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고려시대

고려는 발상지가 한반도가 아니고 중국 사천성 청도이며 현재 그곳에 중국인들이 말하는 가우리(고려의 중국 발음)황제 태조 왕건의 묘가 있다. 그리고 고려 태조 왕건의 족보는 아버지 작제건과 더불어 당나라 이세민과 이조 태조 이성계와 같은 북방 조선인과 중국 화화족의 혼혈로 보이며 그 영토는 한반도와 일본,연해주를 포함한 만리장성 북쪽 지역으로 보인다. 요약하면 고려도 조선과 중국의 혼혈인이 세운 국가이다.

고려에 관한 정사 기록

고구려는 장수왕 이후 국호를 고려로 바꾸었다. 궁예가 세운 태봉의 초기 국명도 고려이다. 세 나라의 국호는 모두 고려(高麗)로 동일하다.

高麗 존속 기간: 918 - 1392

수도 개경

공용어 중세 한국어

정부 형태

주요 국왕 군주제

태조(918년 ~ 943년)

공민왕(1330년 ~ 1374년)

공양왕(1389년 ~ 1392년)

고려(高麗)는 918년 태조 왕건이 건국한 이후, 1392년 조선 왕조에게 멸망하기까지[1] 474년간 한반도를 지배하였던 왕조이다.

신라 말기 송악 지방의 호족인 왕건이 개국하여, 919년에 송악을 개경(開京: 현재의 개성)이라 이름을 고치고, 그 곳을 수도로 삼았다. 그 뒤, 936년 한반도를 재통일하였다.

광종은 왕권의 안정과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도를 시행하고 공신과 호족 세력을 제거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이어서, 경종 때는 전시과 제도를 실시하였고, 성종은 지배체제를 정비하였다. 수도 개경의 외항인 벽란도에서 중국, 일본, 아라비아, 페르시아 등지의 상인들과 무역했다. 요나라(거란), 금나라(여진)등의 침공을 격퇴했으며 송나라와는 우방과 같은 관계를 맺었다.

12세기에 들어 고려의 지배층 내부에서는 문벌 귀족과 측근 세력 간에 정치권력을 둘러싼 대립이 치열해지기 시작해 무신정변이 일어났고 최충헌, 최우로 이어지는 최씨 무신정권이 수립되었다. 또한 유민들은 이 시기를 전후하여 전국 도처에서 정부에 반항하였다.

그러나 13세기에 30여년에 걸친 원나라(몽골)의 침략으로 인해 직·간접적인 지배를 당하면서 국력이 쇠퇴했고, 공민왕의 개혁이 실패로 끝나면서 결국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기점으로 고려는 멸망하였다.

고려가 대륙에 있었다는 근거

1. 서희가 거란에게서 찾아온 강동 6주는 대 소 흥안령 산맥 일대로 중국의 동 북방 전 지역에 걸쳐 있다.





2. 윤관의 9성은 중국의 흑룡강 성 일대로 지금도 기념비가 그곳에 있으나 일본인들이 훼손하고 강속으로 던져 버렸다.






3. 태조 dghkdrjs의 묘가 지금 중국의 사천성 청도에 있고 현지 주민들이 이 능을 가우리 황제의 묘인 영릉(永陵)이라고 하고 있으나 중국 정부는 전촉의 황제 묘라고 주장한다

려의 강역

소결론

손문의 신해혁명이후 중국 공산당들은 그 동안 그들이 속한 나라이름이었던 조선, 고려(가우리), 신라를 역사에서 지우려고 안 깐임을 써 왔다. 그러나 진실은 왜곡할 수 없는 것... 그것도 수천 년 동안 수천 번이나 자신들의 기록을 통해 사실이 밝혀지고 있어 지금은 작전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다. 제사장민족의 글(가림토)과 말(한국어)을 버리고 화하족의 쉬운 글(한문: 상형문자)과 말과 전통(더러움, 막가파, 무작정, 무 경우, 본능적 이기심)을 따르다가 예의, 염치없이 되어버린 지금의 중국인들의 끝은 어디일까? 하나님만 아신다. 지금의 한류는 무엇을 의미할까? 일본에게는 슬픈 향수이고(그들은 한국인들의 슬프고 큰 눈을 좋아 한다) 중국인들에게는 공자나 청나라 황실(태조, 견륭, 강희)처럼 선진, 예의염치 조상 국가에 대한 동경일 것이다. 서양 사람들도 2012년부터 그들의 원류가 히브리인이나 바벨론이 아니고 조선(칸국: 한국, 왕국)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다. 약삭빠른 아무데나 달라붙어 피를 빠는 찰거머리 유대인들은 프리메이슨을 시켜 이러한 한국을 이용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시기에 우리는 서양의 돈과 무력 제일주의, 일원론, 너 죽고 나 살기 식 전쟁을 통한 통합이 능사가 아니고 사랑을 통한 통일의 가능성을 남북통일을 통해 보여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