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7만년 한국 민족사의 유산

가. 유전자

이 글에서 전개되는 내용은 인류기원에 대한 단일지역 기원설을 즉, 아프리카로부터 모든 인류가 발생했다는 관점을 기반으로 한다.

1) 하플로 C

하플로 C 는 하플로 D와 함께 가장 먼저 아프리카로부터 출발해서, 거의 동시에 아시아지역에 도착, 약 6만 년 전 인도북부에서 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플로 C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하위 하플로는 C3x C3c(x는 exclude의 의미)이다. 이 하플로는 일명 징기스칸 유전자로 불리며, 몽골과 그 부근 시베리아 소수 민족에게서 가장 많이 발견되며,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유럽에까지 유라시아 전체에 널리 퍼져 있다. 한국인에게 약 10~15% 정도 발현되는 것으로 나타나며, 동아시아지역에 초기에 정착한 구 아시아인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흥미 있는 것은 일명 누르하치 유전자로 추정되면, 만주와 몽골 족에서 많이 나타나는 C3c는 한국인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는 것이다. 중국 쪽에서 C3c를 애신 각라씨를 비롯한 만주족 지배층의 유전자로 추정하여, 연구를 진행한 것이 있다. 만일 C3c가 만주족 지배층의 유전자라면, 금-청으로 이어지는 만주족 지배층이 신라 왕족과 관련 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C3c는 3000년 전 나타난 역사가 짧은 변이이다. 만일 만주족이 근원이라면, 그 기간동안 가장 근거리에서 접촉해 온 한국인에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다소 이상한 사실이다. 몽골 쪽이 근원이고, 요,금,청을 거치는 동안 지속적인 몽골족과 만주족의 빈번한 접촉과 결합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아쉽게도 위 연구에 애신각라씨의 후손들이 직접적으로 표본을 제공한 것은 아닌 것으로 나와 있다.

2) 하플로 D

하플로 D도 C와 마찬가지로 이른 시기 동아시아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주요한 분포는 티벳과 일본지역이다. 티벳 인은 거의 D, D3, M134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일본 쪽은 주로 D2가 북쪽 삿포로의 아이누인과 동북지방, 남쪽의 오키나와와 부속도서에서 높게 발현되며, 혼슈 섬에서도 지역에 따라 40%가 넘는 비율로 보고되는 것도 있다. 한국인에게 나타나는 것은 D, D2로서 3~4%에 그친다. D2는 특히 일본에서 역으로 흘러나온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 하플로 N

K에서 분화된 NO가 다시 분화되어서,N과 O집단으로 나누어졌다. N은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했으나, 다시 북향하여서, 현재는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동유럽의 핀족 등에서 많이 발견된다. 한국인에게 원시형인 NO과 시베리아 야쿠트족을 비롯한 소수민족에서 높은 수치를 보이는 N1a가 3~5% 정도 나타난다. 한국인의 북방기원을 논한다면 빼 놓을 수 없는 유전자일 듯.

4) 하플로 O

하플로 O는 동아시아지역에서 가장 성공한 부계 유전자 집단이다. 이 하플로에 속한 변이들은 대부분 남아시아 혹은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가장 많은 인구의 중국 한족의 80% 이상을 차지함은 물론 기존에 북방계로 서 여겨지던 몽골 족이나, 만주족 등 많은 민족에게서도 50%이상의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결국 누군가의 언급같이, 유럽 대륙에서 성공한 후위 하플로 집단인 R이 선행한 I, J하플로를 남북으로 몰아내고, 중앙에 자리 잡았듯이, 동아시아에서는 O의 성공이 선행한 C를 남북(몽고와 동남아시아)으로, D를 동서(일본과 티벳)의 변방으로 몰아내고, 중앙의 광활한 영역을 차지했다는 언급은 사실로 보인다. 이 하플로에 속한 하위 하플로도 많은 수이지만, 한국인과 관련되어서 중요한 것은 O1a,O2b,O3a3,O3a3c 등이다.

가) O1a

O1은 주로 고대 백월족이었다고 여겨지는 Kam-Thai 계통에서 많이 나타나며, 중국 지역의 많은 고고학 발견, 특히 양자강 유역의 인골 조사 결과, 이들이 가장 먼저 중국 지역에 정착, 농경을 시작한 민족으로 여겨진다. 산동 지역 대문구 문화에서도 이들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른바 동이문화도 이들에게서 시작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인에게는 3~4%의 낮은 비율로 나타난다.

나) O2b(O-SRY465*),O2b1(O-47z)

한국인과 일본인에게서 특히 많이 나타나는 타입으로서, 가히 부여 유전자 혹은 칭기스칸, 누르하치 유전자와 같이, 동명성왕 유전자라고 부를 수 후보로 여겨지는 북방 하플로이다. 세계 언어의 Language family를 보면 한국어와 일본어는 고립된 언어로 나타난다. 주변 민족에게는 거의 드문, 특히 대륙의 한족에게는 거의 보고되지 않는 이 하플로가 유일하게 두개의 고립된 언어에 일치되게 많이 나타나며, 이 두 언어의 문법도 거의 일치한다. 이것을 우연이라 볼 수 있을까? 물론 동남아 지역(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에서도 O2b가 발견된다. 그러나, 이 변이 다양성과 발현빈도로 볼 때, 한국이나 일본 쪽이 그 기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O2b는 한국에서 발생하고, 일본으로 옮겨간 후, O2b1이 4000년 전쯤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혹은 한반도 남부에서 O2b1도 옮겨갔을 것이다.

주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집단이 이룩한 선사시대 일본의 야요이 유적이 O2b집단과 O3집단이 주도라 하더라도, 역사시대 이후에도 한반도로부터 지속적으로 인구유입이 이루어 졌을 것이고, 이 집단의 수장이었을 왜왕이 한반도에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동남아지역의 분포하는 O2b는 백제의 담로의 흔적을 뜻할 수도 있지 않을까? 흑치상지의 출신에 관한 여러 의문들이 반드시 근거가 없는 것일까? 한편으로, 한반도에서의 O2b1과 D2의 분포는 왜계 집단의 가야 지역및 영산강 유역의 일시적 지배의 결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주족에게도 5%,혹은 연구에 따라서,15%의 제법 높은 빈도로 발현되는 것으로 보아서, 만주족에서 O2b의 오래된 형태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만주족의 일부분은 한국인의 선조와 분명 아주 가까운 일부분이거나,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접촉한 결과일 것이다.

다)O3a3( LINE1)

이 하플로는 대륙의 묘요 계통, 한족 중에서는 객가인에서 많이 나타나며, 한국인과 이들 계통 문화의 몇몇 유사성을 생각해 볼 때, 그 연원을 탐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치우를 선조로 신봉하는 묘족, 한족 중 유난히 개고기를 좋아하는 객가인, 혹은 한국인의 선조 중 일부가 대륙에서 함께 생활한 흔적일 수 있고, 동이 문화라는 것은 O1의 백월 문화를 기반으로 O3a3계통의 묘요계가 발전시킨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라)O3a3c(M134)

단일 하플로로 한국인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이고, 어떤 저명한 분이 Bric 사이트에서 한국인의 표지 유전자라고 언급하였던 하플로이다. 필자는 이 하플로가 한국의 표지 유전자가 될 수 있는 지 회의적이다. 물론 가장 많이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다른 하플로들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고, 중국 한족에게서도 대부분 비슷한 비율로 많이 나타나고, 티벳인들에게서도 D하플로 다음으로 많이 나타난다. 티벳인의 기원에 대한 학설로 D위주의 토착 티벳고원에 중국 서북부의 저강족이 혼입하여, 형성되었다는 설이 있고, 이 저강족은 또한 현재 중국 한족의 조상이라 여겨지던 황제 헌원과 관계 있다는 설이 있다. 20%에 달하는 북방 발원 중국 경유 부계 우세 유전자 O3A3C(M134)는 역사시대 한인. 한웅, 단군조선 때부터 비롯된 대륙 쪽 인원의 끓임 없는 유입의 결과일까? 아니면, 어느 분 언급대로, 중앙아시아로부터 청동기문화를 가져 온 한국인의 주류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하플로 집단이 청동기 시대부터의 한국인의 주류이던, 대륙 쪽 인원의 유입이던 한국어의 생성에는 집단의 크기에 비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본다. 혹자는 김병모 선생의 견해를 따라서, 이란고원에서부터 출발한 이 집단의 언어가 바로 한국어의 모태이고, 이로써 주변 알타이어와 한국어의 큰 차이를 해명할 수 있다고 한다.

5) 결론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한국인은 동아시아의 북방에서 발원한 C3c 구 아시아인 유전자가 10-15% 이며 역시 동아시아 북방에서 발원해 약 4천 년 전 갈라져 일본과 티벳에 있는 D, D2유전자가 3~4%, 남측발원 유전자 N이 3-5%, 북방에서 중국을 통해 들어온 우세한 부계 유전자 O가 53.3%로써 1992년 서울의대 이홍규 박사가 미토콘드리아 이브 유전자 이동도를 통해 증명한 대로

1.한국인 주류는 바이칼호에서 온 북방계 아시안으로

2. 70~80%가 북방계,

3. 20~30%는 남방계,

4. 그리고 일부 유럽인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지금까지 기술한 7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바이칼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문자 적 한국 민족사흐름과 일치한다.

나. 정신적 유산

1). 샤머니즘

수만 년 간 바이칼에서 인간이 집단화되고 정착하면서 언어 가 수 십 배로 폭발하고 생각과 사고도 폭발하면서 소위 호모사피엔스가 생성되었는데 이 때에 자연 관찰을 통해 이치를 인식하고 식물의 열매인 식량 확보를 위해 태양 중요성 자각하게 되었으며 기상을 판단하고 계절을 인식하면서 자연이 인간을 창조하였다는 과학적, 진화론적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천부적으로 생긴 것이 하늘땅사람이 하나라는 관념, 즉,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우주와 자연과 내가 하나의 생명이며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에 나타나 있는 이른바 삼신사상이 나타남 것이다. 즉 자연이 인간을 창조했으므로 인간은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야한다는 본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종교를 갖게된 기원이다. 이 종교형태의 본성ㅇ의 전파가 언어의 전파이다. 따라서 한인시대 수 만 년 간의 기록이 63.182년이라는 환단 고기(이후 한단 고기)의 기록이 합리적이다. 한국이라는 의미는 하나의 나라라는 뜻이며 삼한은 세 개의 한 나라로 본래 한 나라인 모한, 하늘에 가까운 진짜 한 나라인 진한, 사람이 많이 생긴 한나라로 기원 전 8천년 전 홍수 이후에 상형 문

자인 한문 글자가 생기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삼한의 전통을 1700 년대에 어느 러시아의 학자가 트랜스 바이칼의 에벤키 족에게서 소개 은 말이 소위 샤머니즘인데 본래의 샤머니즘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민족이 우리 한 민족이다. 삼신사상, 음양 오행, 소도, 관경, 제천 의식, 절기. 사주팔자, 풍수지리, 음양오행, 궁합, 택일, 점치는 것 등을 얼마든지 실 예를 들 수 있다. 모든 종교는 샤머니즘에서 마왔다. 불교는 인다스,간지스강 유역의 농경사회화에 대한 반발로 홍수 이후 샤카족에서 생긴 인본적인 집단에 대한 도피 종교이고 유교는 번한(중국의 노나라)에서 생긴 중국 인본에 야합하는 삶의 지침이다. 기독교의 성경에 있는, 절기, 요일, 시간개념, 인간 세계의 죄악시, 카인과 아벨, 빗자루, 노아 홍수 등 설화도 홍수를 거친 이후 이 삼신 사상에서 나왔는데 전술한 동방의 창조주(조물주) 사상이 예수를 통해 흑암 속의 미개하고 인육을 먹어온 백인으로 고려하여 가장 늦게 원형 그대로 전파된 종교이다.

요약하면 삼신 사상은 네안데르탈인이 호모사피엔스 화하면서 자연적으로 생긴 정신적인 유산으로 바로 우리들의 언어와 생각으로 인간이 자연과 타인간에게 적응하기 위한 행동의 기준이다. 바로 그 실례가 우리가 자연에서 물려받았다고 일고 있는 양심과 정의, 착한 것을 비롯하여 근검, 절약, 성실, 예의 등이고 모든 종교의 기원이다.이 샤머니즘의 주요 내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후대 호모사피엔스의 언어, 종교, 문명, 국가 형태, 전쟁, 사회 제도, 법률 등 삶의 전 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 샤머니즘적 언어

현재 통용되는 한국어의 어휘 수는 약 44만개로 그 중 22만개가 한문으로 표기되는 것이고 22만개는 한문으로 표기되지 않거나 한문과 한글로 이중으로 표기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인도 유로어와 한국어의 어근이 같은 단어도 22만개가 되며 대부분 한문 단어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실 예로 한국 말 "뫼"는 삼(山)인데 영어로는 "마운틴", 불어로는 "몽"이라고 하나 한문의 한국 발음은 "산"이라 고 한다. 한, 둘, 셋도 영어로는 원, 투. 쓰리 로 거의 같은 발음이나 중

국어로는 일, 이, 삼으로 완전히 다르다. 이로서 4-5만 년 전에 서쪽으로 간 아리안 민족의 언어와 우리말이 근원이 같음을 알 수 있다.

한문 식 표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농경 문명에 관한 것의 경우 단군 시대로 볼 수 있으나 대부분은 인구가 많아진 이씨 조선 이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한문이 표기하는 대부분의 어휘는 복잡한 인간사회에 필요한 것이거나 농경에 관한 것이지만 한문이 표기하지 못하거나 이중으로 되어 있는 순수 한국어는 자연이나 자연 현상 및 형용사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자연에서 보이거나 들리는 데로 표현하고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예: 간들간들, 늑대와 함께 춤을, 개똥이, 돌 쇠,) 남성의 이름도 중국인은 밭에서 힘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의 상형 문자에 한국 발음을 붙였으나 우리는 산아이=사내=라고 부른다.

필자가 보기에는 순수 우리말의 대부분 어휘는 오래된 속담이나 노래 가사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현재 우리민족성에 그대로 남아 있고 모두 샤머니즘적 정서와 감정에서 유래되었다.

민족성에 남아 있는 샤머니즘은 천지인사상. 천지신명, 신토불이, 지역 감정, 학연 지연, 등이고 속담에 남아 있는 샤머니즘은 열 손가락 깨물어 아 아픈 손가락 없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팟 심은 데 팟 난다. 등 수 없이 많다.

노래 가사에는 산토끼, 나비야, 나의 살던 고향, 섬 아기 등 대부분 동요와 애창곡이다.(반면에 서양은 대부분 도시와 짝짓기 노래다)

3) 샤머니즘과 한국 민족

한국인처럼 자연신을 섬겨 온 민족은 천지인이 한 생명체, 자연과 인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수 만 년 간 형성된 인간의 본성으로 자연을 최고신으로 여기면 서 자연을 숭배하며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산다. 우리는 내세를 인정하고 천문을 관측하며 매장을 하고 산에서의 삶을 살았으며 천문을 오래 관측해 온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중국 등 4대강 민족, 유럽민족처럼 인본 신을 섬겨온 민족들은 농경을 시작하면서 문명이 생기고 인간이 식량을 만들 수 있고 인간이 모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종국에는 인간이 신이라는 믿음을 같게 되었다. 주로 남성의 힘과 노력이 필요한 해양,(그리스, 로마), 강 유역 농경지대(수메르, 황하, 등 4대강)와 어두운 곳 사람들이 가지게 된 믿음이다. 이들에 대해 자연신 제사장들은 이를 죄악시하고 그 징계로 로 홍수, 지진, 난리, 언어혼잡, 전쟁, 기도불응 등 벌이 내려진다고 믿었다.

자연주의 민족사와 인본주의민족사는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자연 주의: 인본주의)

1. 자연에 적응: 자연 극복

2. 제사 통치: 법 통치

3. 간섭 없는 자유 방임적 직업, 계급, 지위의 걬, 계급이 없는 삶: 통제, 계급의 사회

4. 세금과 나라의 보호가 있는 삶: 인간의 법(국법)으로 간섭 받는 삶

5. 가족 집단적 공동체: 사회 집단적 공동체

6. 지금의 한국인 정서: 중국인 및 서구인 정서의 차이

7. 제사장은 소도, 관경 유지: 통치자는 군대 정부 유지

8. 제사장은 하늘제사 및 비, 구름, 바람 통제: 통치자는 인간을 통제

3) 샤머니즘의 전쟁과 종교

샤머니즘의 전쟁은 수 만년 내려온 인간의 본성과 편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성 및 지성과의 전쟁이었다. 자연신주의자들은 양심, 선, 착한 것, 무죄가 최고 가치이고 지를 지으면 천(자연)벌을 받는다고생각 하는데 반해 인간 신주의자들은 힘과 돈이 최고 가치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힘이 없는 것이 죄라고 생각했다. 성경의 창세기는 자연주의 가치를 주장 한 것이고 기원 전 2.600년 황하유역의 탁록의 전쟁이 이를 끝내는 하늘 나라와 인간 나라(속세)와의 전쟁이었다. 한민족은 아시아의 인본 나라(세속, 주로 선비 족)의 침략에도 불구 마지막 남은 자연주의 나라이나 역사적으로는 인본주의의 침략을 겪어왔다. 한인, 한웅, 단군 시대의 삼한과 신라, 고려는 자연주의 나라였으나 이조는 인본 유교 나라였다.

- 불교는 남성우위 제시장 브라만들의 압제의 반동으로 생겨난 삼신교의 변형 종교이다

- 회교는 자연신 종교의 지역화

- 예수는 옛 하늘나라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통해 하늘 나라(삼한)의 부활을 주장한 지도자, 단군, 하나님의 아들이지 결토 유대인의 자손 번성과 돈을 추구한 지도자가 아니디.

*독일 신학자들은 한국(하늘 나라)에 기독교인이 많은 이유를 샤머니즘(삼신교)때문이라고 한다.(장경동 목사 간증)

자연신과 인본신의 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전쟁 및 유대 자본주의와 한국 온정주의 및 서구자본주의, 민주주의와 한국의 인정주의 양심주의를 통해 지금도 실제와 마음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4) 시대별 샤머니즘의 흐름

우리 역사에서 자연신관과 인본신관의 충돌로 굴절된 샤먼 역사의 주요 사건은 우리 민족이 겪은 주요사건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 언어시대: 한인 시대

- 모계, 혼성, 부계 사회의 분리

- 파미르, 천산, 바이칼호 일대에 살아온 최초의 모계 중심 호모사피엔스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12연방을 샤먼으로 통일하고 살다가 가) 일부는 육식과 음주로 인해 부계 중심 집단을 이루어 기원전 2만 년 경 인도 북쪽 스텝 지역에 머물다가 기원전 만2천년경 인도로 들어가 브라만교와 산스크립트 문자, 인도 유로어를 만든 후 영역을 페르시아, 유럽 지역으로 확대하였는데 기원전 7백년 경 브라만교에 대한 반발로 인도 북부 지역에서 석가에 의해 불교가 생성. 이 불교는 삼신교에서 나간 브라만교에서 계급제도만 뺀 것이다. 영국의 스톤헨지는 아리안의 삼신 천문관측 유적이다. 나) 일부는 비가 안 오는 기상과 따뜻한 지역을 찾아 부계 제사권을 가지고 아무르 강을 따라 남하하여 2만 년경에 요하에 이르러 요동인근 볍씨 문명을 만들고(카터 코벨박사 일본 미술사 참고) 한웅 시대의 치우 때(기원전 2.600년 경)에 철기 문명을 중국에 전달했다. 다) 여성중심 호모사피엔스 본류는 기원전 2만 년 경 추운 날씨로 천산에서 고비사막(당시 초원지대)로 내려와 흑피옥 문명을 일으켰다.

- 아리안 문명과 요하옥 문명은 모두 남성 중심 샤머니즘이고 흑피옥 문명은 여성중심 샤머니즘이나 모두 태양과 해, 달, 별을 포함하는, 천신제사, 여신 제사, 정령 숭배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 기원 전 5천 년 경 한웅의 주류(선비족)가 남쪽으로 내려와 전체 중국, 동남아, 일본을 삼한으로 나누어 관경의 개척 및 본격적인 농경 시대를 열면서 나라 이름을 신시, 배달이라고 하고 제사장들이 중심이 된 샤머니즘으로 전 지역을 통솔해왔다.

- 문명 시대

가) 한웅 시대

이 때에 가장 중요한 사건은 샤먼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황하 유역 농경 집단의 반발이었다. 이들의 전투는 탁록에서 70여 년 간 계속된 치우와 헌원의 전쟁인 탁록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쟁 이후 샤먼 제국의 농경 통제권이 치우에게서 한원에게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만주와 황해를 중심으로 한 단군 조선으로 제한되고 북쪽 제 부족들과 중국 대륙에는 이미 설치된 소도를 통한 제사권 만 미치게 되었다.

나) 단군 시대: 삼조선 시대

단군세기에 44세 단군 구물 때(기원 전 425년)에 삼한을 삼조선으로

부르도록 했다는 근거가 있다. 조선의 영토외 성격을 잘 알 수 있는 근거가 있는데 바로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이다 즉, 해와 달에 제사를 지내고 바다(중국 동해안과 한반도 해안)에서는 고기를 잡고 육지에서는 양을 키우는 나라라는 뜻이다. 즉 홍해 연안지역을 말한다. 이때에 중국에 대한 샤먼의 제사권은 중국의 연안(삼한 지역)을 제외하고 거의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다) 삼국시대 (삼조선시대)(기원전 425년- 기원 후500년)

당시 삼조선은 막조선(후에 주로 고구려 지역), 번조선(백제: 북경과 천진을 포함하는 산동성 이북 해안), 진조선(신라: 강소성 이남에서 상해 북부까지의 해안 지역)으로 한반도는 막조선(고구려)에 속해 있었고 소도관경(제사권이 미치는 영토)와 농토 통치권은 분리되어 있었다. 당시 신라의 소도는 중경(지금의 충칭)에 있었다.

한편 이 기간 중 중국은 농경 황하문명을 이루면서 요, 순 시대를

거쳐 하, 은, 주, 한나라 진시왕의 농경민족 통일에 이어 춘추전국 시대 이후 극심한 인본주의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기원 후 6세기경 수나라가 중국을 다시 통일할 기세가 보일 즈음 신라 지증왕은 중원에서의 샤먼 시대가 끝난 것을 느끼고 보다 더 자연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안전한 한반도로 나라를 옮길 결심을 했는데 실제 목적은 샤먼전통의 보존이었다. 미술사학자인 박용숙(동덕여대, 중앙대 교수)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기원 후 500년 경 한반도에 갑자기 샤먼의 유적인 고인돌(전 세계 5.5만 개 중 4만 개) 수가 증가했다는 증거를 제시한 바 있다. 고인돌은 주변에 별을 세긴 바위가 많은 것으로 미루어 천문관측의 보조재료로 보인다.

지증왕은 정부를 한반도로 옮긴 후 신라에서 왕이라는 호칭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으며 제도와 체제를 개편, 정비하여 상복법을 제정하였으며, 주, 군, 현을 정하고 각 주에 군주를 두는 등 수나라의 좋은 제도를 처음으로 받아드렸다. 또 한국의 고대 사회에서부터 전해지던 순장 풍습을 최초로 폐지한 군주이기도 하다.

그 후 한반도 신라를 제외한 중국의 삼조선이 모두 망한 후 샤머니즘은 신라에만 남게 되었다.

라) 고려 시대

고려시대는 태조 왕건에 의해 한반도, 일본을 비롯하여 중국 대륙 전체에 삼한 관경과 습속이 모두 부활한 시대이다. 그는 많은 부족

장들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생리적인 방법으로 그 많던 농경 군웅들 간의 전쟁을 막았고 삼신교에서 마음 수련 만 더해진 종교인 불교를 숭상함으로써 실제로는 삼신교를 부활시켰으며 광종은 농경 민족들의 군주들이 힘들여 만든 노예 제도와 계급제도를 노비 안검법과 과거제도로 무효화 시켰다. 남녀 평등 제도와 중국 전 지역에 자율적인 산업과 기술을 육성시키고 호족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하였으며, 화폐 제도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고려의 문물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태조는 남쪽 양자강 입구에 있는 상해(벽란도)를 통해, 고려 청자, 고려 인삼, 비단, 등 수 많은 공산품을 수출하였고 부흥 시기를 이루어 소위 아시아의 등불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마) 이조시대

이조시대는 선비족에 의한 삼한 습속 말살 시대이다. 샤먼의 전통을 가진 고려와 원나라가 말하고 홍건적 출신 선비족 토종 주원장이 중국을 통일하자 중국 하남성 통허현 함주 태생의 의 이성계가 예의 없고 더러운 뙤놈들을 훈련시키기 위해만든 그의 홍무예제를 한반도 백성들의 노예화, 계급화 하는 도구로 사용했고 고려가 부활시킨 삼한의 모든 제도를 말살했다. 양반 쌍놈제도, 선비 우대. 남존여비가 그것이다. 필자는 누가 뭐래도 이조 오백 년 간 저지른 이성계 왕조의 죄악으로 미루어 이성계는 중국 농경 문명사를 숭상하여 삼신교와 불교의 말살을 위해 유교를 숭상한 선비족이며 수만 년 삼한의 역사를 중국화 하여 말살하려 한 역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문을 편의로 추가한 것 외에 삼한 고유의 언어와 심성(양심, 인정)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헌원의 후예들인 농경 인본신(천자)의 끈질긴 억압에도 살아남은 유일한 단군의 자손이다.

바) 대한민국시대

우리가 비록 남북이 나뉘었지만 누리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 시대는 수 만년 삼한과 400년 고려의 부활시대이며 자유 천지시대이나 기술한 중국 인본주의와 서양 자본, 민주 인본주의로 분열의 위기를 맞고 있다. 샤머니즘적 관점에서 한국 민족사의 전개 방향은 앞으로 남한중심의 통일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중국이 분열되어야 이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선비족 역사로 미루어 아무리 한미일 동맹이 강하고 중국이 약하더라도 완전히 망하지 전에는 북한을 중국에 편입시키는 것 이상의 양보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통일은 중국이 망해야 가능하고 중국의 패망은 동북삼성 지역에서 조선족의 반발과 백두산 화산 폭발이라야 가능하다.(존 티토 목사의 예언과 동일)

다. 언어와 문자

학자들에 의하면 문자는 기원 전 5천년 경 수메르에서 처음 생겼고 언어는 10-15만 년 전에 네안데르탈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이동할 때부터 집단 별로 새겨났다는 것이다. 우랄 알타이와 천산, 바이칼 지역에 오래 머물면서 호모사피엔스가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언어가 통일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문명을 의미하는 문자의 연령이 7천년인데 비해 언어의 연령은 7만 년인 것이다. 필자가 한단고기 삼성기전 하권에 기록된 한인의 나라 역 년이 63.182년이라는데 주목한 것도 바로 네안데르탈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바이칼로 와서 언어를 통일했다고 보는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이었다(이홍규 박사 미토콘드리아 이브 유전자 이동도 참조) 이렇게 해서 최초로 통일된 호모사피엔스의 최초 언어는 의식주, 생식, 사람의 몸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고 당연히 한 마디 언어라고 본다. 그 다음이 눈에 보이는 자연환경이었을 것이다. 즉, 산, 들, 강, 물 등이다. 살면서 그들간의 관계성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왜?" "무엇" 들이고 드디어 해와 기상이 인간으로 하여금 열매와 과일을 먹게 만들고 해와 달과 별이 시간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자연과 바로 연결된 생명체라는 것과 맨 인간이 자연에서 나온 마지막 생명체로 만물의 영장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과 땅과 하늘이 하나인 마음, 즉 우주와 지구의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생명체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삼신 사상을 갖게 된 것이고 여기서 사람으로서의 마음과, 심성과 정서가 생기고 가치기준인 양심이 생겨났다고 본다. 즉 언어에서 생각이 나왔는데 호모사피엔스의 발상지에서 나온 언어가 원형 언어이고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국어라는 점을 얼마나 조상들에게 고맙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이홍규박사의 유전자 이동도(이 책의 6페이지 참조)를 접한 후 인류사와 우리 민족사에 대한 대부분의 의문이 풀렸는데 그 단서가 바로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말이었다. 최초의 의문아 " 아리랑"에서 "알"이란 단어의 의미와 출처였는데 1996년 미국 켈리포니아주 어바인에 위치한 케리포니아 신대원 박사논문을 쓸 때 어지간히 애를 먹은 기억이 난다. 이때 후배 김창범 목사(전 건영그룹 홍보 상무)의 소개로 고신 원로목사이며 기독교상고사에 관한 책 3만 여권을 소장하고 계셨던 전흥상목사(동방의 십자가 저자)님을 만나 많은 자료를 얻어 박사 학위논문"성경제사와 한국 제사 비교"를 배제민교수님 지도로 완성하였다. 이 때 "알"이라는 말의 뜻을 두고 하느님께 기도를 했는데 어느 날 새벽에 "내가 바로 알이다" 라는 응답을 받고 전목사님께 확인한 결과 같은 대답을 얻어 이를 논문에 쓰게 되었고 후배 유석근 목사가 "아리랑 고개를 넘어 예루살렘으로"라는 책에서 자세한 내용을 시중에 소개하게 되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한국어는 필자의 모든 저작물에 필수불가결한 주요 근거가 되었고 영감이 되어 왔다. 많은 동서양 학자들도 한국어와 타밀어의 공통단어 20만개, 타밀어와 인도 유로어 같은 단어 20만개라는 놀라운 결과를 발견하여 필자의 가정이 증명된 바 있다. 우랄알타이어에서 중국어 인도어 유럽어가 나간 것이고 이를 뒷받침 듯 1만 3천 년 전 고비사막 흑피옥 등어리에 한글, 한문, 알파벳이 나란히 새겨져 있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알아랏. 알알해, 알아비아, 알이안, 알타이, 알물(흑룡강), 알아스카 등 유라시아 대륙의 중요 지명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약 4만 년 전 한국어에서 아리안 어와 한웅 어가 갈라졌고 1만 2천녀-기원전 2천년 경에 아리안어와 타밀어(드라비다어)가 인도에서 결합하여 인도 유로어가 만들어지고 여기서 페르시아어, 유럽어가 생겨났고 동방에서는 기원 전 약 1만 년 전에 중국어가 한국어에서 기원전 2천년경에 일본어가 한국어에서 각각 갈라져 나갔다. 단군 조선 때 조선인들에게 한문 뜻을 통일적으로 알게 하려고 4세 단군 가륵 때(기원전 2.181년) 삼랑 을보록을 시켜 가림토 38자를 만들었다.

따라서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든 것이 아니고 예 성인들의 표음 문자를 본 따 만들었다 라는 기록이 1940 경북 안동 정씨 고가에서 발견된 한글 해례본 정인지 서문에 가림토 문자는 조상들의 표음 문자를 본따 만들었고 그 목적은 나랏말이 중국과 다르다고 했는데 한단고기에서는 당시 가림토 38자를 만들게 된 근본 목적이 중국인들의 지도를 위해 조선이 만든 것이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중국어는

천자문을 모르면 해석이 안 되는 단어가 많아 중국인들도 한글(가림토)을 알아야 한다.

* 관련 내용의 정인지 서문

3. 所以古人因聲制子 以通万物之情 以載三才之道

옛 사람이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삼재의 도를 실었다

언어의 분화를 통해 본 바와 같이 한국 민족은 분명히 인류의 시원 민족임이 증명된다. 그래서 2012년 유네스코는 이 한국어 원형 언어 중하나가 포함된 노래인 "아리랑"을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했다.

동물이나 식물의 종자 개량의 실예를 들어보자 6만년간 종자개량을 한 민족과 , 6천년간(중국인, 유대인)또는 2천년간(일본인), 또는 200년 간(미국인) 종자개량을 해온 민족이 그 질적인 면에 있어서 같을 수 있겠는가? 인간이 말을 하게 되는 단계를 생각해 보자. 목청이 생기고 소리를 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그 다음에 의지가 반영될 것이다. 즉 사람과 사람 간 신호의 필요성이 생겼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인간이 의사 전달을 시작할 때 언어는 두 가지 흐름이 필연적으로 생성하게 된다. 교착어(膠着語agglutinative language)와 도치어(倒置語 Invert language)이다. 한국어와 영어를 예로 들어보자. 교착어인 한국어로"나는 학교로 간다" 라는 말을 한다면 영어로는 "I go to school."이라고 한다. 교착어는 말하는 주체가 맨 앞에 오고 그 다음이 목표를 열거하는 반면 도치어는 나의 행동이 먼저 열거된다. 교착어의 경우 행동을 하기 전에 목표를 정하게 되고 목표를 정하려면 마음속에서 두뇌를 이용하여 사고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럴 경우 어느 민족이 앞선 문명 민족일까? 물론 교착어를 사용하는 민족일 것이다 도치어를 사용하는 민족은 언어가 형성되던 상당한 기간 동안 본능적으로 행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교착어는 우랄 알타이어, 한국어, 일본어, 터어키어가 여기에 속하고 도치어에는 저들이 소위 앞선 언어라고 주장해 온 영어와 중국어가 여기에 속한다.

한글의 우수성은

첫째는 만들어진 기간이다. (*세종 재위 32년)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여지고 있는 문자는 로마자와 한자인데, 이것들은 각기 3천년 이상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지금도 한자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어쩌면 한자가 쓰이는 동안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불완전한 문자라는 말이다. 로마자가 불완전한 것도 두말할 필요 없다. 로마자 표기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유독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거의 완벽한 한글에 비해 로마자는 표현할 수 없는 음이 너무 많아서 어떤 수를 써도 한글로 쓴 것을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한글이 로마자보다 시원찮은 문자라면 오히려 한 번 정해진 로마자 표기에 모두들 감탄하기 바빠서 딴 죽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자가 지닌 결정적인 약점은 모음이다. A, E, I, O, U 다섯 글자 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는 게 반자 음인 W, Y이다. 그러니 한글로는 간단히 표시되는 `ㅓ, ㅕ, ㅡ, ㅢ` 등은 원천적으로 표기 불가능하다. `ㅐ, ㅒ, ㅚ` 등도 불가능하다. 반면에 한글에는 모음이 무려 10개나 되는데다가 이를 응용하면 얼마든지 이중 모음을 더 만들어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 모음을 발견하기까지 무려 3천년이 걸렸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이를 불과 30년도 안 되어 완벽하게 창제하셨다. (세종 25년인 1443년에 창제 완료하고 세종 28년인 1446년에 반포함.) 로마자는 멀리 이집트로 그 기원이 올라간다. 아직도 이집트 글자를 상형문자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아니다. 그것은 표음 문자이다. 이를 밝혀낸 사람이 바로 로제타 돌을 해독한 저 유명한 언어 천재, 16살에 대학 교수가 된 샹폴리옹(Champollion)이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가져온 로제타 지역의 괴상한 돌을 그 이전 사람은 모두 그림을 보고 추호도 의심 없이 상형 문자로 알고 그 뜻을 읽어내려고 머리가 빠지고 벗겨지고 희어지도록 아둥바등 애만 태웠다. 그러나 샹폴리옹은 그 아래 쓰인 그리스 문자에 힌트를 얻어 그것이 상형 문자가 아닌 표음 문

자라는 과감한 가정을 하고 연구한 결과, 마침내 이를 다 해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 동그라미가 왕을 뜻한다든지 하여 약간의 표의 문자적 요소도 있긴 있었다. 문제는 이 이집트 문자가 너무 복잡했다는 데 있었다. 그 그림을 일일이 외워서 그린다는 건 보통 사람으로선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를 아주 간단히 바꾼 인종이 나왔다. 그가 바로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나와 지중해를 휘어잡아 곳곳에 식민 도시를 건설한 페니키아인이다. 그들이 건설한 도시로 제일 유명한 게 바로 한니발의 카르타고이다. 이들 페니키아인들은 상업과 군사 중심의 인종이라서 복잡한 문자는 영 생리에 안 맞았다. 그래서 이를 대폭 간소화한 것이다. 거의 그림이라는 느낌이 안 드는 추상화한 문자를 만들었다. 이와 비슷한 것이 구약 성경을 기록한 셈족의 문자이다. 이것도 이집트 문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두 문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음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하다가 현재는 야훼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하나님 이름을 입으로 감히 발음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 발음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여호와나 야훼나 문자 상으로는 똑같다. 로마자로 표기하면 둘 다 `YHWH`이다. 사실 음운 현상에서 모음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이 변하지만 자음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대로 사람들은 이런 문자를 큰 불편함 없이 쓸 수 있었다. 대신에 그 발음을 정확히 하려면 굉장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보통 머리로는 거의 불가능했다. 모음을 발명하고 또 글자 모양도 더욱 간단하고 아름답게 만든 인종이 바로 저 유명한 그리스인이다. 이들 때문에 비로소 문자가 소리나는 대로 기록할 수 있었고 보통 사람도 누구나 약간의 교육을 받으면 바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이건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다. 말은 어차피 누구나 아는 일이고 이제 이를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자 익히는 데 허비하는 시간 대신 생각하는 시간에 투자함으로써 인류의 지식과 지혜가 폭발적으로 늘어 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남한 정도 되는 그리스가 그 후 얼마나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는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 원동력은 바로 자음에 이은 모음의 발명이었다. 이것은 후에 아라비아 문자가 발명됨으로써 수학적 지식에 날개를 달아 주었던 것과 유사한 엄청난 일이었다. 여담이지만, 그리스에서 나온 영어 단어 rational(합리적인)은 원래 구구단을 욀 수 있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그만큼 문자로 기록한 구구단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외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라비아 숫자로 기록해 버리면 천치 아닌 한 누구나 몇 대 회초리만 맞으면 초등학교 2학년이라도 외울 수 있다. 그리스인은 이 모음을 발명한 게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알파벳의 제일 첫 자와 끝 자를 모음으로 장식했다. 그게 바로 알파(A)와 오메가(Թ)이다. 각각 `ㅏ`, ` ㅗ` 발음이다. 알파벳이란 말도 첫 두 자, 곧 모음 하나와 자음 하나를 일컫는다. 로마자로 말하면 에이비(AB)나 마찬가지이다. 알파베타(Alphabeta)라고 하던 것을 나중에 영어에서 알파벳(Alphabet)이라고 한 것이다. 표음 문자는 크게 셋으로 구분되는데, 페니키아문자 같은 자음만으로 된 것, 일본의 가나와 같은 자음과 모음을 함께 발음하는 음절 문자, 로마자나 한글 같이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어 있는 알파벳(음소 문자)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음소 문자가 가장 발달한 것임을 두말할 필요 없다. 만약 음절 문자로 표현하게 되면 우리나라같이 음이 다양한 말은 최소한 3천 자가 필요하다. 이렇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소리를 자음과 모음으로 구별하여 적는 데, 인류는 무려 3천년이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세종 즉위 후 바로 시작했다고 해도 불과 25년 만에 그리스 문자를 압도하는 완벽한 문자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 건 세종대왕 혼자가 아니라 집현전 학사 모두가 오로지 이 일에만 매달렸다고 해도 경천동지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의 창의력이 세계에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한글 창제는 요새 식으로 계량화하면 노벨상 100개에 해당하는 위대한 업적이라고 본다. 한글의 위대성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몇 개만 더 들자. 둘째, 소리와 발음 기관의 완벽한 연관성이다. 로마자는 소리와 문자는 전혀 별개이다. 그냥 약속일 뿐이다. 이집트에서 예를 들면 `소`할 때 `ㅅ` 소리가 나니까 `소`를 그려 놓고 이를 `ㅅ`이라고 하자라는 식이었다. 이것이 말이 다른 페니키아, 그리스로, 로마로 가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약속 일 뿐이다. 그런데 1940년 안동의 희방사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됨으로써 한글은 발음 기관(發音器管)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이 비로소 밝혀졌다. 이것은 세계 언어학자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서양에서 음성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겨우 [d, t], [b, p], [s, z], [v, f], [g, k] 등을 짝지어 유성음 무성음을 구별해 놓고 득의만면하고 있었는데, 15세기 초에 벌써 이런 것을 완벽하게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g, k]를 혀가 입천장에 닿는 모양을 본떠서 아예 글자 모양과 비슷하게 [ㄱ, ㅋ] 더 나아가 된소리까지 표현하여 [ㄱ, ㅋ, ㄲ]까지 만들었던 것이다. [ㅋ, ㅌ, ㅍ, ㅎ]에서 보듯이 기본자 [ㄱ, ㄷ, ㅁ, ㅇ]에서 격음일 경우에 힘이 더 드는 걸 감안하여 줄을 한 두 개 더 그었던 것이다. 이 원리를 응용하여 한글을 가르치면(이런 교재가 빨리 나오기 바란다. 마음만 먹으면 아주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일주일 이내에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한글은 정말 배우기 쉽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머리가 굳어질 대로 굳어진 어떤 외국인에게도 금방 가르칠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다가 새로운 것을 연관시키면 아주 쉽게 배우고 잊어버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모음은 더욱 경이롭다. 천지인과 발음 기관을 같이 본떴다. 하늘은 둥그니까 간단히 아래 아 [·], 땅은 평평하니까 [ㅡ], 사람은 서 있으니까, [ㅣ], 세상에 이보다 더 간단할 수가 없다. 실지로 발음을 해 보면 전세계의 모든 발음이 [·]할 때는 입이 둥글게 크게 벌어진다. [ㅡ]는 입이 옆으로 벌어지면서 혀가 평평해진다. [ㅣ]는 혀가 앞으로 내밀어지면서 세워진다. 여기서 각각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등이 나오는데, 물론 처음에는 [ㅣ, ㅡ]에 앞 뒤 또는 위 아래에 `아래 아`자를 덧보탠 것이었다. 이것도 경이로운 것이 세계 모든 발음이 [ㅏ] 발음을 할 때는 반드시 숨을 내쉬게 되어 있고, [ㅓ]할 때는 숨을 들이쉬게 되어 있다. 그래서 각각 밖과 안에 `점`을 찍은 것이다. [ㅗ, 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는데, [ㅗ]는 반드시 아래로 내리쉬고, [ㅜ]는 아래에서 위로 치받치게 되어 있다. 놀라운 일은 하나 더 있다. 한글은 누가 보아도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수 있다.왜? 모음은 반드시 가운데, 또는 오른쪽에 있기 때문이다. 로마자는 풀어쓰기 때문에 척 보고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수가 없다. 한글은 소리 나는 단위가 음절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그대로 활용하여 한 자 한 자에 자모를 붙여 놓아 소리 단위를 금방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로마자는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니면 음절 구분을 못한다. 한글은 바보라도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한글을 아는 사람은 바보라도 로마자 아는 천재와 같은 급이 된다는 말이다. 음소 문자이면서 음절 문자의 장점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컴퓨터가 나오면서 다시 위력을 떨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아직 한글에서 뒤지는 이유는 바로 한글의 24자가 하나의 디지털로서 무한한 조합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완성형을 택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찬진의 한글은 조합형을 택했던 것이다. 역시 똑똑한 조상 덕에 간단히 미국의 천재를 바보로 만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완성형을 표준으로 삼은 일은 정말 개탄 할 일이다. 디지털이란 것도 기껏해야 [0]과 [1]이라는 두 문자를 이용한 이진법을 무한히 연결하는 것인데, 한글은 그 자체가 무한히 응용할 수 있는 24개의 디지털 기호이다. 지금은 겨우 워드 프로세서에 응용하는 정도이지만, 이를 잘 응용하면 엄청나게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이 이렇게 자음과 모음을 확실히 구별하면서도 음절 단위로 쓰게 됨으로써 정보화 시대에 또 하나의 경이적인 장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공병우식 자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원리는 바로 과학적인 한글의 장점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현재 널리 보급된 것과는 달리 왼손은 초성을 치고 오른손은 중성과 종성을 동시에 치는 원리이다. 한 글자를 한 번에 치는 방식이다. 그러면 아무리 손가락이 굳은 사람도 1분에 쉽게 3백 타 이상을 친다. 무려 1분에 1300타, 1400타까지 가능하다.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쓸 수 있다. 속기사는 전부 공병우식을 쓰고 있다. 속도가 생명인 정보화 시대에 이것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리석은 위정자 때문에 공병우씨가 그렇게 평생을 애썼는데도 일반에게 보급되지 않았다. 2년 전인가 삼성에서 공병우식 자판을 만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현재 방식으로는 아무리 빨라야 7백 타, 8백 타가 한계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세종대왕은 한국의 바보도 외국의 천재와 비슷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서양 바보들에게 배워서 도리어 바보가 된 위정자가 서양 흉내 내느라고 우리 좋은 것을 다 버렸으니 말이다. 한글의 위대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그것은 바로 표음 문자이면서 표의 문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글 전용을 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한글의 이 장점 때문이다. 그 이유는 한글은 음절 단위로 쓰기 때문에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음절 문자의 장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어원을 밝혀 적을 수 있어서 표의 문자 구실도 제법 훌륭히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우리말과 한자말로 구별해서 설명하기로 하자. 우리말 -- 훈민정음 해례에서 종성 부용 초성법을 택해서 가능한 일이었는데, 조선 중기의 8종성법에서 한글학회에서 이를 다시 살린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뭇잎`-이것을 소리 나는 대로 `나문닙`이라고 적는다고 해 보자. 그러면 도대체 말로 할 때와는 달리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어원을 밝혀 `나무`에다가 관형격 조사 `의`에 해당하는 사이시옷 `ㅅ` 거기다가 주둥아리 입이 아니라 받침에 `ㅍ`을 써서 `잎`이라고 함으로써 척 보면 이것이 나무에 달린 잎이구나 라고 알게 된다. 어원을 밝히기는 매우 어려운 일인데, 한글을 배우면 웬만한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안다. `이것을`-이것을 소리 나는 대로 `이거슬`로 적는다고 해 보자.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이것을`은 `이것`과 `을`을 합한 것임을 아주 간단히 나타낸다. 뜻이 금방 머리가 들어오게 되어 있다. ` 있다`-이것을 `이따`라고 적는다고 해 보자. 이것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일어난다. 한글의 이런 장점은 뜻글자인 한자도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음성을 나타내되, 시각적인 효과로 뜻글자 구실도 훌륭히 해 내는 것이다. 한자말 -- 이것도 아주 잘 나타낸다. `천리만리`-이것을 `철리 말리`라고 쓴다고 해 보자. 그러면 말할 때와는 달리 도대체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가 머리가 아주 비상한 사람 외에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천리만리`라고 쓰면 초등학생도 `천 명, 만 명`, `천 개 만 개` `천 원 만 원`의 `천, 만`이란 걸 알 수 있다. 선생님은 이런 걸 좀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한자까지 가르쳐 주면 더 좋지만, 그에 앞서 바보 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이런 걸 가르쳐 주면 설령 한자를 모른다고 해도 말뜻을 아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고 바보 학생도 천재가 되어 새로운 말을 척척 만들어낼 수 있다. 대신 천재, 천사, 천국, 천치, 천성 등의 `천`은 `하늘, 타고난`의 뜻이 있다는 것도 꼭 알려 주어야 한다. 물론 한자를 곁들이면 더욱 좋고. 그러나 이를 꼭 한자를 병기해서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정도만 가르쳐 주면 아주 정확한 언어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머리가 어느 정도 되는 학생들은 한자를, 한

문을 꼭 가르쳐서 조상들이 한문으로 남긴 엄청난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여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울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한글은 바보를 보통 사람으로 보통 사람을 천재로 만드는 경이의 문자이다.

한글의 장점은 연구하면 할수록 계속 쏟아져 나올 게 틀림없다. 널리 알려진 것은 이 글에서 생략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한글은 누가 만들었을까.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세종대왕이라고 본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이런 경이적인 창작품은 절대 여러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천재의 머리에서 나온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위대하다고 수천 명의 머리를 합해서 나온 게 아니다. 상대성 원리가 신의 영역을 건드린 발견이라고 해서 일류 과학자 만 명의 머리를 합해서 나온 게 아니다. 고독하게 한 천재가 각각 발견한 것이다. 이런 것은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방해가 된다. 둘째, 세종대왕은 두 가지만 스스로 했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훈민정음 창제와 작곡이다. 나머지는 누가 했는지, 그 본인의 이름이 거의 다 밝혀져 있다. 만약 세종대왕이 왕의 신분을 이용해서 자기 공으로 만들 생각이 있었다면, 이런 것도 대부분 `어제(御製)`란 말을 붙였을 것이다. 세종실록에 보면 매우 겸손했던 세종대왕이 음운학에 대해서만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말도 아주 직설적이었다. "너희가 운서(韻書)

를 아느냐, 사성과 칠 음에 자모가 몇 개 있느냐? 만약에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누가 바로잡겠느냐?" "너희가 (이두를 정리한) 설총만 옳게 여기고 임금의 일은 그르게 여기니 어찌된 일이냐?" 셋째, 당시 학자들은 오로지 유학이었다. 집현전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요새 식으로 말하면 이런 따위의 음성학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연구하는 걸 수치로 여겼다. 그런 상황에서 설령 연구에 일부 참여했다고 해도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한문 숭배가 종교의 수준까지 이르렀던 때이다. 실지로 신숙주, 성삼문이 만주로 음운학자 황찬을 만나러 가는 것은 한글 창제 이후의 일이다. 이들은 완벽을 기하려는 세종대왕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황찬에게는 무슨 훈민정음에 대해 자문을 구하려는 게 아니었고 동국정운을 정확히 만들기 위해 중국 음운에 대해 물어봤던 것이다. 세종대왕은 왕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훈민정음을 거의 혼자 발명하신 듯하다. 설령 직접 창제하지 않으셨다고 해도 관계없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훈민정음은, 한글은 결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니까.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것도 못난 위정자들 탓이라고 본다. 모든 공휴일을 다 폐지해도 한글날은 공휴일로 지정해야 할 것이다. 바보를 보통 사람으로 만들고 보통 사람을 천재로 만들어 주는 한글을 기리는 날을 공휴일로 안하고 도대체 무엇을 공휴일로 한단 말인가. 열심히만 일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한글 창제하는 것처럼 창의적으로 머리를 쓰면 열흘 놀고 하루 일해도 능히 선진국을 앞설 수 있는 법이다.

라. 아리랑 노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행마다 열자씩 4행 40자의 이 분장(分章) 가요. 이 노래를 우리는 ‘아리랑’이라고 부른다. 아리랑. 이 노래만큼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래 온 노래도 없으리라. 슬플 때도 아리랑, 기쁠 때도 아리랑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역사와 함께 민족의 한과 기쁨을 노래해 온 단하나의 노래이다. 최초로 아리랑을 양 악보로 해서 세계에 알린 구한말 한국에 온 미국인 선교사 H.B. 헐버트는 “아리랑은 조선인에게 쌀과 같다”고 하였다. 한국인은 아리랑을 부를 때 저절로 흥이 난다. 기쁜 자리 슬픈 자리 없이 언제 어디서나 불러서 기쁘고, 들어서 정다운 노래…. 무슨 이유로 ‘아리랑’은 한국인의 마음에 그토록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일까? 아득한 옛날부터 남녀노소 상하귀천 없이 입을 모아 불러 온 노래…. 반복해서 들어도 싫지 않은 이 노래는 과연 언제부터 무슨 연유에서 불려지기 시작한 것일까? 현재까지 그 근원에 대한 연구는 해방 후만 해도 경복궁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이 힘들어 부른 노래라던가 단순한 후렴 구라던가 라고 하면서 약 300여 학자가 해왔으나 시원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97년 경 아리랑 연구가 김원갑 씨가 전국을 다니면서 오래된 아리랑을 수집하던 중 소위 계룡산 도사들에게서 오래된 아리랑 후렴 구의 단서를 찼었는데 이조 순조 때에 부엌에서 나온 어머니들의 노래를 청석거사(?)란 분이 언문으로 필사본 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아리 아리랑 수리 수리랑 아라리가 났네" 였는데, 저자는 이 사실을 근거로 이 노래가 이조 순조 때 여인들이 처음으로 언문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때, 즉 언문(한글)구운몽과 사씨남정기가 시중에서 읽혀지기 시작한 1824년경 어머니들의 입을 통해 부엌에서 나온 노래로써 문자의 지평을 넘어 온 노래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 시원은 언어의 시원과 함께 하고 7천년-1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김원갑씨는 당시 진도아리랑, 평양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경성아리랑 등 전국에 걸쳐 아

리랑의 흔적을 찾아다녔는데 서울에 와서 사물놀이 패에서 굿거리 마당 씻김굿의 3-4마당 사이에서 "아리 아리 수리 수리"가 나오는 것을 찾았다고 한다. 저자의 판단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태조가 침공한 후 장안에 유행된 노래 성주풀이 맨 뒤 후렴에 "에라 대신(하나님)이여"라고 했던가? 아리랑은 하나님의 후손인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들이 추위를 피해로 이동할 때 험한 산과 높은 고개, 그리고 고원들을 넘어 오면서 부른 ‘찬송가’였다(창 10:21~30).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리랑’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모든 종류의 아리랑 노래에서 변하지 않고 쓰이고 있는 후렴구가 ‘아리랑’이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아리랑’ 이라는 말은 특별한 뜻과 사연이 배어 있다는 증거다. 실지로 우리 한국인은 ‘아리랑’ 이라는 말 자체에 친근감을 느끼며 흥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아리랑 연구가는 ‘아리랑’은 뜻이 없는 단순한 후렴 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지 흥을 돋우고 음조를 메워나가는 구실을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아무 뜻도 없는 말이 한국인의 마음을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사로잡아 왔단 말인가? 당치도 않은 소리다. 만에 하나 그의 주장대로 ‘아리랑’이 단순히 ‘흥을 돋우고 음조를 메워나가는 구실을 하는 아무 뜻이 없는 말’이라고 치자. 그럴 경우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 하필이면 그것이 ‘아리랑’인가? 꼭 그렇게 소리 내야만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차라리 ‘아리랑’은 끝까지 해명이 필요한 어떤 특별한 뜻이 있는 말로 간주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더욱이 ‘아리랑’은 후렴구이다. 후렴(refrain)이란 노래 곡조 끝(때로는 앞)에 붙여 반복해 부르는 짧은 가사를 말한다.

‘아리랑’이 노래의 후렴구라는 사실은 오히려 ‘아리랑’이라는 말이 굉장히 중요한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대부분 후렴은 그 노래의 중요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리랑’에 담겨져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아리랑’에는 한국인의 원형과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아주 귀중한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아리랑’은 제사장 한민족의 키워드(keyword)이다. ‘아리랑’은 원래 ‘알이랑’이다(알이랑→아리랑).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

그런데 오랜 세월동안 글이 없는 가운데 구전으로만 전해지다 보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부르게 된 것이다. ‘알이랑’은 ‘알’과 ‘이랑’으로 구분된다.‘알’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느님’이라는 신명(神名)은 처음에 ‘알’이었다. 그런데 ‘알’ 앞에 ‘한’이라는 관형사를 붙이고, ‘알’ 뒤에 ‘님’이라는 존칭명사를 붙여서 ‘한알님’이라고 했다. 그것이 [한알님→하날님→하늘님→하나님]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알’은 ‘하나님’이다. 창조주 하느님을 뜻하는 원시언어가 ‘알’이었다. 유대인의 ‘엘(EL)’, 아랍인의 ‘알아(알라)’는 바로 이 ‘알’에서 파생된 말이다(‘알라’는 아랍어로 유일신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인 아랍 사람들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이름인 '엘로힘'(단수는 Eloah)은 '알라(alah)'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벌코프 조직신학 239쪽*크리스챤 다이제스트 간). 즉 창조주 하나님을 뜻하는 인류 최초의 신명이 우리 말 ‘알’이었다.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로서(언어학자들은 ‘토씨’는 6천년 이상 간다고 한다) 영어의 ‘With’이다(예, 갑돌이랑=갑돌이와 함께, 갑순이랑=갑순이와 함께). 따라서 ‘알이랑’은 ‘하나님과 함께(With God)’ 라는 말이다. '알이랑'은 우리 겨레가 ‘하나님과 함께(With God)’ 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하나님의 자손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사적 언어 유물'인 것이다. 서양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써 2천년 전에 육신이 되어 크로마뇽인들에게 오셨지만 우리의 하나님은 7만 년 전에 지구에 직접 오셔서 한국 민족을 직접 낳아 주신 하나님이다. 홍수 이후에는 한알이 하늘로 변했다.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난생설화가 아니다. 왜 "알"이 유일신 하나님을 뜻하는 말이었을까? '알’이 수많은 생명을 낳기 때문이다. 쌀도 볏알(볍씨: 배달 조선의 어원)에서, 과실도 씨알에서 생기고, 하늘과 땅과 바다의 허다한 생물들이 또한 ‘알’에서 탄생한다. 그래서 ‘알’은 ‘모체(母疜)’요, ‘근원(根源)’이요, ‘시작(始作)’과 같은 뜻을 갖는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도 ‘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만물의 모체이시고 근원이시며 시작이시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한국인은 그 ‘알’이 ‘큰 모체’이시고 ‘큰 근원’이시며 ‘커다란 시원(始原)’이시기에 ‘알’ 앞에 ‘한’이라는 관형사를 붙였다. 또

한 그 ‘알’이 인격적 존재이심으로 ‘알’ 뒤에 ‘님’이라는 존칭명사를 붙였다. 그래서 창조주 유일신을 ‘한알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한알님’이 [한알님→하날님→하늘님→하나님]으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알’은 하나님을 뜻하는 말이다. 더욱이 ‘하늘’은 둥글어 ‘알’인데, ‘하늘’이라는 말도 처음에는 ‘한알’, 즉, ‘큰 알(大卵)’이었다. 한알→하날→하늘로 변한 것이다. 만물을 내신 한알님(하느님)은 한알(하늘)에 계신다. ‘큰 알(大卵)’, ‘큰 모체(母疜)’, ‘큰 근원(根源)’ 같은 뜻으로서의 ‘한 알’에 ‘하늘’이라는 말의 기원이 있는 것이다. 지난날의 우리 신화 ? 전설에서, 한 시조(始祖)의 탄생이 난생(卵生)으로 이어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밝불거뉘)는 망아지가 알을 품고 있다가 뛰쳐나간 그 알에서 태어났다. 그밖에도 비슷한 이야기는 많다. 짐승이나 사람이 알을 낳는다. 너무도 이상해서 갖다 버린다. 그러면 새와 짐승들이 그 알을 보호하며 노래 부른다. 그렇게 하늘의 뜻에 따라 보호를 받으며 태어난 것이 고주몽(高朱夢)이기도 하고, 금와(金蛙)이기도 하다. ‘알’이라는 것은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서 사물(事物)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시작’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커다란 시원(始原)’으로서의 ‘알’이 곧 한알→하날→하늘로 된 것이다. 그러한 하늘이었기에 삼라만상(森羅万象)은 곧 당신의 것이

었다. 당신이 낳으시고, 당신이 기르시고, 또 당신이 주재하시는 것이었다. 홍수 전 사람들이 창조주 유일신을 ‘알’이라고 불렀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느님을 뜻하는 성경 원어 ‘엘(EL)’은 바로 이 ‘알’에서 가지 쳐 나온 말이다.‘엘’은 ‘다스리는 이’, ‘강하신 분’이란 뜻을 가진 신명(神名)으로 셈어(Shemitic)에서 전반적으로 사용된 ‘하나님’ 또는 ‘신성(Divinty)’에 관한 호칭이다. 이 ‘엘’은 바로 ‘알’의 변음이다.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이라고 불렀다. 이 ‘알’이라는 단어는 창조주 하느님을 뜻하는 일종의 원형 언어이다. ‘알’이 고대에 하느님의 이름이었음을 보여주는 언어학적 증거로서 ‘메아리’를 들 수 있다. ‘메아리’는 본래 말이 ‘뫼알이’ 이다. 이 말은 ‘뫼의 알’, 즉 ‘산신’을 말한다. 산에 가서 ‘야호~’하고 고함을 치면 ‘야호~, 야호~, 야호~’라고 산이 있는 숫자만큼 되돌아오는 소리를 우리 조상들은 산신의 소리로 연상했던 것이다.‘엘(EL)’, ‘얼’, ‘일’과 같은 말들은 모두 바로 이 ‘알’의 변음이다.

‘알’에서 가지 쳐 나온 말 ‘얼’

'얼’이라는 토박이말도 ‘알’에서 가지 쳐 나온 말로서 역시 ‘신(神)’, ‘넋’과 같은 의미의 말이다. ‘정신 나간 사람’을 두고 ‘얼간이’(얼이 간사람) 혹은 ‘얼빠진 사람’이라고 하고, ‘얼떨떨함’이나 ‘얼이둥절’(어리둥절)은 ‘정신을 가다듬지 못한 상태’이며, ‘얼뜨기’는 ‘다부지지 못하고 겁이 많은 사람’을 뜻하며, ‘얼버무림’은 ‘제대로 버무리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렇게 ‘얼’은 ‘정신’을 뜻하는 우리의 훌륭한 토박이 말이다. 이 ‘얼’이라는 말의 시작이 바로 ‘알’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고대 수메르어에서도 인간의 정신(Human spirit)을 뜻하는 단어가 ‘A-LA’였다는 것이 뒷받침 해준다. 이 ‘얼’을 드러내는 곳이 인체에 있어서는 ‘얼골’(얼골→얼굴)이다. ‘얼골’을 보면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 즉 ‘얼’이 어떤 것인가를 대충 알 수 있다. ‘얼골’에 그것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 안에서 ‘얼’이 사라지면 송장이 되고 나중엔 뼈만 남는데, 그것은 더 이상 ‘얼골’이 아니므로 ‘해골’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무덤이 동그란 까닭 한국인의 무덤은 동그란 모양의 봉분인데, 그것은 ‘큰 알’을 뜻한다. 셈의 후손으로서 ‘한알님’께 제사지내며 생활했던 한국인의 선조들은 스스로 천손민족(天孫民族), 즉 ‘한알님’의 백성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죽음이란 ‘한알’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덤이 동그란 모양의 ‘알’인 것이다. 그들은 ‘한알님’의 백성으로서 ‘알’에서 왔으니 ‘알’로 돌아가고자 했다. 실로 한국인은 ‘알이랑 정신’으로 살고 죽는 ‘알이랑 민족’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알’이 원래 무슨 말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그것은 홍수 이전 최초의 인류 가계로부터

내려온 지상 최초의 낱말 중 하나로서, 고대에 창조주 유일신을 뜻하는 하나님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알이랑’은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종교적인 말이다. '고개를 넘어 간다’는 가사는 무슨 뜻일까? 그것은 고대 한민족이 시베리아에서 뷔름 빙하기를 거치면서 추위를 이기고 살아 남아 일부는 고비(한 고비 두고 비 즉 시험 또는 고난의 단계를 뜻하는 순수 우리 말)를 넘고 또 일부는 파미르고원을 넘고 또 일부는 바다를 건너(인도네시아의 바다우 족, 중국의 산위 족), 천산산맥과 알타이 산맥을 넘었다는 말이다. 실로 수많은 고개를 넘은 것이다. 타림분지는 다리목이 아프다고 하여 다리목 분지다.‘파미르 고원’을 지나(支那) 사람들은 총령(蔥嶺: 파총, 재령)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어 파(蔥) 마루(嶺) 그대로 파마루(파미르)이다. 지리학에서도 역시 파미르 고원(蔥嶺)에서는 파(蔥)가 많이 야생한다고 한다. 파미르 고원은 ‘파마루’로서 파(蔥)가 많이 자생하는 산마루(嶺)이기에 파마루(파머루) 고원인 것이다. ‘파미르’의 어원이 한국어 ‘파마루’이다. 타림분지는 다리목이 아프다고 하여 다리목 분지다. 한국인은 남자를 사내라고 한다. 사내는 원래 ‘산아이’가 [산아이→사나이→사내]로 변한 것이다. 조상들이 쌓은 재단과 거주지는 제사장이었던 관계로 산 위에서 살았던 것 같다. 한국인의 선조들은 시베리아의 산(탱그리 산. 알타이 산, 천산, 백두산, 묘향산, 마니산) 위에서 살다가 벼농사를 지으면서 제일 높고 밝은 산인 한밝산(犬白山→白頭山)에 이르러 배달나라를 세웠다. 고대에 고조선 제사장들이 창조주 한알님께 천제(天祭)를 드린 것이 후에 제천의식이 되었다.(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신라의 솟대) 그래서 우리 민족은 노래와 춤에서 타 민족에 비해 훨씬 능하다.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

따라서 이 노래 가사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하느님이요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

(with God, with God, with God, just God.

accompany with God, I will take over the mountains.) 저자가 이 후렴이 찬양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은 나의 스승인 전흥상 목사님께 우연히 아리랑이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듣게 된데 기인된다. 자세한 내용을 두고 금식 기도를 하던 중 어느 날 새벽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영감을 주시어 알이란 단어가 아랍인들의 알라와 일치한다는 e[p서 유래되었다. '아리랑’은 창조주 하느님을 섬기던 고대 한국인이 이 땅에 오기까지 수많은 산과 언덕과 고원들을 넘어오면서 부른 ‘찬양’이었던 것이다. ‘아리랑’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그토록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겨레의 역사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민족의 숨결이며 역사의 맥박이기 때문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누구를 뜻할까? 문맥상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가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된다. 왜냐하면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는 바로 앞의 가사는 “하나님과 함께(with God) 고개를 넘어 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가사는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 곧 천손 민족의 찬송이며 믿음의 고백이었다. 그러므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창조주 하나님을 불신, 배척하는 무리들을 의미한다.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 대한 악담이나 저주가 아니다. 만약 노래 가사가 “나를 버리고 가는 놈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고 했다면, 그것은 실제로 발에 병이 나라고 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나를" 의 나는 하나님이다. 나를 버리고 한 시간이 지나면 시험이 든다 라는 말이다. 가 즉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버린 자들을 향해 다시 순수한 하나님 신앙으로 되돌아 올 것을 사랑으로 촉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겨레의 노래 ‘알이랑’에는 ‘하나님을 위한 열정’과 ‘잃은 자를 위한 연민’이 함께 깊이 배어 있다. 즉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얼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경천애인(敬天愛人)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마 22:37~40).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의 2절은 푸른 하늘의 잔별만큼이나 우리 가슴엔 수심도 많다고 노래한다. 왜 알이랑 찬송을 부르며 추운 시베리아에서 사방으로 이동하던 우리 조상들의 가슴엔 그리도 근심이 많았을까? 그것은 1절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 때문이었다. 즉 유일신 신앙(제천신앙)을 저버린 자들이 제천민족 우리 조상들의 커다란 근심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세상 근심과는 차원이 다른 ‘거룩한 근심’이었다(고후 7:10). 이와 같은 역사적 사연을 간직한 '알이랑' 찬송은 우리 조상들이 동방의 산지를 넘어 이 땅에 오기까지 끊임없이 불리어졌다. 그리고 오늘도 겨레의 삶 가운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상 자세히 살펴본 바처럼 아리랑은 홍해를 건넌 후 부른 미리암의 노래와 같은‘찬양’이다. 그래서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알려주는 ‘천손민족(天孫民族)’ 코드이다. 우리 배달겨레는 세계 만민 중 민족사를 ‘알이랑’ 곧 ‘하느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유일한 백성인 것이다. 고려 속요인 ‘청산별곡’에 보면 ‘알이랑’과 흡사한 후렴구가 나온다.

바로 “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라는 가사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애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 대체 이것은 무슨 뜻일까? 지금까지는 아무런 뜻이 없이 악률을 맞추기 위해 사용된 조흥구(助興句), 여흥구(余興句)라고 보는 견해가 가장 우세하다. 혹자는 주술의식에서 읊었던 일종의 주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라는 ‘요상한’ 소리가 다소 신비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알이 알이 알랑셩 알알이 알라”라는 가사를 ‘낙천성(樂天性)’과 ‘명랑한 느낌을 주기 위해’ 작가가 모음 ‘ㅏ’를 ‘ㅑ’로 살짝 고쳐서 노래한 것뿐이다.

알이 알이 알(이)랑셩 → 얄리(이) 얄리(이) 얄(이)랑셩

알알이 알(이)라 → 얄얄이(얄라리) 얄(이)라

그러므로 이 가사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 알이 알이 알(이)랑셩 = 하나님 하나님 하느님과 함께 - 알랑셩의 ‘셩’은 악기의 의성어로 흥을 돕는 소리이다. 고려속요 ‘서경별곡’의 후렴구에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 역시 악기의 의성어로 흥을 돕는 조흥구이다. ‘알이’의 ‘이’는 접미사로서 ‘복순이’ ‘주몽이’처럼 받침 있는 사람의 이름에 덧붙여 어조를 고르는 말이다.

* 알알이 알(이)라 =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이라

그러니까 “얄리 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라는 청산별곡의 후렴구는 우리 겨레가 아득한 옛날부터 불러오던 ‘알이랑’의 후렴구를 살짝 고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아리랑’이라고 부르는 민요는 최소한 여말선초(麗末鮮初) 시대까지는 ‘알이랑’으로 노래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아리랑’은 원래 ‘알이랑’며 그 의미는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종교적인 뜻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애국가에도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란 가사가 들어 있다.

* 하느님은 홍수 이후에 하늘에 대한 겨외심에서 생긴 것이므러 기독교인 처름 가사를 하나님으로 바꾸어야 한다 .

이제까지 ‘아리랑’에 대해 수긍할 만한 해석이 없었던 이유는 ‘아리랑’은 본래 ‘알이랑’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을 모르고 학자들마다 ‘아리랑’에서 해석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떻게 정답이 나올 수 있겠는가. 아리랑은 겨레의 역사 노래이자 현존하는 인류 최고의 찬송가다. 그것은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인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들이 마지막 빙하기를 이기면서 사방으로 천동(遷動)할 때 험한 산과 높은 고개, 그리고 고원들을 넘으면서 부른 ‘찬송가’였다(창 10:21~30). 그리하여 알이랑은 천손민족 한국인의 키워드이다. 알이랑! 그것은 우리 배달(벼알=벼와 함께 히신 하나님)겨레의 근본사상이요 뿌리 정신이다. 그것은 ‘하느님 중심 사상’이요 ‘신본주의 정신’이니, ‘알이랑’은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제천민족, 천손 족이라는 사실이 민요 ‘알이랑’으로 말미암아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알이랑! 그것은 우리 한민족의 원형과 정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려 준다. 알이랑!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이다. '알이랑’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우리는 ‘알이랑’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알이랑으로 살아갈 것이다.알이랑! 그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찬송가’이다. 그러므로 ‘알이랑’은 세계문화유산이다. 우리는 이 귀한 노래 ‘알이랑’을 시편 삼아 함께 자주 불러야 한다. 우리 겨레에게 이 노래가 있는 한 여호와 하느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다. 하느님(한알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아멘!(유석근 목사 저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에서 인용)

* 유석근목사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알이랑 교회의 담임목사로 성경에 계시된 한민족의 정체성과 구원사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선포하도록 소명을 받음. 이를 위해 한국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을 설명한 책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을 출간하였음

마. 성씨

우리들의 성씨는 가장 중요한 조상들의 유산으로 그 중요성을 우리가 거의 잊고 있는 부분이다. 성씨의 생성에 관한 학자들의 주장은 기원전 2천년 경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대게 중국의 성씨 기원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이론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타당하다.

첫 째 한웅 제사 왕조가 치우와 헌원의 전투로 끝나고 헌원이 화하족(신강성에서 발원하여 황하일대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금의 한족의 모태)과 더불어 한문을 기반으로 농경문명을 일구기 시작했고조선은 단군 왕조가 들어섰으나 몽골 족에 의한 우랄 알타이어와 제사 문자가 보편화되지 못해 중원에서 그 기운이 쇠퇴하는 시기에 있었다. 중국에 성씨가 생기기 시작한 시기는 한문이 생기기 시작한 이후(기원 전 25세기) 5백년이 지난 후 왕조에 의한 한문 성씨의 선택이 가능한 때였다.

둘째 단군조선이 쇠퇴하는 따라서 군웅이 할거하는 시기에 왕조의 토대를 잡기 위한 성씨의 선택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중국의 성씨는 왕조의 조속 기간과 그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헌원과 최초 황하 농경민족의 후손으로 보이는 수, 당의 왕조인 이씨가 3억5천만으로 가장 많고(심지어 귀화한 유대인도 개봉의 청진사 송대 비문을 보면 성씨가 이씨로 되어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제사장(王)의 자

손이라고 해서 왕씨인데 그 수가 1억8천만이다. 그 다음이 장씨 류씨 천씨 등인데 모두 1억이 넘는다. 서기2천년 중국의 성은 무려 4.400 종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본의 성씨는 보통 두 글자로 학자들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건너간 성씨만 해도 32%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성씨는 2010년 현재 1975년도 인구조사 성씨 분포도를 근거로 김씨가 전체인구의 21.9% 이씨가 14,9% 박씨가 8.5% 최씨가 4.8% 이 4대 성이 총인구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성씨[姓氏]의 유래[由來]

성씨의 발생 근원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상세히 알 수는 없으나 대략 중국 성씨 제도의 영양을 받아 고조선[古朝鮮]시대에 왕족[王族]에서부터 사용한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고대 씨족사회로 접어들면서 그 집단을 통솔하는 지배자가 나타나는데 통솔에 필요한 정치적 기능을 부여함에 있어서 다른 씨족과 구별하기 위한 호칭[呼睨]이 성 [姓]으로 나타나고 점차적으로 지방 세력이 중앙귀족화 되면서 다수의 부족을 통솔하기 위한 칭호이며 정치적 신분을 표시하는 중요한 의미로 나타났다. 따라서 성[姓]은 초기에 왕실[王室]이나 귀족[貴族]에서만 국한되어 사용하다가 국가에 공이 큰 공신[功臣]들이나 귀화인[歸化人]들에게 세거지역[世居地域]이나 강산. 명칭을 따서 사성[賜姓]을 하면서 확대되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반 서민들의 성씨사용은 과거제도[科擧制度]가 발달되는 고려 문종[文宗:1047]이후에서부터 보편화 되었으며 상민[常民]과 노비[奴婢]를 포함한 모두가 성을 된 것은 조선 말 개혁정치가 시행되면서 부터이다.

삼국사기 제13권 고구려 본기1[三國史記濟13권 高句麗本紀1]에고구려 시조 주몽[朱蒙]은 고구려를 건국하고 고씨[高씨]를 자기 성으로 하였으며 건국공신[建國功臣]인 재사 에게는 극[克]씨를 .무골[武骨]에게는 중실[仲室]씨를. 묵거[默居]에게는 산실[山室]씨를 사성한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23권 백제본기1[三國史記23券百濟本紀1]에는 백제의 시조 온조[溫祖]가 부여계통에서 나왔다 하여 부여[扶余]씨로 하였으며 신라시조 혁거세[赫居世]는 기원전 57년경 양산[陽山]기슭 나정[蘿井]옆에 있는 숲에서 표주박 같은 커다란 알에서 탄생 했다 하여 표주박 박[朴]씨를 성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고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金閼智]는 65년 탈해왕 9년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 속의 금함[金函]으로부터 나왔으므로 김[金]씨라 하였으며 .가야국 시조인 수로[首露]도 42년 [신라 유리왕 19년] 금관국[金官國] 북쪽 귀지봉 [龜旨峰]에 떨어진 6개의 황금알 [卵]에서 나왔다 하여 김[金]씨라 하였다. 삼국사기 제 1권 신라본기[三國史記 第1券 新羅本記]에는 신라 3대 유리왕 9년 [서기32]년 에 6부를 개정하여 알촌 양산촌[閼川 楊山村;양부 장 알평 [謁平]에게는 이[李]씨를 돌산 고허촌[突山 高墟村]장 소벌도리[蘇伐都利]에게는 최[崔]씨를 .무산 대수촌[茂山 大樹村;점량부]장 구례마[俱巤馬]에게는 손[孫]씨를 .취산 진지촌[嘴山珍支村;본피부]장 지백호[智佰虎]에게는 정[鄭]씨를. 금산 가리촌[金山加利村;한기부]장 기타[祇陀]에게는 배[裴]씨를 .명활산 고야촌[明活山高耶村;습비부]장 호진[虎珍]에게는 설[薛]씨를 사성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주장을 믿지 않는다. 고조선과 삼국시대를 거쳐서 혈통을 생명처럼 중히 여기던 각각의 왕조들이 함부로 성씨를 결정했을 리 만무하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성씨분포가 중국의 그것과 확연히 다를까? 사실 필자가 한국의 역사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 동기 중 큰 부분이 왜 한국에는 신라 성씨(박, 김, 최. 윤, 설, 정, 이, 강씨)들이 가장 많고 고구려 성씨인 고(高)씨는 적고, 백제의 성씨인 사(沙), 연(延), 협(俠), 직(玗), 국(鞠), 목(沐), 묘(描). 여(余)씨는 거의 없는가? 그리고 고려 왕조는 400년이 넘었는데 왜 지금 한국에 거의 없는가? 그래서 한반도는 신라가 오래 점령했고 백제와 고구려는 중국에 있었으며 고려도 중국일 것이라는 추론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다음에는 그 동안 정리 된 민족의 역사를 통해 이들 성씨가 나타난 줄거리를 구성해 본다. 우선 신라의 박(朴),석(昔), 김(金) 3 왕성(王姓)과 육부 촌장의 성인 이(李)씨, 최(崔)씨, 손(孫)씨,정(鄭)씨, 배(裴)씨, 설(薛)씨가 한국에 많은 것은 이해가 간다. 우리나라의 주성(主姓)인 박,(朴), 석(昔), 김(金), 최(崔)씨들은 언제 어디서 경주로 왔을까? 우선 이 질문에 대해 살펴보자. 김부식(金富軾)이 지었고 이병도(李丙濤)가 주석한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신라 양산(陽山경주)에 모인 사람들은 고조선(古朝鮮)의 망인(亡人:피난민)들이라고 했다. 이들의 성씨는 박, 석, 김씨와 최, 설, 배, 정, 손, 이씨인데 한단고기(桓檀古記)와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천문관측 기록(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을 근거로 볼 때 이들은 모두 고조선(古朝鮮)의 진한(辰韓: 辰朝鮮)인들이 양자강 중류에서 천문을 관측하다가 춘추전국시대에 진시왕에게 나라가 망한 후 약 700여년이 지나 500년 경 반도로 와서 다시 천문관측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관련 근거: 놀라운 점은 기원전 201년 이전 신라의 일식 16개에 의한 관측자의 위치는 양자강 유역이었고 787년 이후 신라에서 기록된 일식 9개의 관측자 위치는 한반도 남쪽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위의 성씨들은 한문이 생성된 이후 생성된 고조선인들의 성씨이고 고조선의 발상지는 천산(天山: 탱그리 산)이므로 이들은 모두 북방민족계열이다. 2009년 KBS에서 흉노와 한나라의 관계 특집을 방영하면서 흉노 왕 선우의 아들 김일제가 신라 김씨와 합류했다고 한 바 있다. 또 태종무열왕 거북비문에 자신을 소호금천(小昊金天)씨의 후예라고 기록한 것으로 미루어 그가 치우와 싸운 황제

헌원(치우와 사촌 간)의 아들이건 아니건 몽고계열 북방민족임이 틀림없다. 이를 근거로 한문 성이 생기기 이전 김씨의 성은 무엇일까? "늑대와 함께 춤을"이라는 영화를 생각해 보면 해답은 간단하다. 박(朴)씨는 나무 옆에서 점치는 사람(제사장)으로 고대의 제사장들 부류에서 나왔고 따라서 구석기, 신석기 시대의 제정일치시대를 주관한 환인조선 시대에 제사장 혈통에서 따온 성씨이며 김씨는 골드(Gold) 이 아니고 쇠 김(金)인 점으로 미루어 세계최초의 철강문명을 기반으로 중원의 관경을 개척한 한웅(桓雄)천황인 치우(蚩尤)의 혈통에서 따 온 성씨로 보인다. 신라의 나머지 성씨 즉 석(昔)씨는 후손이 번창하지 못했다는 설이 있으나 필자의 판단에는 처용가의 주역인 점으로 미루어 신라로 온 페르시아(Persia)계 사람으로 보인다 최씨, 윤씨는 김씨와 함께 낙랑 등 고조선 북방계 제후국의 왕의 성씨였을 가능성이 있고 나머지 설, 이, 정, 손씨들도 고조선의 성으로 보인다. 특히 김씨는 중국에 거의 없고 박씨는 전혀 없는 점이 특징이다.

그 다음에 우리가 주목해야할 성씨는 이(李)씨이다. 경주 5성 중에도 보이고 황하 세속 농경 세력의 주력으로 수(隨),당(唐)의 왕조에도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막조선(莫朝鮮: 馬韓) 출신으로 자칭 선비족으로 보이며 "나무 밑에서 낳은 아들"이라는 뜻의 한문 성씨이며 이들은 말을 타고 숲과 초원에서 살던 사람이 중국에와서 농사를 짓던 성씨로 보인다. 따라서 한반도 민족은 현재의 성씨분포가 보여주듯이 김씨. 이씨, 박씨들의 나라이며 몽골계 단일민족임이 틀림없다. 특히 상기 성씨들을 모계로 두지 않은 한국인은 거의 없으며 "한 다리 건너 모두 친척이다, 서울 가서 돌을 굴리면 맞는 사람은 모두, 김씨, 이씨, 박씨이다"라는 말까지 있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들이 잊고 있는 조상들의 유산의 가장 큰 비밀이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한단고기 1만년의 모든 비밀을 물려준 민족이 우리이고 이 책을 후손에게 불려주는 이유이다. 우리나라의 김씨가 가지고 있는 비밀은 이 외에도 있다. 기원전 40세기 수메르 시절의 설형문자 점토판이 지금의 시리아 우가리트 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점토판 내용 중에 "나는 수메르의 왕, 왕 중 왕" 이라는 글이 발견되었고 이 내용을 해석한 서양학자들은 왕 중 왕으로 번역했으나 실제 우랄알타이어 음으로 표현하면 "나는 수메르의 김씨, 김씨 중의 김씨" 였다. 2002년 나의 스승이신 전흥상 목사(고신)님께서 현지에서 탁본해온 것을 지금 나도 가지고 있다. 또 이 수메르의 신화에는 우리의 환웅신화에서 나오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 뇌사(雷師)가 나온다. 여기의 김(金)이라는 우리말에서 서양의 왕인 킹(King)이라는 명사가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단고기 삼성기 전 하권의 12 연방 중 하나인 수밀이국 개척이 동두 철액으로 중원을 개척한 환웅 시대인데 연대를 소급해서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한다. 고비사막의 흑피옥과 요하인근의 지하의 반 쯤 탄 벼(군량미)발굴로 미루어 환웅시대를 단군기원 기원전 2.096년에다 환웅시대 1.565년을 합한3.661·년 보다 더 멀리 잡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이러한 우리 성씨들의 유래를 통해서 왜 카터 코벨 박사(미국인 일본역사 전문가)에 의해 한국인이 유엔 유네스코에 의해 현대 문명 인류의 시원(始原)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알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