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언어와 문자를 통해 본 한국민족사
학자들에 의하면 문자는 기원 전 5천년 경 수메르에서 처음 생겼고 언어는 10-15만 년 전에 네안데르탈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이동할 때부터 집단 별로 새겨났다는 것이다. 우랄 알타이와 천산, 바이칼 지역에 오래 머물면서 호모사피엔스가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언어가 통일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문명을 의미하는 문자의 연령이 7천년인데 비해 언어의 연령은 7만 년인 것이다. 필자가 한단고기 삼성기전 하권에 기록된 한인의 나라 역 년이 63.182년이라는데 주목한 것도 바로 네안데르탈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바이칼로 와서 언어를 통일했다고 보는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이었다(이홍규 박사 미토콘드리아 이브 유전자 이동도 참조) 이렇게 해서 최초로 통일된 호모사피엔스의 최초 언어는 의식주, 생식, 사람의 몸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고 당연히 한 마디 언어라고 본다. 그 다음이 눈에 보이는 자연환경이었을 것이다. 즉, 산, 들, 강, 물 등이다. 살면서 그들간의 관계성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왜?” “무엇” 들이고 드디어 해와 기상이 인간으로 하여금 열매와 과일을 먹게 만들고 해와 달과 별이 시간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자연과 바로 연결된 생명체라는 것과 맨 인간이 자연에서 나온 마지막 생명체로 만물의 영장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과 땅과 하늘이 하나인 마음, 즉 우주와 지구의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생명체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삼신 사상을 갖게 된 것이고 여기서 사람으로서의 마음과, 심성과 정서가 생기고 가치기준인 양심이 생겨났다고 본다. 즉 언어에서 생각이 나왔는데 호모사피엔스의 발상지에서 나온 언어가 원형 언어이고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국어라는 점을 얼마나 조상들에게 고맙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이홍규박사의 유전자 이동도(이 책의 6페이지 참조)를 접한 후 인류사와 우리 민족사에 대한 대부분의 의문이 풀렸는데 그 단서가 바로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말이었다. 최초의 의문아 “ 아리랑”에서 “알”이란 단어의 의미와 출처였는데 1996년 미국 켈리포니아주 어바인에 위치한 케리포니아 신대원 박사논문을 쓸 때 어지간히 애를 먹은 기억이 난다. 이때 후배 김창범 목사(전 건영그룹 홍보 상무)의 소개로 고신 원로목사이며 기독교상고사에 관한 책 3만 여권을 소장하고 계셨던 전흥상목사(동방의 십자가 저자)님을 만나 많은 자료를 얻어 박사 학위논문“성경제사와 한국 제사 비교”를 배제민교수님 지도로 완성하였다. 이 때 “알”이라는 말의 뜻을 두고 하느님께 기도를 했는데 어느 날 새벽에 “내가 바로 알이다” 라는 응답을 받고 전목사님께 확인한 결과 같은 대답을 얻어 이를 논문에 쓰게 되었고 후배 유석근 목사가 “아리랑 고개를 넘어 예루살렘으로”라는 책에서 자세한 내용을 시중에 소개하게 되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한국어는 필자의 모든 저작물에 필수불가결한 주요 근거가 되었고 영감이 되어 왔다. 많은 동서양 학자들도 한국어와 타밀어의 공통단어 20만개, 타밀어와 인도 유로어 같은 단어 20만개라는 놀라운 결과를 발견하여 필자의 가정이 증명된 바 있다. 우랄알타이어에서 중국어 인도어 유럽어가 나간 것이고 이를 뒷받침 듯 1만 3천 년 전 고비사막 흑피옥 등어리에 한글, 한문, 알파벳이 나란히 새겨져 있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알아랏. 알알해, 알아비아, 알이안, 알타이, 알물(흑룡강), 알아스카 등 유라시아 대륙의 중요 지명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약 4만 년 전 한국어에서 아리안 어와 한웅 어가 갈라졌고 1만 2천녀-기원전 2천년 경에 아리안어와 타밀어(드라비다어)가 인도에서 결합하여 인도 유로어가 만들어지고 여기서 페르시아어, 유럽어가 생겨났고 동방에서는 기원 전 약 1만 년 전에 중국어가 한국어에서 기원전 2천년경에 일본어가 한국어에서 각각 갈라져 나갔다. 단군 조선 때 조선인들에게 한문 뜻을 통일적으로 알게 하려고 4세 단군 가륵 때(기원전 2.181년) 삼랑 을보록을 시켜 가림토 38자를 만들었다.
따라서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든 것이 아니고 옛 성인들의 표음 문자를 본 따 만들었다 라는 기록이 1940 경북 안동 정씨 고가에서 발견된 한글 해례본 정인지 서문에 가림토 문자는 조상들의 표음 문자를 본따 만들었고 그 목적은 나랏말이 중국과 다르다고 했는데 한단고기에서는 당시 가림토 38자를 만들게 된 근본 목적이 중국인들의 지도를 위해 조선이 만든 것이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중국어는 천자문을 모르면 해석이 안 되는 단어가 많아 중국인들도 한글(가림토)을 알아야 한다.

* 관련 내용의 정인지 서문
3. 所以古人因聲制子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옛 사람이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삼재의 도를 실었다

언어의 분화를 통해 본 바와 같이 한국 민족은 분명히 인류의 시원 민족임이 증명된다. 그래서 2012년 유네스코는 이 한국어 원형 언어 중하나가 포함된 노래인 “아리랑”을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했다.
동물이나 식물의 종자 개량의 실예를 들어보자 6만년간 종자개량을 한 민족과 , 6천년간(중국인, 유대인)또는 2천년간(일본인), 또는 200년간(미국인) 종자개량을 해온 민족이 그 질적인 면에 있어서 같을 수 있겠는가?
인간이 말을 하게 되는 단계를 생각해 보자. 목청이 생기고 소리를 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그 다음에 의지가 반영될 것이다. 즉 사람과 사람 간 신호의 필요성이 생겼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인간이 의사 전달을 시작할 때 언어는 두 가지 흐름이 필연적으로 생성하게 된다. 교착어(膠着語agglutinative language)와 도치어(倒置語 Invert language)이다. 한국어와 영어를 예로 들어보자. 교착어인 한국어로“나는 학교로 간다” 라는 말을 한다면 영어로는 "I go to school."이라고 한다. 교착어는 말하는 주체가 맨 앞에 오고 그 다음이 목표를 열거하는 반면 도치어는 나의 행동이 먼저 열거된다. 교착어의 경우 행동을 하기 전에 목표를 정하게 되고 목표를 정하려면 마음속에서 두뇌를 이용하여 사고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럴 경우 어느 민족이 앞선 문명 민족일까? 물론 교착어를 사용하는 민족일 것이다 도치어를 사용하는 민족은 언어가 형성되던 상당한 기간 동안 본능적으로 행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교착어는 우랄 알타이어, 한국어, 일본어, 터어키어가 여기에 속하고 도치어에는 저들이 소위 앞선 언어라고 주장해 온 영어와 중국어가 여기에 속한다.
한글의 우수성은
첫째는 만들어진 기간이다. (*세종 재위 32년)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여지고 있는 문자는 로마자와 한자인데, 이것들은 각기 3천년 이상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지금도 한자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어쩌면 한자가 쓰이는 동안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불완전한 문자라는 말이다. 로마자가 불완전한 것도 두말할 필요 없다. 로마자 표기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유독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거의 완벽한 한글에 비해 로마자는 표현할 수 없는 음이 너무 많아서 어떤 수를 써도 한글로 쓴 것을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한글이 로마자보다 시원찮은 문자라면 오히려 한 번 정해진 로마자 표기에 모두들 감탄하기 바빠서 딴 죽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자가 지닌 결정적인 약점은 모음이다. A, E, I, O, U 다섯 글자 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는 게 반자 음인 W, Y이다. 그러니 한글로는 간단히 표시되는 `ㅓ, ㅕ, ㅡ, ㅢ` 등은 원천적으로 표기 불가능하다. `ㅐ, ㅒ, ㅚ` 등도 불가능하다. 반면에 한글에는 모음이 무려 10개나 되는데다가 이를 응용하면 얼마든지 이중 모음을 더 만들어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 모음을 발견하기까지 무려 3천년이 걸렸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이를 불과 30년도 안 되어 완벽하게 창제하셨다. (세종 25년인 1443년에 창제 완료하고 세종 28년인 1446년에 반포함.) 로마자는 멀리 이집트로 그 기원이 올라간다. 아직도 이집트 글자를 상형문자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아니다. 그것은 표음 문자이다. 이를 밝혀낸 사람이 바로 로제타 돌을 해독한 저 유명한 언어 천재, 16살에 대학 교수가 된 샹폴리옹(Champollion)이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가져온 로제타 지역의 괴상한 돌을 그 이전 사람은 모두 그림을 보고 추호도 의심 없이 상형 문자로 알고 그 뜻을 읽어내려고 머리가 빠지고 벗겨지고 희어지도록 아둥바등 애만 태웠다. 그러나 샹폴리옹은 그 아래 쓰인 그리스 문자에 힌트를 얻어 그것이 상형 문자가 아닌 표음 문자라는 과감한 가정을 하고 연구한 결과, 마침내 이를 다 해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 동그라미가 왕을 뜻한다든지 하여 약간의 표의 문자적 요소도 있긴 있었다. 문제는 이 이집트 문자가 너무 복잡했다는 데 있었다. 그 그림을 일일이 외워서 그린다는 건 보통 사람으로선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를 아주 간단히 바꾼 인종이 나왔다. 그가 바로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나와 지중해를 휘어잡아 곳곳에 식민 도시를 건설한 페니키아인이다. 그들이 건설한 도시로 제일 유명한 게 바로 한니발의 카르타고이다. 이들 페니키아인들은 상업과 군사 중심의 인종이라서 복잡한 문자는 영 생리에 안 맞았다. 그래서 이를 대폭 간소화한 것이다. 거의 그림이라는 느낌이 안 드는 추상화한 문자를 만들었다. 이와 비슷한 것이 구약 성경을 기록한 셈족의 문자이다. 이것도 이집트 문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두 문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음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하다가 현재는 야훼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하나님 이름을 입으로 감히 발음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 발음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여호와나 야훼나 문자 상으로는 똑같다. 로마자로 표기하면 둘 다 `YHWH`이다. 사실 음운 현상에서 모음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이 변하지만 자음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대로 사람들은 이런 문자를 큰 불편함 없이 쓸 수 있었다. 대신에 그 발음을 정확히 하려면 굉장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보통 머리로는 거의 불가능했다. 모음을 발명하고 또 글자 모양도 더욱 간단하고 아름답게 만든 인종이 바로 저 유명한 그리스인이다. 이들 때문에 비로소 문자가 소리나는 대로 기록할 수 있었고 보통 사람도 누구나 약간의 교육을 받으면 바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이건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다. 말은 어차피 누구나 아는 일이고 이제 이를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자 익히는 데 허비하는 시간 대신 생각하는 시간에 투자함으로써 인류의 지식과 지혜가 폭발적으로 늘어 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남한 정도 되는 그리스가 그 후 얼마나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는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 원동력은 바로 자음에 이은 모음의 발명이었다. 이것은 후에 아라비아 문자가 발명됨으로써 수학적 지식에 날개를 달아 주었던 것과 유사한 엄청난 일이었다. 여담이지만, 그리스에서 나온 영어 단어 rational(합리적인)은 원래 구구단을 욀 수 있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그만큼 문자로 기록한 구구단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외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라비아 숫자로 기록해 버리면 천치 아닌 한 누구나 몇 대 회초리만 맞으면 초등학교 2학년이라도 외울 수 있다. 그리스인은 이 모음을 발명한 게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알파벳의 제일 첫 자와 끝 자를 모음으로 장식했다. 그게 바로 알파(A)와 오메가(Ω)이다. 각각 `ㅏ`, ` ㅗ` 발음이다. 알파벳이란 말도 첫 두 자, 곧 모음 하나와 자음 하나를 일컫는다. 로마자로 말하면 에이비(AB)나 마찬가지이다. 알파베타(Alphabeta)라고 하던 것을 나중에 영어에서 알파벳(Alphabet)이라고 한 것이다. 표음 문자는 크게 셋으로 구분되는데, 페니키아문자 같은 자음만으로 된 것, 일본의 가나와 같은 자음과 모음을 함께 발음하는 음절 문자, 로마자나 한글 같이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어 있는 알파벳(음소 문자)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음소 문자가 가장 발달한 것임을 두말할 필요 없다. 만약 음절 문자로 표현하게 되면 우리나라같이 음이 다양한 말은 최소한 3천 자가 필요하다. 이렇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소리를 자음과 모음으로 구별하여 적는 데, 인류는 무려 3천년이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세종 즉위 후 바로 시작했다고 해도 불과 25년 만에 그리스 문자를 압도하는 완벽한 문자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 건 세종대왕 혼자가 아니라 집현전 학사 모두가 오로지 이 일에만 매달렸다고 해도 경천동지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의 창의력이 세계에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한글 창제는 요새 식으로 계량화하면 노벨상 100개에 해당하는 위대한 업적이라고 본다. 한글의 위대성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몇 개만 더 들자. 둘째, 소리와 발음 기관의 완벽한 연관성이다. 로마자는 소리와 문자는 전혀 별개이다. 그냥 약속일 뿐이다. 이집트에서 예를 들면 `소`할 때 `ㅅ` 소리가 나니까 `소`를 그려 놓고 이를 `ㅅ`이라고 하자라는 식이었다. 이것이 말이 다른 페니키아, 그리스로, 로마로 가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약속 일 뿐이다. 그런데 1940년 안동의 희방사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됨으로써 한글은 발음 기관(發音器管)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이 비로소 밝혀졌다. 이것은 세계 언어학자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서양에서 음성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겨우 [d, t], [b, p], [s, z], [v, f], [g, k] 등을 짝지어 유성음 무성음을 구별해 놓고 득의만면하고 있었는데, 15세기 초에 벌써 이런 것을 완벽하게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g, k]를 혀가 입천장에 닿는 모양을 본떠서 아예 글자 모양과 비슷하게 [ㄱ, ㅋ] 더 나아가 된소리까지 표현하여 [ㄱ, ㅋ, ㄲ]까지 만들었던 것이다. [ㅋ, ㅌ, ㅍ, ㅎ]에서 보듯이 기본자 [ㄱ, ㄷ, ㅁ, ㅇ]에서 격음일 경우에 힘이 더 드는 걸 감안하여 줄을 한 두 개 더 그었던 것이다. 이 원리를 응용하여 한글을 가르치면(이런 교재가 빨리 나오기 바란다. 마음만 먹으면 아주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일주일 이내에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한글은 정말 배우기 쉽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머리가 굳어질 대로 굳어진 어떤 외국인에게도 금방 가르칠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다가 새로운 것을 연관시키면 아주 쉽게 배우고 잊어버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모음은 더욱 경이롭다. 천지인과 발음 기관을 같이 본떴다. 하늘은 둥그니까 간단히 아래 아 [], 땅은 평평하니까 [ㅡ], 사람은 서 있으니까, [ㅣ], 세상에 이보다 더 간단할 수가 없다. 실지로 발음을 해 보면 전세계의 모든 발음이 []할 때는 입이 둥글게 크게 벌어진다. [ㅡ]는 입이 옆으로 벌어지면서 혀가 평평해진다. [ㅣ]는 혀가 앞으로 내밀어지면서 세워진다. 여기서 각각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등이 나오는데, 물론 처음에는 [ㅣ, ㅡ]에 앞 뒤 또는 위 아래에 `아래 아`자를 덧보탠 것이었다. 이것도 경이로운 것이 세계 모든 발음이 [ㅏ] 발음을 할 때는 반드시 숨을 내쉬게 되어 있고, [ㅓ]할 때는 숨을 들이쉬게 되어 있다. 그래서 각각 밖과 안에 `점`을 찍은 것이다. [ㅗ, 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는데, [ㅗ]는 반드시 아래로 내리쉬고, [ㅜ]는 아래에서 위로 치받치게 되어 있다. 놀라운 일은 하나 더 있다. 한글은 누가 보아도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수 있다.왜? 모음은 반드시 가운데, 또는 오른쪽에 있기 때문이다. 로마자는 풀어쓰기 때문에 척 보고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수가 없다. 한글은 소리 나는 단위가 음절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그대로 활용하여 한 자 한 자에 자모를 붙여 놓아 소리 단위를 금방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로마자는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니면 음절 구분을 못한다. 한글은 바보라도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한글을 아는 사람은 바보라도 로마자 아는 천재와 같은 급이 된다는 말이다. 음소 문자이면서 음절 문자의 장점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컴퓨터가 나오면서 다시 위력을 떨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아직 한글에서 뒤지는 이유는 바로 한글의 24자가 하나의 디지털로서 무한한 조합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완성형을 택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찬진의 한글은 조합형을 택했던 것이다. 역시 똑똑한 조상 덕에 간단히 미국의 천재를 바보로 만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완성형을 표준으로 삼은 일은 정말 개탄 스러운 일이다. 디지털이란 것도 기껏해야 [0]과 [1]이라는 두 문자를 이용한 이진법을 무한히 연결하는 것인데, 한글은 그 자체가 무한히 응용할 수 있는 24개의 디지털 기호이다. 지금은 겨우 워드 프로세서에 응용하는 정도이지만, 이를 잘 응용하면 엄청나게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이 이렇게 자음과 모음을 확실히 구별하면서도 음절 단위로 쓰게 됨으로써 정보화 시대에 또 하나의 경이적인 장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공병우식 자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원리는 바로 과학적인 한글의 장점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현재 널리 보급된 것과는 달리 왼손은 초성을 치고 오른손은 중성과 종성을 동시에 치는 원리이다. 한 글자를 한 번에 치는 방식이다. 그러면 아무리 손가락이 굳은 사람도 1분에 쉽게 3백 타 이상을 친다. 무려 1분에 1300타, 1400타까지 가능하다.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쓸 수 있다. 속기사는 전부 공병우식을 쓰고 있다. 속도가 생명인 정보화 시대에 이것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리석은 위정자 때문에 공병우씨가 그렇게 평생을 애썼는데도 일반에게 보급되지 않았다. 2년 전인가 삼성에서 공병우식 자판을 만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현재 방식으로는 아무리 빨라야 7백 타, 8백 타가 한계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세종대왕은 한국의 바보도 외국의 천재와 비슷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서양 바보들에게 배워서 도리어 바보가 된 위정자가 서양 흉내 내느라고 우리 좋은 것을 다 버렸으니 말이다. 한글의 위대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그것은 바로 표음 문자이면서 표의 문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글 전용을 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한글의 이 장점 때문이다. 그 이유는 한글은 음절 단위로 쓰기 때문에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음절 문자의 장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어원을 밝혀 적을 수 있어서 표의 문자 구실도 제법 훌륭히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우리말과 한자말로 구별해서 설명하기로 하자. 우리말 -- 훈민정음 해례에서 종성 부용 초성법을 택해서 가능한 일이었는데, 조선 중기의 8종성법에서 한글학회에서 이를 다시 살린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뭇잎`-이것을 소리 나는 대로 `나문닙`이라고 적는다고 해 보자. 그러면 도대체 말로 할 때와는 달리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어원을 밝혀 `나무`에다가 관형격 조사 `의`에 해당하는 사이시옷 `ㅅ` 거기다가 주둥아리 입이 아니라 받침에 `ㅍ`을 써서 `잎`이라고 함으로써 척 보면 이것이 나무에 달린 잎이구나 라고 알게 된다. 어원을 밝히기는 매우 어려운 일인데, 한글을 배우면 웬만한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안다. `이것을`-이것을 소리 나는 대로 `이거슬`로 적는다고 해 보자.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이것을`은 `이것`과 `을`을 합한 것임을 아주 간단히 나타낸다. 뜻이 금방 머리가 들어오게 되어 있다. ` 있다`-이것을 `이따`라고 적는다고 해 보자. 이것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일어난다. 한글의 이런 장점은 뜻글자인 한자도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음성을 나타내되, 시각적인 효과로 뜻글자 구실도 훌륭히 해 내는 것이다. 한자말 -- 이것도 아주 잘 나타낸다. `천리만리`-이것을 `철리 말리`라고 쓴다고 해 보자. 그러면 말할 때와는 달리 도대체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가 머리가 아주 비상한 사람 외에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천리만리`라고 쓰면 초등학생도 `천 명, 만 명`, `천 개 만 개` `천 원 만 원`의 `천, 만`이란 걸 알 수 있다. 선생님은 이런 걸 좀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한자까지 가르쳐 주면 더 좋지만, 그에 앞서 바보 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이런 걸 가르쳐 주면 설령 한자를 모른다고 해도 말뜻을 아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고 바보 학생도 천재가 되어 새로운 말을 척척 만들어낼 수 있다. 대신 천재, 천사, 천국, 천치, 천성 등의 `천`은 `하늘, 타고난`의 뜻이 있다는 것도 꼭 알려 주어야 한다. 물론 한자를 곁들이면 더욱 좋고. 그러나 이를 꼭 한자를 병기해서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정도만 가르쳐 주면 아주 정확한 언어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머리가 어느 정도 되는 학생들은 한자를, 한문을 꼭 가르쳐서 조상들이 한문으로 남긴 엄청난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여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울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한글은 바보를 보통 사람으로 보통 사람을 천재로 만드는 경이의 문자이다. 한글의 장점은 연구하면 할수록 계속 쏟아져 나올 게 틀림없다. 널리 알려진 것은 이 글에서 생략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한글은 누가 만들었을까.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세종대왕이라고 본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이런 경이적인 창작품은 절대 여러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천재의 머리에서 나온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위대하다고 수천 명의 머리를 합해서 나온 게 아니다. 상대성 원리가 신의 영역을 건드린 발견이라고 해서 일류 과학자 만 명의 머리를 합해서 나온 게 아니다. 고독하게 한 천재가 각각 발견한 것이다. 이런 것은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방해가 된다. 둘째, 세종대왕은 두 가지만 스스로 했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훈민정음 창제와 작곡이다. 나머지는 누가 했는지, 그 본인의 이름이 거의 다 밝혀져 있다. 만약 세종대왕이 왕의 신분을 이용해서 자기 공으로 만들 생각이 있었다면, 이런 것도 대부분 `어제(御製)`란 말을 붙였을 것이다. 세종실록에 보면 매우 겸손했던 세종대왕이 음운학에 대해서만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말도 아주 직설적이었다. "너희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과 칠 음에 자모가 몇 개 있느냐? 만약에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누가 바로잡겠느냐?" "너희가 (이두를 정리한) 설총만 옳게 여기고 임금의 일은 그르게 여기니 어찌된 일이냐?" 셋째, 당시 학자들은 오로지 유학이었다. 집현전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요새 식으로 말하면 이런 따위의 음성학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연구하는 걸 수치로 여겼다. 그런 상황에서 설령 연구에 일부 참여했다고 해도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한문 숭배가 종교의 수준까지 이르렀던 때이다. 실지로 신숙주, 성삼문이 만주로 음운학자 황찬을 만나러 가는 것은 한글 창제 이후의 일이다. 이들은 완벽을 기하려는 세종대왕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황찬에게는 무슨 훈민정음에 대해 자문을 구하려는 게 아니었고 동국정운을 정확히 만들기 위해 중국 음운에 대해 물어봤던 것이다. 세종대왕은 왕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훈민정음을 거의 혼자 발명하신 듯하다. 설령 직접 창제하지 않으셨다고 해도 관계없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훈민정음은, 한글은 결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니까.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것도 못난 위정자들 탓이라고 본다. 모든 공휴일을 다 폐지해도 한글날은 공휴일로 지정해야 할 것이다. 바보를 보통 사람으로 만들고 보통 사람을 천재로 만들어 주는 한글을 기리는 날을 공휴일로 안하고 도대체 무엇을 공휴일로 한단 말인가. 열심히만 일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한글 창제하는 것처럼 창의적으로 머리를 쓰면 열흘 놀고 하루 일해도 능히 선진국을 앞설 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