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한국의 국사교과서 문제
1. 역사에 대한 정의
역사(歷史, 문화어: 력사)는 오랜 역사, 지난 시대에 남긴 기록물, 이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 등을 가리킨다. 또 인간이 거쳐온 모습이나 인간이 행위로 일어난 사실을 말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역사라는 말은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기술의 두 측면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는데, 레오폴트 폰 랑케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밝혀내는 것이 역사가의 사명이라고 하여 객관적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에 비해 에드워드 핼릿 카는 과거의 사실을 보는 역사가의 관점과 사회 변화에 따라 역사가 달리 쓰일 수 있다고 하였다. 역사 연구란 이야기(narrative)를 통해 연속된 사건들을 검증하고 분석하며 종종 인과 관계를 객관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역사학은 고고학, 사회학 등의 주변 학문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역사라는 개념은 또한 넓은 의미에서 사건이나 사물의 자취를 총칭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역사학자들은 과거를 연구하기 위하여 많은 자료를 탐색한다. 이 자료들은 1차 사료와 2차 사료로 구분되는데, 1차 사료는 어떤 사건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이 남긴 문서, 기록 등이다.
이상의 내용이 서구의 대영 백과사전에 있는 역사의 정의인데 이 내용은 백인들이 인본적, 과학적으로 내린 정의로 인간의 생명에 가장 중요한 인간의 치료 및 마음에 대한 것을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며 과거의 기록에만 의존함으로써 문명시대의 기록 이전에 있었던 문명시대의 10배가 넘은 언어시대에 일어난 일은 다루지 못한다.

2. 한국사 문제
가. 국사(國史)라는 이름
한국사는 국사라는 그 이름부터 잘 못되었다. 국사의 국(國)은 나라 국이라는 한문으로 국사편찬위원회의 2013년도 홈페이지 설명에 의하면 “王朝의 흥망을 기준으로 보는 견해가 행해져 왔다”고 했는데 현재 왕조가 전 왕조를 비하한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결론으로 합당하지 못하다. 한문 자체가 중국 글자임으로 더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국사라는 이름의 기원이 신라 진흥왕6년 기원 후 545년 이사부에게 왕조에 관해 기록할 것을 명하고 이를 국사라고 한데 있으므로 왕조에 국한된 이름임에 틀림없다. 역사가 우리 민족의 과거를 알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라면 국사는 안된다 민족사로 바꾸어야 한다.
나. 국사가 다룬 지역
2013년 국사편찬 위원회에서 운영한 우리역사넷 홈페이지의 01권 한국사의 전개, 총설 한국사의 전개, Ⅰ. 자연환경에 보면 국사의 다루는 지역의 범위를 사극, 행정구역, 위도,경도로 나누어
극동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동경 131도 52' 42"

극서 평안북도 용천군 마안도 서단 동경 124도 11' 00"
극남 제주도 남제주군 마라도 남단 북위 33도 06' 40"
극북 함경북도 온성군 유진포 북단 북위 43도 00' 30"

로 표기함으로서 한반도 안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다고 명시했다.
이 같은 국사지역이 다루는 범위는 한반도 지역 내 일어난 과거를 다루는 것으로 만약 한반도 사람들 중 대부분이 한반도 왕조시대 이전에 다른 곳에서 먹을 것을 찾아, 또는 추위를 피하여 , 전쟁이나, 박해를 피하여 이동해 왔다면 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다. 국사가 다룬 기간
정부의 국사교과서가 다루고 있는 기간은 고조선 이후 삼국 시대부터 약 2,300 년 간이다. 이는 유럽식 시대 구분 방식인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와 철기시대를 본 따 구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 전기(기원전 300~기원전 1년)와 한국 고대국가의 형성(위만조선기원전 194~기원전 108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2.300여 년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이 기간으로써는 호모사피엔스 16만 년의 장구한 역사를 알수가 없다.
라. 과거 국사에 대한 충격들
1) 1992년 이홍규 교수 팀 미토콘드리아이브 인간 유전자 이동도 완성
2) 박창범 교수의 삼국시대 천문 현상 지상 관측지점 분석
3) 한단고기의 발견
4) 기원전 1,3만 년 전 흑피옥 발견
5) 요동성 인근 볍씨와 인골 유적 발견
이상의 과학적 증거들은 한국사의 지평을 기원전 6만 년 이상 바이칼--> 요동-->중국-->한반도로 이르는 민족의 장구한 민족사로 정리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고 이 책이 바로 이러한 충격들을 정리한 민족사의 해답이다.

나는 1943년 8월 23일 세계 제2차 대전, 태평양전쟁 중에 북한 함경남도 장진에서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1945년 6월에 월남해서 경남 양산시에 내려와 살게 되었고 그 후 부산으로 유학을 와서 경남중학교와 경남고등학교를 다녔다. 나는 집안 형편으로 대학 진학이 어려워 육군사관학교로 진학을 했다. 임관 후 얼마 되지 않아 월남전에 참가. 1년 반 동안 장거리정찰대장을 하면서 총 11회 베트콩과의 접전을 했는데 당시로는 최다 빈도(11회)를 기록했다고 한다. 백마사단 29연대 종군기자로 나와 있던 안정효 씨가 나와 우리 정찰대를 모델로 전쟁 소설"하얀 전쟁"을 쓴 것도 이 때였다. 그 후 모교인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전사학과에 소속되어 3년 간 생도들에게 6.25전쟁 사를 가르쳤다. 그 후 수도기계화 사단 수색중대장, 보안사령부 정보장교, 한미 제1 야전 사 보안반장을 거쳐 육군대학에 입학했고, 중령 진급 후 33사단 100연대2대대장을 거쳐 동경사 인사, 정보(대령), 작전참모, 보병 제53연대장 육군본부 작전기회과장을 끝으로 의원 제대를 했다. 의원 제대 후 나는 바로 병사들을 위한 군 선교사(목사)가 되었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군 문서선교지인"포도원 편지, 혹은 "월간 포도원"을 만들어 내무반당 1권씩 무료로 보내고(비용은 교회 헌금과 광고로 충당) 입대하는 병사들에게 군 선교사 양성 교육을 해 왔다. 1996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장로교 합동정통교단(현 천안대학교, 기독신학대학)에서 선교목사, 월간포도원 발행인, 도서출판 포도원 대표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3년 9월 저자 차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