2바울의 편지 형태 문서로 통칭 목회서신이다.,
16 디모데 후서 동일저자에 의해 2세기초 불명의 장소에서 쓴 편지체제의 교회 운영의 교훈이다.
17 디도서
18 빌리몬 서 바울이 58-60 년 가이사랴?에서 쓴 개인에게 보내는 옥중 편지
19 히브리서 헬레니즘과 유대교를 잘 아는 인물이 80-90 유대인의 개종을 위해 쓴 신학이며 논문이다.
20 야고보서 어느 유대인이 야고보의 이름을 빌어 1세기말경 편지 체제로 쓴 바울주의 식 그리스도교를 비판하기 위해 쓴 글이다.
21 베드로전서 90-95 도미니티아누스 황제의 핍박이 심했던 시절 로마?에서 베드로의 이름을 빌어 쓴 것으로 사도 베드로와는 무관하다.
22 베드로후서 100-130경 미상 인물이 유다서를 자료로 썼다
23 요한1서 요한복음의 영향 90-110 시리아? 편지가 아니라 신학논문을 받은사람
24 요한2서 23의 저자와 비슷하나 90-110 시리아? 실제의 편지
25 요한3서 다른사람?
26 유다서 유대인 그리스도교 1세기말에 불명서 2세기초
27 요한계시록 유대인 그리스도교도가 90-95년 경 소아시아에서 쓴 것으로 도미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아래 쓴 것으로 보이며 사도 요한과 무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