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구약성경 다시 보기
구약성경은 모세오경, 역사서, 시가서(문학서), 예언서로 분류되는데 1. 모세5경은 창세기 출에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있고
2. 역사서로 유대교 형성시기에 쓰여졌을 것으로 보이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와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 다시 쓰여진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가 있고
3. 시가서 또는 문학서로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가 있으며
4. 예언서로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및 소예언서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있다.
5. 제2경전 혹은 외경으로는 토빗기 유딧 에스더 지혜서 시락 바룩 예레미야의 편지 다니엘 마카베오 1서 마카베오 2서 마카베오 3서 마카베오 4서 등 총 43권이 있는데
저자와 저작시기는 모세 오경은 기원 전 1446년 이후 광야 방랑기간에 유대교 설립자들이, 일부는 그 후에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 쓰여졌다고 하나 민 희석 교수(한양대 비교종교학)는 근동 민족들의 신화와 전설이 구약성서의 원전이라고 주장한다. 필자의 생각은 구약은 모두 유대교의 핵심 세력인 레위인들이 유대인들을 레위 중심 제사 집단으로 결집하는데 유익한 모든 자료를 활용하여 조작한 기록이라고 본다. 특히 모세의 존재는 원래 없었고 사실은 그 이름은 에굽의 제18왕조의 제10대 왕인 이크나톤아멘호테프 4세 (재위 BC 1379~BC 1362)의 행적과 남메소포타미아의 영웅 사르곤의 탄생을 결합시켜 조작한 인물로 본다. 특히 구약의 출 에굽 시기는 기원 전 1447년으로 람세스 2세의 통치 시기인데 당시의 그 어느 역사 기록에도 에도 모세와 유대인 탈출에 관한 자료가 없다. 따라서 구약은 처음부터 레위인들에 의한 자신들의 종교국가 건립 및 권력 장악을 위한 조작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
I.모세오경
가. 개요(구약 작성 배경)
모세 오경의 경우 야곱의 자손들이 에굽에서 탈출하여 광야로 나갔다는 사실 외에는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첫째 의문은 왜 유대 민족은 왜 하필 레위를 중심으로 에굽을 탈출하였을까?
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비롯하여 가나안에서 들어온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 72 가족들이 400년 간 어떻게 살았을지 생각해보면 명약관화해진다. 처음에는 요셉의 권력을 등에 업고 제 조상들을 닮아 재물 모으기에 혈안이 되었을 것이고 나중에는 그 돈으로 태양신의 사제로서 에굽의 권력을 쥐고 있었던 아몬 신 사제들과의 불화를 일으켰을 것이다, 고센 지방에서의 노역은 레위들이 만들어낸 말이고 실제로 그들은 탈출 시에 종들과 많은 금은보화를 휴대하고 나왔으며 이는 하루 이틀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에굽에 정권다툼이 일어나자 이들과 반 아몬 사제들 파(아크나톤 왕자 세력으로 추정)와의 연합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이 때 아크나톤 왕자는 왕권을 이용해 태양신 사제들을 몰아내고 빛의신인 아톤 신을 섬기자고 주장하고 세력을 결집하고 있었고 이스라엘인들은 레위를 중심으로 그를 따랐다.
두 번째는 창세기 기록을 어디서 인용했을까? 하는 것이다.
최근에 서양의 고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발견한 바에 의하면 창세기는 수메르의 창세 신화 에누마 엘리쉬 서사시를 거의 그대로 베낀 것임이 드러났다. 그 실례를 들어 보자.


* 에누마 엘리쉬의 도입 부분
① 문서의 창조 이야기(창세기1:1-8)
하느님(엘로힘)이 천지를 창조하신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테홈) 위에 있고,
강한 바람(루하 엘로힘)은 물 위에 움직이고 있었는데,
하느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느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하느님이 말씀하시기를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셨다. 하느님이 이처럼 창공을 만드시고서, 물을 창공 아래에 있는 물과 창공 위에 있는 물로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이 창공을 하늘이라고 하셨다.
②야훼 전승의 창조 이야기(창세기 2:4-9)
주 하느
님(야훼)이 땅과 하늘을 만드실 때에,
주 하느님이 땅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 한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땅에서 물이 솟아서, 온 땅을 적셨다.
주 하느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주 하느님이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을 일구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③<에누마 엘리쉬>의 시작 부분
위에 하늘이 아직 불리지 않았고
아래 마른 땅이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 때
신들의 아버지 태초의 압수와 신들을 낳은 모체 티아마트가 자기들의 물을 한데 섞고 있었다.
늪지가 형성되지도 않았고 섬도 나타나지 않았다.
신이 나타나지 않아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고 운명이 결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신들이 그들 안에서 생겨났다.

세 번째는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을 강점하고도 왜 백인의 관습을 존중하면서도 유일신 신앙을 고수하는 유대교를 만들었나?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술한 이스라엘의 전통적 가치관에 있다. 원래 장사치들이었던 유대인은 자신들의 5대조인 에볼라가 세운 도시 국가 에볼라 시대부터 자신들의 전통신인 여호와(에볼라 도시 신 수천 개의 통칭)를 중심으로 뭉쳐야 살 수 있었고 이 신들 속에는 수메르의 수천 개의 신들과 유럽 원주민 백인들의 토속 신들과 모두 섞여 있었다. 특히 에볼라는 수메르가 아닌 동서 연결지점 시리아의 교역 도시였으므로 재물신이 가장 중시되었다. 그래서 아브라함부터 부인을 팔더라도 재물을 모아야 하고 타민족에게서 무조건 이기고 뺏어야 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러한 신이라야 자신들의 신의 뜻인 가나안 침략을 합리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넷째 의문은 유대인들은 왜 걸핏하면 에굽으로 피난을 가고자신들을 보호하고 가족이 되고 키워준 에굽에 왜 매번 앙갚음을 하는 일을 반복하고 “함은 영원히 야벳의 종이 되리라” 는 등 말도 안 되는 악의적인 기록만 남겼을까?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수메르 출신 유대인이 보기에는 에굽은 아들을 바치거나 수메르인과 아프리카인의 혼혈로서 수메르 인들에 의해 개발된 지역으로 만만한 미개인이었다. 둘째는 이스라엘의 장사꾼 습성이다. 부인을 팔고(아브라함, 이삭) 친족이라도 돈이 되면 모두 빼앗고(야곱의 사기로 장자 권을 빼앗고 삼촌 라반의 딸들을 빼앗은 짓) 돈이 되면 침략과 착취를 자신들의 여호와의 뜻이라고 하는 에벨 때부터 내려온 민족적 장사꾼 습성 때문이었다. 셋 째는 유대교의 창시자라고 하는 여호와신이 살육과 전쟁의 민족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에굽 의 신 “아몬신”(태양의 신)만 배반했을 뿐 아니라 광야에서의 지휘체제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고 딸을 내준 이드로 제사장과 그 후손들을 여호와의 뜻이라면서 모두 학살하였고 가나안의 선 주민 팔레스타인(당시 블레셋, 지금 2012년 팔레스타인)을 침략하고 거민들을 학살하였는데 이러한 관행은 그리스도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에 편승한 서양 민족들에게 전승되어 왔고. 유대인들은 이 때부터 알게 된 돈의 힘으로 21세기인 지금까지 약 4천년동안 인류를 지배해 왔는데 그 시원이 바로 이웃 나라들과 전 세계에서 돈과 상권을 빼앗는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가 현재 세계 유대 독점 투기자본과 프리메이슨의 온갖 악행과 죄악의 시원이다.
지금부터 이러한 기도에서 비롯된 레위에 의한 성경 조작의 4천 년 파노라마의 실례들을 구체적으로 들어 보자.
나. 창세기


제1장 천지 창조는 수메르의 천지 창조설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에누마 엘리쉬 즉 수메르 민족의 고향인 북쪽 스텝 지역의 전설을 옮긴 것이다. 주요 구절을 바로 보면 다음과 같다.
태초에“: 한국인의 경전인 천부경에는 태초에 관해 시작이 없다는 뜻으로 일시(一時) 무시(無始)라고 쓰고 있으나 유대인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인간이 만든 것으로 쓰고 있는 점이 다르다 하나님께서의 하나님은 영어로는 "God"인데 이를 직역하면 큰 신이다. 이 말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하나님으로 바뀐 것이다.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자 로스목사는 하늘이라는 의미인 ”하느님“으로 하자고 했고 현재 천주교에서도 ”하느님“으로 번역하여 쓰고 있으며 우리나라 애국가와 일반에서도 하느님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개신교는 도입 초기 선교사들이 조선 선교에 비효과적이라는 이유로 하나님이라고 하자고 주장한 것을 평양 신학교에서 ”하나님“으로 이를 받아들여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 한국 개신교의 하나님이 되었다. 그래서 그 결과로 평양에서 김일성이라는 악질 기독교인이 나왔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음” 은 유럽 대륙의 평균 위도가 75도 인 반면 대서양 난류와 지중해성 기후로 우리 나라만큼 따뜻한데서 선주 네안데르탈인들과 서진 한 아리안 인들의 혼혈인(현재의 백인)들이 본 세계가 북극에 가까워 어두웠던 데서 기인된다. 반면에 규원사화(揆園史話)의 창세기에는 네안데르탈인들이 햇빛을 따라 동진한 관계로 “세상에는 햇빛만 비추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훨씬 과학적이고 정직한 기록으로 신뢰가 간다. 연구를 거듭할수록 천부경, 부도지, 환단고기, 격암유록 등 조상들의 역사기록은 위서가 아님을 느낀다.
“ 하나님의 신이” 온 세상이 아닌 “수면 위에 운행한다”는 것도 메소포타미아나 그리스, 로마 등 유럽에서의 생존이 물과 관련이 깊은데서 연유한다. 스칸디나비아반도, 영국,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 전체가 바닷가였으므로 하느님은 당연히 수면에 운행했을 것이다. 창조 순서 마지막 안식일에 대해서는 백인들과 유대민족의 근본과 관련이 있다. 백인들은 어두운 상태에서 밤낮을 보내었기 때문에 요일 개념이 필요 없었을 른 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에볼라나 인근에서 백인들과 밤낮 없이 교역을 하거나 백인 지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해야만 했는데 이러한 생존 환경 때문에 창세기에 창조기간을 7일로 정하고 마지막 날을 쉬는 날 즉 안식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제7일은 이스라엘인들이 쉬는 날이지 한국인들을 포함한 다른 민족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반면에 고조선에서는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것이었다. 유대인의 인본주의 작품 중 가장 큰 걸작은 여호와이고 그 다음이 이 안식일이다. 현대인은 이러한 제도를 바보같이 따르면서 건강을 위하여 잠을 많이 자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자는 등 바보 같은 짓을 계속하고 있다.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수메르의 닌티 신화에서 따 온 것이다.

* 닌티 신화
“태초의 혼돈 속에는 바다의 여신 티아맛(Tiamat)과 담수를 다스리는 신 압수(Apsu)가 있었다. 티아맛의 거대한 몸 속에는 에아(Ea)와 다른 자녀 신들이 창조되어 있었다. 이들이 소란스러워 지자 압수는 이들을 죽이려 하였으나 현명한 신 에아가 먼저 주문으로 에아를 죽인다. 티아맛은 새 남편 킹구(Kingu)와 함께 전쟁에 나서는데 이때 태풍의 신 마르둑(Marduk)이 나서 티아맛을 죽인다. 승리한 마르둑은 바다의 신 티아맛의 시체를 둘로 갈라 하늘 위의 물과 땅 위의 물로 갈라놓는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고 신들의 모습대로 성좌를 마련하고 해와 달과 태양을 만들어 시간과 계절을 구분하여 만든다. 타아맛의 가슴으로부터 산을 만들고 두 눈을 뽑아 유프라데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흘러나오게 하고 신들의 거처로 바벨론을 세우게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킹구를 잡아죽인 후 진흙에 그의 피를 섞어 인간을 만든다. 그리고 인간으로 하여금 신들이 하던 노역을 대신하게 하여 신들은 안식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에 신들은 마르둑의 위대한 업적을 기려 그에게 신들의 왕의 지위를 내어 주고 찬양하며 충성을 맹서한다.”(민희석 저 “성서의 뿌리” 35P, 2008.11 서울, 강남구, 불루리본)

* 마르투크: 수메르 부족들의 도시간 전쟁에서 최종에 승리한 도시 신 이름으로 말뚝에 붙어 있는 신이라는 의미, 말뚝은 요즘 군대에서 “말뚝 박는다”라는 것과 같은 의미. 떠돌아다니며 수렵과 채취를 하던 북방스텝부족으로 하여금 한곳에서 농사를 짓도록 하는데는 말뚝이 최고였을 것이고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도시간 전쟁에서 죽어라고 싸워 이겼으리라 보임. 이들은 기마 부대를 보유했던 것으로 보이며 말을 고정시키고 농지의 경계표시를 위해 말뚝이 필요했으리라 보임. 이 신이 기원 전 17-8세기 아카드의 사르곤이 우르를 점령할 때까지 존재했고 그 이름이 멜기세덱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아브라함을 축복해준 멜기세덱의 원조로 보인다.

* 한국어 고어(실담어: 고조선어)에서 말뚝의 어원
말뚝 [명사]1 땅에 두드려 박는 기둥이나 몽둥이. 아래쪽 끝이 뾰족하다.
말둑? [명사][옛말]말뚝의 옛말.박통사언해(1677) 하:5子 말둑역해유해(1690) 상:17말뚝은 나무의 어원이다.(아래아 모음)[;木]+[;木]+[;木]->[다마기->나마기->남기;木](고어)(음절도치)[;木]+[;木]+[;木]->[말두기->말둑->말뚝;?]
말을 땅에 고정시켜 두기 위해 끝을 뾰족하게 깎은 작은 나무의 통 기둥, 주로 그 자리를 고수한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창세기의 제작자인 레위들은 수메르의 영향을 받은 에굽의 지도층에서 이 자료를 얻은 것으로 보이며 다른 아브라함의 자손들도 장사치 출신들임을 미루어 이들이 수메르 신화에 대한 접근은 충분히 가능하였으리라 본다. 참고로 우리가 더 알아야 할 것은 유대인의 본류인 수메르 인들은 우랄 알타이 및 바이칼 지역에서 살다가 알타이와 천산 일대에서 발견된 철광석과 그곳에서 만나게 된 말을 이용하여 환인조선 말기나 환웅조선 초기에 이 집단에서 벗어난 남성 중심 부족들 중 하나로 보인다.(부도지 제8장 오미의 난 참조)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를 그리스 어로 수콜로티(즉 “수 골 씨”로 발음)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암 골 씨와 반대되는 말로 한인조선의 이(邱)(예: 구을리邱乙利)자가 붙은 여인 왕들의 이름과 괸련 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이 환인 조선에서 왔다는 또 다른 근거는 1. 주문을 왼 것 2. 모계 사회인 점. 3. 수메르에서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아누님” 으로 부른 점(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살았던 갈데아 우르에서도 유일신을 아누님이라고 불렀다)


안식일에 대해 고고학자 로린슨이 판독한 수메르 점토판에 바빌로니아 안식일에 관한 내용이 있다. "제7일은 마르둑과 자르파니트의 축제일이다. 그 날은 악한 날이다. 위대한 백성의 목자는 연기 나는 숯불 위에 구운 고기를 먹지 말 것이니라. 그 몸에 겉옷을 갈아입지 말 것이요 깨끗한 것을 입지 말지니라. 그는 희생 제물을 드리지 말지니라. 병거를 탄 왕은 달리지 말 것이요. 그는 통치자로서 말하지 말 것이라. 제사장은 비밀스런 곳에서 신탁을 말하지 말라. 의사는 환자 위에 그 손을 얹지 말 것이요, 악담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느니라. 밤에 왕은 마르둑과 이슈타르 앞에 그의 제물을 드릴 것이며, 희생제물을 드릴 것이니라. 그의 손을 쳐드는 것은 그 때에 그 신들에게 기뻐함이 될 것이라." 수메르 인과 레위인들이 안식일을 만든 또 다른 이유는 집단 농사와 장사를 그만 두고 대대적인 단체 휴식이나 집회(당시의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제2, 3장 인간창조와 원죄 신화

상기 에누마 엘리쉬의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의 “킹구를 잡아죽인 후 진흙에 그의 피를 섞어 인간을 만든다”와 아눈나키(70인의 생명 신들)의 남자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든 닌티의 유전자 개량에 의한 신 인류창조 이야기가 원전이다. 아담과 하와는 아다파 서사시의 아다파, 즉 아다무가 아담의 원형으로 에덴은 수메르 어로 초원 즉 수메르 인들이 원래 살았던 아시아 대륙의 북부 스텝지역을 말한다. 뱀을 사탄으로 여기는 개념은 이집트 신화에서 가져 왔다.
선악과에 대해 토론해보자.
부도지의 기록에 의하면 마고조선 시절에 인간을 지유, 즉, 땅에 떨어진 열매만 먹고살았다. 나무에 달린 열매를 따는 것은 생명에 해를 입히는 것이라는 천지인 한 생명체 인식 때문이었다. 점차 사람 수가 늘어나고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포도부터 따서 먹고 맛을 알아 서로 싸우고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는데 이를 오미의 난이라고 했다. 물론 아리안은 서쪽으로 갔다. 창세기의 선악과는 수메르인들이 고조선에서 가져온 오미의 난을 여자에게 뒤집어씌운 것으로 보인다. 배가 고파 열매를 따먹고 물고기나 짐승을 잡고 먹는 것을 누가 죄라고 하는가? 레위들은 인간의 사회화로 필연적으로 생기는 갈등, 즉 전술한 원죄의 원인을 여인의 탓으로 그 다음에 아담의 탓으로 돌렸다.

수메르인의 이상향과 그리스 신화가 에덴신화의 원전이다.
원죄는 동양의 속세와 같은 개념으로 자연의 나라인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를 버린 수메르인에게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에덴의 위치는 수메르인들은 북부 스텝지역을 통칭하는 말이었으나 천산 지역 즉 지금 키르키스탄 인근에도 있다.
그곳에는 지금도 비손강이 좁은 계곡으로 흐르고 있으며 사과,배,포도,살구,호도 등이 자생하고 광물은 수은 ,아티모니의 최대 생산국이고, 금, 주석, 우라늄, 보크사이트, 동, 철, 아연, 텅스텐, 중정석, 형석, 흑연, 마그네사이트, 염, 활석, 건자재, 광물 및 비철금속을 다량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 쪽 경계의 천산 산맥에는 성경에 나오는 화염산이 있다.


4장 아벨과 카인-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투쟁
카인과 아벨의 비극은 농경 문명과 목축 문명의 전쟁쯤으로 이해하지만 실은 인간의 하나님(농사신 가인)이 자연의 하느님(아벨)을 죽인 것이고 예수님이 아벨을 다시 살려내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자연이 베푸는 아벨의 양의 세끼 제물은 의롭게 여기고 인본주의 카인의 소산은 열납하지 아니하셨다. 재차 설명한다면 원래 하느님은 자연의 하나님으로 인간은 자연의 순리대로 자연이 주면 먹고, 살고 번식하도록 원 하셨으나 인간은 그 수가 늘어나자 식량을 조달한다는 생각으로 집단과 문자를 만들어 정보를 교환하여 땅을 개간(사실은 자연을 훼손)하는 소위 세계 4대강 문명을 만들어 자연적인 유목문명(자연이 주는 목초를 찾아 가축을 키우며 사는 삶(조선朝鮮이라는 국명의 한문 뜻에 유의할 것)을 파괴하므로서 근본적인 죄를 지었다. 하느님은 그래서 이러한 인간의 집단 문명 자체를 죄로 여기셨고(불교에서도 인간 세상을 俗世(속세)라고 한다) 모세는 이를 원죄라고 규정하고 여인이 원인 제공자로 부부가 함께 지은 죄라고 라고 하였으나 사실은 자연 파괴가 원죄이다. “하느님이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신”(창 6:6) 그래서 홍수(비)로 이들을 쓸어버리시게 되는 단 하나의 이유이다. 당시 우리의 조상 국이며 자연주의 유일신 제사의 종주국인 마고 조선(麻姑朝鮮)에서는 비를 쓰레기들을 쓸어버리는 수단으로 보았으며 지금도 우리는 기본 청소 도구의 이름을 빗자루라고 부름으로써 그 흔적이 남아 있다.

5장 인간의 수명
존 카터 코벨(John Carter Covell?1910-1996)과 존 엘렌 코벨(John Alan Covell. 1916 - 1990) 카터 코벨은 미국 태생의 동양미술 사학자로 서양인으로는 맨 처음 일본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고, 캘리포니아 주립 대와 하와이 주립 대에서 동양미술사를 가르쳤던 인물이다. 코벨은 1978년부터 1986년까지 한국에 머물며 한일고대사, 한국미술, 불교, 도자기 등에 대한 1400여 편의 칼럼을 썼고, 한국이 일본문화에 미친 영향, 한국문화의 뿌리, 등 5권의 한국문화 관련 책을 냈다. 이 책을 근거로 유네스코에서 인류의 기원이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인이라 할 수 있는 증거는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요동성 근방 만주 지역에서 대량의 곡식 탄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에서 시작되었다. DNA검사결과 자연 산이 아닌 교배종이란 것이 판명됨으로서 농사 기술이 첨단 과학을 이룩했던 것으로 판명되었고 군량미로 생각되며 불에 탄 흔적으로 보아 대단한 전쟁이 있었던 듯 하다는 의견이며 시대는 1만 7천년 전 것으로 추정되었다. 당시 함께 발굴된 인골의 DNA 검사 결과 평균 수명 1000세에 달한다는 결론을 내었다고 한다. 이 결과는 성경 창세기 5장의 의 노아 홍수 이전 사람들의 수명과 환인 조선 7대 3301년 재위 기간 400-500년 기록과 환웅과 단군조선 재위기간(87년, 45년)이 사실과 일치한다.


6-10장 노아의 홍수
메소포타미아의 지우수드라의 홍수설화, 아트라하시스의 홍수설화, 길가메쉬 서사시 홍수설화가 노아의 홍수설화의 원전으로 레위 일족이 이를 각색한 것으로 보이며 이 홍수에 대해 라이언과 피터 맨 등 일부 과학자들은 전에 지금의 흑해가 범람하여 주변 지역에 큰 홍수를 발생시켰으며, 이것이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 노아의 홍수 가설에 따르면,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뒤 온난화 된 지구의 기후가 8000년 전반부터 건조해지면서 담수호였던 흑해의 수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의 흑해는 지금은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변해버린 좁은 땅으로 지중해와 분리되어 있던 담수호였다고 한다. 라이언과 피터 맨은 수위가 낮아진 흑해로 지중해의 해수가 엄청난 기세로 흘러 들어가 이를 범람시켜 주변 지역을 물바다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 때 바닷물의 통로가 된 것이 지금의 보스포루스 해협 지대였다. 또한 지중해의 짠물이 흘러들어 오면서 흑해의 민물에 살고 있던 연체동물들이 죽었는데, 이런 사실은 약 7500년 전의 화석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또 다른 가설은 성경 연대로 환산하여 기원 전 3.111년경이며 마지막 가설은 1,2 만-1.3만 년 전에 자전축이 가장 많이 기울어 졌을 때 일어났다고도 한다.
결론적으로 대규모 홍수는 전 지구적으로 여러 번에 달하며 당시 인류들은 이를 인본주의적으로 집단생활을 시작한 인간에 대한 자연의 하느님의 징계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희한하게도 신라의 학자 박재상 이 기원 후 300년 경에 쓴 부도지(符都誌) 기록에는 서양(월식주)의 대 홍수 기록이 있고 우리말에는 쓰레기를 쓸어내는 도구 이름을 지금도 비의 자루인 빗자루라고 하는 등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부도지(符都誌)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저술했다는 사서인 《징심록》의 일부이다. 1953년에 그 후손인 박금(朴錦)이 그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일반에 공개되었고, 1986년 번역본이 출간되어 널리 알려졌다. 조선 시대에 김시습에 의해 번역되었고, 그 필사본이 보관되고 있었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현존하는 《부도지》의 내용은 원본은 피난올 때 북한에 두고 왔고 지금의 내용은 박금이 책을 연구했던 기억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 박금의 본명은 박재익이며, 박제상의 55세손이다. 1895년 함경남도 문주(지금의 문천)에서 태어났다.[1] 1930년대(1925년~1934년)에는 동아일보 기자로서 활동했으며, 만보산 사건을 취재하기도 했다.
징심록《징심록(澄心錄)》은 3교(敎) 15지(誌)로 되어 있다.
상교 - 부도지(符都誌), 음신지(音信誌), 역시지(曆時誌), 천웅지(天雄誌), 성신지(星辰誌)
중교 - 사해지(四海誌), 계불지(??誌), 물명지(物名誌), 가악지(歌樂誌), 의약지(醫藥誌)
하교 - 농상지(農桑誌), 도인지(陶人誌), 나머지 3지는 알 수 없다.
부도지 외에 음신지, 역시지, 천웅지, 성신지 등을 복원했다고 하나 일반에 전해지지 않는다.
추기복원된 《부도지》에는 조선시대 생육신 중 한 명인 김시습이 《징심록》의 원본을 고대어에서 당시의 문장으로 적으면서 내력과 느낀 점을 덧붙였다.
또 박금씨가 《징심록》을 복원하면서 느낀 점을 기록하였다.
내용시대는 짐세, 선천, 후천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선천(先天)의 시대가 열리기 이전에 짐세(朕世)라는 시대가 있었으며, 후천의 말기에 임검씨(단군)가 등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각 지방의 전설로 남아 있는 마고가 민족의 시조로서 등장하고 있으며, 소리에 의해 세상이 창조되고, 오미의 화로 말미암아 12부족이 나뉘게 되는 과정, 대홍수, 황궁,유인,환인,환웅씨의 계승과, 요와 순 임금에 의해 동방(단군조선)과 화하(하나라)가 분리되는 과정이 자세하게 서술되었다.
단군조선의 치세는 1천 년 간이며, 1천 년에 걸쳐 각 부족이 자리잡은 이후로 단군조선을 포함한 치세가 7천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부도지》에 기록된 우리 민족의 기원은 1만 1천 년보다 이전이 되고 환단고기 삼성기 전하권 한인조선 연 제2연대 62.193년과 일치된다.

따라서 성경의 노아 홍수는 중동에 국한된 재난으로 재난 전부터 지구상에는 노아의 후손보다 훨씬 많은 네안데르탈인들이 유럽과 아프리카, 남북 미를 비롯한 타 지역에 이미 살고 있었다. 그래서 셈의 후손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시베리아에 이르는 길의 동 편 산에 거주했다고 추가한 것 같다.
특히 창세기 9:20-27의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라는 기록은 에굽에서 냉대를 받은 레위 일족이 쓴 최악의 악의적인 기록으로 후대에 백인에 의한 흑인 노예제도 합법화의 단초가 되었고 백인 우월주의의 근간이 되어 인류에게 씻지 못할 죄를 지은 것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와는 전혀 다르므로 가르치는 사람들은 성경이 무슨 성령의 감동으로 무오 하다 느니 하는 억지 주장을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한다.

소 결론:
창세기는 천지 창조, 인간 창조, 에덴, 카인의 살인, 노아의 홍수 등을 다룬 내용으로 레위인 들이 유대교 창시를 위해 조립한 허구이다. 이들은 자연을 거부하고 인본주의 유프라테스강 문명을 구축한 수메르의 신화를 인용해서 만들었다. 이들의 특성은 기원 전 2.600년경부터 수메르에서 떨어져 나와 에볼라라고 하는 지금의 시리아 내에 작은 도시 국가를 세워 백인들과 수메르와 교역을 담당하고 동시에 수메르의 전통도 이어 받았으며 언어는 아람어 였다. 따라서 이들은 재물을 섬기며 양쪽을 닮아 인간의 피를 좋아하고 전쟁을 즐기는 습성을 가졌고 동서양의 신을 모두 섬기는 다신 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이 쓴 창세기와 구약의 모든 내용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자연주의 하나님의 종주국민인 한국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구약을 믿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자연주의 유일신 하느님을 되살리시기 위해 오신 분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의 핵심인 기도문에 “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이름을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했다. 전쟁신인 마르둑보다, 재물, 기복, 침략과 사람의 피를 좋아하는 인본주의 유대 신 여호와나 수메르의 신 마르둑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더 거룩이 여기라는 것이다.
11장 바벨탑-혼란의 시대
수메르의 언어분열 전승은 기원 전 2.100년 경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지구라트에 기록된 엔메르카르 서사시의 기록에서 유래한다. 우룩(Uruk)의 왕인 엔 메르카르(Enmerkar: Hunter Enmer)가 에리두(Eridu: 현재 Tell Abu Shahrain, Iraq) 에 다산의 여신 이난나(Inanna)를 기리는 거대한 지구라트를 짓고 있었다. 그는 아라타(Arata: 현재 이란의 한 지역)의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신전의 건설을 위해 귀금속이나 곡물을 조공으로 바칠 것을 요구하면서 만일 듣지 않으면 아라타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흩어버리겠다고 위협한다. 그리고 엔 메르카르는 엔키 신에게 사라타 지역 사람들의 언어를 분열시키도록 요청하는 대목이 나온다. 레위는 이 전승에서 지구라트 때문에 언어가 복잡해지고 인류가 흩어졌다고 조작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류에게 언어발생 시기는 약 10만 년에 이르며 이 언어는 호모사피엔스에게는 정보 교환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수메르 문명 이전에 벌써 수백, 수천의 언어가 존재하고 있었다. 필자의 판단에는 바이칼에서 흩어진 최초의 호모사피엔스들에게는 아프리카에서 동북방으로 진출을 시작하던 시기에도 이미 언어가 있었고 시베리아에서 분리됨에 따라 지역에 알맞은 언어들로 추가로 생성 된 것이 정답이다. 아람어는 수메르에서 독립한 에벨이 시리아 일부 지역을 장악하고 에볼라도시국가를 세우고 동서 교역을 맡으면서 에볼라 어 즉 아람 어가 인도와 중동과 에굽 일대에서 당시의 교역을 위한 상용어가 된 것으로 본다. 에볼라를 세운 에벨은 아브라함의 6대 조상이다.

12장 아브라함의 시대-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아브라함은 누구인가?
구약을 바로 보기 전에 먼저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에 대해 검토해 보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말대로 유랑하던 아람 인이었고 살던 곳은 갈데아(수메르인의 도시 현재 이락의 유프라데스 강 서쪽 하구 지역에 위치)의 우르 라는 도시였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르에서 각종 신들을 형상화한 우상들을 만들어 팔았고 그 속에는 멜기세덱을 포함한 각종 여호와(신) 들이 있었고 아누님이라는 창조신도 있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어느 날 “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라고 말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당시 사르곤을 중심으로 한 아카드인들이 우르에 쳐들어와서 이들 수메르계 상인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피난길을 떠난 것이었다.

* 사르곤(Sargon)
아카드 왕조의 창설자(재위 B.C. 24세기). 남메소포타미아(수메르, 아카드)를 처음으로 통일했을 뿐 아니라, 북메소포타미아에서 시리아 방면까지 지배하여 지중해와 페르시아 만을 연결한 교역로를 열었다. 니네베 출토의 청동제 남성상 두부(頭部)(바그다드 이라크 박물관)는 이 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세의 강에서 주었다는 설화는 사르곤의 탄생 설화에서 유래되었다.

* 아람인 [Aram]
셈족의 일파. B.C. 2000년대 중엽 중앙시리아를 중심으로 정착, 그 일부는 다마스크를 중심으로 아람 왕국을 세웠다. B.C. 11~B.C. 8세기 북시리아에 마라티아, 길가매슈, 사마르(진지를리), 할라프, 사크제교주(Sakgegozu), 아시타완다 등의 소왕국을 건설한 적이 있고은 히타이트 문화를 들여와서 후기 히타이트 문화를 일으켰으며 그 미술은 오르토스타트로 대표된다. 이들 소왕국들은 그후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하였으나 그때부터 아람인은 오리엔트와의 교역에 종사하고 아람어는 오리엔트의 상업용어로 오래 쓰였다

* 에블라 왕국
시리아 알레포 남쪽 48㎞, 지금은 잃어버린 에블라 옛 왕국 터에서 발굴된 1만 5천여개의 서판은 주전 2500~2300년경의 토판으로 구약성경의 인물들이 실존한 인물인가 신화 속의 인물인가 하는 오해된 의문을 푸는 실마리가 될 뿐 아니라 유사시대를 소급하고 또 새로운 시대를 밝히는 근거가 된다. 이 1만 5천여 개에 달하는 이들 서판을 발굴하는데 장장 13년이 결렸는데 이 발굴작업과 해독을 담당하고 있는 이는 고고학자인 로마대학의 파울로 마티에 교수와 역시 로마대학의 앗시리아 학자인 지오반니 페티아노 교수이다. 쐐기꼴의 상형문자로 된 이들 서판은 고대 강국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 필적할만하고 국민들이 히브리어 및 베니게어와 대단히 유사한 언어를 썼던 광대한 에블라 왕국이 실존했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첫 서판의 해독 결과 이 에블라 왕국의 주민들이 후에 팔레스틴에 나타난 유일신을 경배하는 히브리인의 조상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더욱 더 짙게 해주고 있다. 이 서판들은 또 창세기 10장 21절에 유대족장 아브라함의 5대조(代祖) 조부(祖父)로 나와 있는 에벨이 주전 2300년경 에블라의 왕이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으며 서판에서는 창조와 홍수 고대 도시 및 다윗, 사울 같은 왕의 이름도 여러 곳에 언급되고 있다. 이 서판의 해독을 담당하고 있는 페티아노 교수는 에블라 왕국의 터가 이스라엘과 대적하고 있는 아랍 내에 있기 때문에 이 서판을 연구하는 데는 정치적인 이해가 뒤따른다고 했다. 모든 서판은 현재 알레포 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며 지금까지 해독된 것은 엘바왕이 주전 2250년경 사르곤대왕에 의해 횃불 옆으로 끌려간 부분이다. 페티아노 교수는 "에블라 서판의 중요성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많은 역사적 사실(事實)을 해결하여 고대근동의 지리를 다시 써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판에 의하면 에블라 왕국은 남쪽으로는 팔레스틴 전체 레바논 최 근세사의 시리아를 포함해서 시나이까지 뻗어 있으며 서쪽으로는 키프로스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까지 뻗어 있다. 서판들은 에블라가 교역했던 가자, 므깃도, 멜기세덱, 소돔, 고모라와 같은 고대 도시들도 언급하고 있다. 페티아노 교수는 "구약에도 똑같은 형태로 이들 이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블라 왕국의 문화와 구약 사이에는 확실한 상호 연관성이 있지 않는가 하고 믿게 되는 겁니다."하고 설명했다. 서판은 또 예루살렘으로 추정되는 '우루살리마'란 이름도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고대 서판들의 해독이 손쉬웠던 것은 이들 서판들과 함께 죽은 것으로 알려진 수메르어를 에블라어로 번역해 놓은 세계 최고의 1천 단어 사전이 함께 발굴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들 서판의 발견은 고대 애굽의 상형문자 해독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로제타 석이나 1947년에 사해부근에서 발견 했던 구약성경 본문의 두루마리의 결과에 못지 않는 큰 공헌이라고 한다. 실로 경하할 일이 아닐 수가 없다.

* 에볼라 유적 발견 경위
메소포타미아는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상류의 마리에마르를 지나 지중해 연안지대나 아나톨리아 지방과의 교역으로 자국에 없는 광물,직물,목재 등의 제품 및 재료를 수입하였는데, 교역의 중심지로서 에블라 왕국이 맡은 역할은 매우 컸다. 이를 통해 에블라인은 많은 부를 얻었으며 이때부터 에블라 왕국은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BC 2240년경 아카드 왕조의 나람 신이라는 왕이 쳐들어와 에블라를 짓밟고는 에블라의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다. 이때 발생한 대화재로 에블라의 도시는 폐허가 되어 버렸고 그 후 아모리족이 에블라를 약탈하여 자신들의 왕국을 세웠다. 당시의 화재로 설형문자가 적힌 많은 점토판 문서는 그 뜨거운 열기에 오히려 단단히 굳어졌고, 이 때문에 후일 어느 고고학자의 손에 발견될 수 있었다. 1964년 파올로 마티에가 중심이 된 로마대학의 고고학 발굴단이 에블라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리아 서북부의 알레포 남쪽으로 약 65㎞ 지점에 있는 텔마르딕을 발굴, 조사했는데 뒤에 이것이 도시국가 에블라임이 확인되었다. 1974년에 발굴된 왕궁 유적에서 성벽으로 둘러싸인 궁전과 풍속도가 부조(浮彫)된 석제 용기, 사자와 병사를 부조한 봉헌용 석제 용기 등이 발견되었다. 1975년에는 왕궁 부속 도서관 터에서 1만 5,000점 정도의 점토판 문서를 발견하였다. 당시 서아시아의 정치,경제,외교,문화,언어 등의 실상을 밝혀 주는 칙령과 조약문서, 편지들이었는데 그 속에는 베이루트,비블로스,다마스커스,가자 등 5,000여 개 이상의 지명과 소돔과 고모라, 다윗왕, 아브라함 등 성서 속의 인명들도 상당수 적혀 있어 성서 연구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에블라 왕국의 교역 중심지로서의 중요성도 확인되었다.
참조항목 알베르 마티에, 시리아 (출처 두산백과)

아브라함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열국(列國)의 아버지라는 뜻이고 서양에서는 신약성서 기자들에 의해서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되었으며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유일신 종교들의 공통조상이 되었으나 자칭 대 제사장이 된 인물로
-기원전 2천년 경 지구상에는 단군을 대 제사장으로 각 지역에 2천 여명의 지역 별 기능 별로 분화된 제사장들이 있었고 멜기세덱(수메르의 최후 승리 지역 신: 실담어 : 조선어로 말뚝 신)도 그 중 한사람이었으며
- 당시 하나님의 계시는 제사장의 직분 자에게 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칭 아브라함은 도리에 맞지 않는 죄를 많이 지었는데 그가 지은 대표적인 범죄는 다음과 같다.
가. 자칭 제사장 권한 발휘
- 중보 기도, 제사행사 독단으로 치러
- 합리화하기 위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 바침
나. 하나님의 창조 명령 거역: 하나님의 창조 명령인 아내를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1부 1처제의 계명을 어기고 부인 사래를 바로와 아말렉 왕에게 2회에 걸쳐 팔고 대신 재물인 가축과 염소를 챙김
다. 이익 추구에 관한 비판 없음: 아람 인은 당시 중동을 목축을 하면서 떠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던 셈의 다섯째 아들 아람의 후손으로 천산, 알타이, 파미르 등 동방 발원지나 인도와 페르시아 어디에서도 장사를 통한 이익을 추구하며 먹고살았으면 서도 아버지의 장사(우상)를 비롯하여 외삼촌과의 계약을 통해 이익을 낸 야곱의 경우, 요셉과 다니엘의 꿈 해몽 보상, 등 어디에도 계약 과정과 정의, 불의 등 장사군의 행동 원칙이나 계약 과정에 대한 말이 없다. 신탁이건 아니건 부인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장사의 수단으로 삼고 계약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축복으로 여긴 돈 최우선 시 전통은 그 후 수 천년 동안 유대인과 백인 세계와 이제는 중국을 포함 동방까지도 들을 돈의 노예로 만들었다.
라. 아브라함 이후 족장들의 인물과 행적에 관한 거짓 말
아브라함은 신에게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신을 창조한 것이었다. 그리고 케레트 서사시가 아브라함과 사라 이야기의 원전이고 할례는 여호와와의 계약이 아닌 이집트에서 기원하였다. 그리고 번 제단에 오른 것은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었으며 왕들이 90세 노파인 사라의 미모를 탐하였다는 것도 거짓 말이다. 또 수메르의 명계 하강 신화가 소돔과 고모라 신화의 원전이다. 그리스 쌍둥이 신화가 에서와 야곱 이야기의 원전이고 이집트의 두 형제 이야기가 요셉 유혹 설화의 원전이며 10가지 재앙은 에굽의 이푸에르 문서를 베낀 것이다. 이집트의 두 형제 이야기가 요셉 유혹 설화의 원전이고 그리스 벨레로폰 신화가 요셉 유혹 설화의 원전이며 고대 이집트 이모텝의 전기가 총리요셉 설화의 원전이다.

다. 출에굽기
먼저 모세라는 인물의 존재 여부는 그 이름 자체에서 유대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이유는 모세의 원이름 모쉐(Moshee)는 에굽식 “물에서 건져내어지다“라는 에굽식 수동태 이름으로 능동태 이름만 고수하는 이스라엘인이 용납할 리가 만무하다는 점이고 그 다음에는 출세 경위에 있어서 메소포타미아 통일 왕 아카드의 사르곤의 “강물에서 주웠다”는 전설을 인용하여 만든 점이다. 따라서 이름과 출생, 출세 경위를 모두 조작한 점으로 미루어 실제로 탈출을 주도한 인물이 있었다 하더라도 유대인이 아니고 에굽의 실력자중 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즉 부인을 팔거나 아들을 바치거나 며느리와 동침을 하드라도 재물과 후손을 불리고 싶은 아브라함의 자손들과 에굽의 어떤 정치세력이 여호와 유일신 신앙을 가지고 있고 요셉으로 인해 부자가 된 에굽의 유대인들을 사나운 레위인들을 중심으로 규합하여 데리고 나가 독립을 해야겠다는 목적으로 야합한 것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구체적으로 에굽의 반란 왕족이거나 이민족 지배자들 중 한 사람(예를 들면 이집트의 종교개혁자 아크나톤 왕)이었을 것이다. 아크나톤 왕은 어렸을 때부터 에굽의 태양신을 빛의 신(아멘신 또는 아몬신)으로 바꾸고 단일화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제들을 공직에서 내몰려다 실패해서 미디안으로 자신과 같이 역시 에굽의 태양신을 배척하는 이스라엘인들을 규합하여 도망했다 복귀하여 나중에 왕이 된 인물로서 나중에 자신의 이름도 아크나톤에서 아멘 호텝으로 바꾸었는데 유대교의 “아멘” 이라는 말도 아멘 호텝이 자기들을 구해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말이다. 한국인들은 지금도 열심히 이 아멘을 외치고 있다. 그리고 출에굽의 10가지 재앙은 에굽의 이푸에르(Ipuwer) 문서를 베낀 것으로 미국의 지질학자와 역사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기원전 19-16세기에 에게해 북쪽 산토리니 화산의 폭팔로 있었던 기상변화와 전염병, 사회혼란에 관한 기록을 그대로 옮겼는데 기원전 1.628년 테라(Thera)화산의 거대한 폭발로 치솟은 분출물과 검은 연기가 사흘이나 하늘을 뒤덮었고 화산재는 북서풍을 타고 650kM떨어진 나일강 삼각주까지 날렸다고 한다. 따라서 실제는 모세도 출에굽도 없었고 고센 지방의 억울한 강제 노역도 없었으며 일단의 반에굽 유대인 무리의 집단 탈출 사건이 있었을 뿐이었다. 왜 에굽 정부가 유대인들을 경계했을까? 하는 것은 그들의 조상 때부터 살아온 삶의 방식 즉, 자신들은 셈계(수메르계) 순수 혈통임을 빙자한 잡종 에굽인(흑인과 유럽, 페르시아의 혼혈)에 대한 혐오감으로 에굽인들을 무시하고 에블라 왕국 때부터 아람 왕국 때까지 약 천 년 동안 중동에 구축한 상업적 이권을 이용한 무차별적 재물 착취 방식이 가져온 결과였다. 이를 증명하듯 그들은 탈출 때 에굽의 거의 전 패물을 긁고 노비들까지 데리고 도망쳤다.
따라서 홍해의 바닷물 가르기는 흔히 간조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고 하늘에서 내렸다는 만나는 사실은 곤충(개각충)의 분비물(진디물의 꿀)과 타마리스크(Tamarisk)나무의 수지(아랍인들은 이를 하늘에서 내린 만나라고 불렀음)였다. 모세의 시내산은 실제는 시나이 반도의 시내산이 아니고 아라비아 사막 미디안의 라오즈 산이며 함무라비 법전과 아크나톤 18계명이 모세 십계명의 원전이고 오리엔트 종주권 조약이 여호와와의 계약의 원전이다. 모세라고 불리우는 지도자(레위가 지어낸 인물)는 유대 민족을 자신에게 복종시키기 위해 과거에 자신이 도피해서 살았던 미디안 광야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구름 기동, 불기둥, 반석에서 나는 물)을 이용했고 레위인들은 나중에 이를 조작해서 시나이 반도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김승학 저 “떨기나무” 2007. 5.18 서울. 두란노서원)

라. 레위기[Leviticus]
이스라엘인(人)의 종교의식 예배,일상생활 속에서 지켜야 하는 율법을 기록한 책. 27장. 구약성서의 셋째 책으로, 모세 5경(五經)에 속한다. 레위기라는 이름은 예배규칙의 시행을 맡은 레위인의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70인역》 《불가타 역》의 Leviticus, 헤브라이 원전에서는 여타(餘他) 책명과 같이 첫 마디 말인 Waiqr(그리고 그는 불렀다는 뜻)이다. 저자는 물론 레위인들이다.
그 주요 내용은 제사와 예물, 그것들이 지닌 의미(1~7장), 사제의 자격과 그들의 성별(聖別)되는 방법에 관한 규정(8~10장), 깨끗한 것과 부정한 것을 가리는 일상생활에 관한 율법(11~15장), 속죄일, 즉 1년에 한번 죄를 씻어 정하게 하는 날의 의식(16장), 그리고 깨끗한 생활과 예배에 관해 말하고, 결론적으로 순종한 자에 대한 약속과 불순종한 자에 대한 경고(17~27장) 등이다. 이 책의 신앙적 기조는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19:2) 하는 한 마디에 명시되어 있다. 거룩한 하느님과 인간의 죄(불순종 부정)가 서로 만날 때 어떻게 이것을 해결하느냐에 대한 해답을 말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그래서 민수기, 신명기의 어느 율법 보다 우선하고 심지어 십계명 보다 우선한다. 따라서 이 부분은 유대인에게는 헌법보다 우선 시 되고 레위인이 바로 유대교의 주인이고 이스라엘의 영원한 통치 세력임을 보장하였다. 이는 마치 아리안족이 인도에서 브라만 계급을 만든 것과 같고 이씨 조선의 제사권을 이씨에게 부여한 것과 같다. 원래 고조선에서는 레위기를 비롯한 민수기, 신명기의 그 많은 정결 의식 대신에 백성들이 실천하기 쉽게 흰옷을 입도록 했고 이것이 백의 민족의 기원이 되었다. 유의할 점은 레위기 제사의 표징인 번 제 방법 1:9절 “소나 양을 죽여 각을 뜨고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고 한 것은 유대인들이 이미 서양의 식인 습성에 물든 단적인 표현이다. 사람이 타는 냄새를 즐기는 여호와라... 기원 이후 지금까지 그 많은 서양 주도의 전쟁과 살육이 이해가 간다. 아브라함의 이스마엘 인신 공양을 비롯하여 예수의 피 흘림과 희생제사로 드려지는 등 그 많은 구약의 번제가 모두 피를 좋아하는 여호와로 인한 것임은 생각해보면 몸서리가 쳐 진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한다. 뱀파이어야 물러가라” 필자의 생각에서 서양인의 식인풍습과 인신 공양 신인 여호와가 기원이 된 한국 교회의 성찬행사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레위를 모르면 신구약 성경을 알 수 없다. 그들이 바로 유대교를 만든 사람들이고 신구약을 쓴 사람들이고 수전노의 본체이고 프리메이슨의 주인이며 세상을 돈 세상으로 만든 사람들이다. 레위인들 만이 영원히 유대교의 제사권을 이용해 유대의 권력과 돈을 독점하려고 한 시도는 다음과 같이 모세 오경의 여러 부분에서 역력히 나타난다.
1. 모세의 부모가 모두 레위인 점
2. 모든 기적에 아론과 미리암 만이 가담함
3. 광야에서 반란을 일으킨 고라가 레위인인 점(레위인들끼리도 내분이 있었다.
4. 모세는 결국 시체를 남기지 않고 묘지도 발견되지 않는 점
5. 레위기가 창세기 다음에 구약의 맨 앞에 있는 점
6. 여호수아가 땅을 나눌 때 레위 족속은 a제사를 핑계로 무위도식하면서 십일조를 받고 저첩을 두며 서기관과 제사장 랍비와 회당장직을 독점하면서도 죄를 지으면 도망가 살 수 있는 도피성을 준 점
7. 자손 번식을 위해 목초지를 추가로 둔점
8. 사무엘을 효시로 레위들이 인정 안으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도록 한 점

* 유대교 성전 건축 당시 돈을 받고 일하던 노동자들을 자유 석공조합(프리메이슨)이라고 했는데 이들을 만들고 움직인 사람들이 바로 레위인들 이었다.

* 레위인들에게는 세월이 갈수록 돈이 쌓였고 바벨론 포수 당시 성전과 내탕고를 지키던 그들에게는 바벨론으로 잡혀가는 것보다 내탕고를 털어 외국으로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마. 민수기[ The Book of Numbers , 民數記 ]
유대인들이 에굽을 떠나 시나이 산에 이르고 시나이산을 떠나 모압평원에 이르기까지 광야에서 겪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다. 내용상으로 보면 《출애급기(出埃及記)》와 《신명기(申命記)》를 잇는 것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이 시나이로부터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도중에 겪은 고난을 적은 것이다. 36장으로 되어 있는데, 지리적으로 보아 다음 3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다. ① 이집트(에굽)를 탈출한 이듬해에 모세를 중보자로 하여 맺어진 민족의 신 여호와와 이스라엘 민족과의 계약, 모세에 대한 협력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씨족 및 부조(父祖)별 인구조사, 야영과 행군대열의 배치와 업무분담, 나실인(선택한 사람이라는 뜻)의 성별(聖別) 예물 유월절(逾越節) 등에 대한 규칙(1:1~10:10), ② 시나이를 떠나 40년에 걸친 외적의 압박과 굶주림에 시달린 행군의 기록, 사제족의 장(長)인 레위인 아론의 죽음(10:11~20:36), ③ 레위인 고라의 반란④ 아모리인(人)의 왕 시혼과 바산의 왕 옥과의 싸움, 모압 도착,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하느님의 계약, 모세와 엘르아살이 실시한 인구조사,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선출, 갖가지 규칙, 미디안인(人) 정복, 가나안땅에 도착했을 때의 예언 등 주로 모압 시대의 기록(21:1~36장) 등이다.
《민수기》라는 이름은 내용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최초로 시행한 이스라엘 민족의 인구조사 기록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특기할 것은 민수기의 31:40 “사람이 만 육천 명이라 그 중에서 여호와께 공물로 드린 자가 삼십 이 명이니” 하면서 인신 공양을 아주 내어놓고 표현하는데 레위인들이 비교적 정직하게 기술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일 것이다. 또 하나는 16:1-19절에서의 고라의 반란이다 고라도 역시 탈출주도 세력인 레위인 인데 레위인들 간에 주도권 다툼이 있었고 대중은 미디안의 조력과 에굽 왕실과의 적대관계 해소를 위해 결국 모세라고 기록된 인물인 아크나톤의 손을 들어준 것 같다. 여기서도 가장 큰 거짓 말은 모세라는 가공의 지도자는 백성들을 데리고 시나이 사막과 시내 산으로 간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잘 아는 자신이 한 때 피난해서 살아 사람들과 지리에 익숙한 아라비아 반도의 미디안 사막으로 갔고 그 곳에 있는 라오즈 산에서 이스라엘인들에게 유대교 교육을 주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일대에는 지금도 구름 기둥과 불기둥 현상이 보인다. (김승학저 떨기나무 2007년 두란노서원 참조)
레위인들이 엄천난 규모의 크기인 아라비아 사막을 40년 간 해매었는데 왜 경상북도 규모의 크기인 시나이 사막을 다녔다고 조작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바. 신명기
34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된 내용은 모세에 의한 율법 설명이다. 모세가 시나이산(山)에서 여호와 신으로부터 받은 율법을 선포한 사실은 그 앞의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 책에는 이스라엘인(人)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에 앞서 모압 지방 산에서 여호와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 사람이 지켜야 할 율법에 대해 모세가 재차 행한 고별설교가 기록되어 있다. 그 때문에 이 책의 그리스 어 역 책명이 제2의 율법으로 오역되어 있다. 《신명기》란 한역(漢譯)도 다시라는 뜻의 申, 계명이라는 뜻의 命,기록이라는 記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주로 오직 한 분의 주(主)인 여호와를 예배하라는 등 근본적인 가르침을 새삼 강조하고 있는데, 거기에 새로운 요소를 가미하여 특별히 율법을 지키는 동기나, 율법을 지켰을 때의 보답 등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는 모압에서의 모세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으나 모세의 무덤이 그곳에 없고 아크나톤은 살아돌아가 몬신 사제들과 화해를 한 후 이름도 아멘(아몬)호텝으로 바꾸고 에굽의 제18왕조 제 4대왕이 되어 그곳에 무덤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모세 무덤의 부재기록으로 레위인들의 모세에 대한 조작이 완전히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레위 자신들 조차도 《창세기》부터 이 책까지의 5서(五書)를 모세가 쓴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의 죽음을 기록한 마지막 부분만은 후에 다른 사람에 의해 추가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신명기를 요약하면 유대 민족은 반드시 레위를 주인으로 모시야 한다는 반복적인 명령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