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1 저자 소개

나는 1943년 8월 23일 세계 제2차 대전, 태평양 전쟁 중에 북한 함경남도 장진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일본 와세다 태학 3년 때 징집을 피해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을 했고 징집을 피해 징집 면제 직종인 광산(함남 장진의 조선광업소: 금광)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나의 형제는 당시 위로 누나 1명, 형이 1명 있었다. 우리 가족은 한국이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에서 해방되기 두 달 전인 1945년 6월 장진에서 월남해 부산 인근에 위치한 양산에 내려와 살게 되었고 그 곳에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부산으로 유학을 와서 경남중학교와 경남고등학교를 다녔다. 나는 집안 형편으로 대학 진학이 어려워 육군사관학교로 진학을 했다. 이때 잊지 못할 일은 육사 2학년 여름휴가 때 할아버지(차호준: 일제 때 보통공시 합격 후 산청, 완도, 남해군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셨음)께서 나에게"첫째 출세만 좋아하지 말고 기도교 복음 사역을 하라. 둘째. 전주 이씨는 우리 왕씨들과 원수다. 그들이 한반도에 있던 모든 왕건의 후예(王씨 변을 가진 王, 玉, 全, 田. 申, 車, 柳씨)들을 조선 초기에 다 죽였고 우리는 살려고 획을 늘려 변성을 했다. 그런데 네 어미도 성산 이씨고 외할머니도 전주 이씨니 원 참!...."이라는 말씀이었다. 임관 후 얼마 되지 않아 월남전에 참가. 1년 반 동안 장거리정찰대장을 하면서 초 11회 베트콩과의 접전을 했는데 당시로는 촤다 빈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백마사단 29연대 종군기자로 나와있던 안정효씨가 나와 우리 정찰대를 모델로 소설“하얀전쟁”을 쓴 것도 이 때였다. 월남에서 돌아온 나는 동국대학교 행정학석사과정에 입학했고 지금의 아내(박군자)와 결혼했다. 동시에 모교인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전사학과에 소속되어 생도들에게 6.25전쟁사를 가르쳤다. 그 후 수도기계화 사단 수색중대장, 보안사령부 정보장교, 한미제1야전사 보안반장을 거쳐 육군대학에 입학했고, 중령 진급 후 33사단 100연대2대대장을 거쳐 동경사 인사, 정보참모 대령 진급, 7군단 작전참모, 보병 제53연대장 육군본부 작전기획과장을 끝으로 의원 제대를 했다. 당시 한국군에서는 전두환씨와 노태우씨를 따르는 장교단 사조직이 모든 진급과 보직을 좌지우지 학 있었다. 그들이 나를 장군진급에서 제외시킨 이유는 “차우정씨는 형님들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더 충성할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의원 제대 후 나는 바로 병사들을 위한 군선교사가 되었다. 까다로운 동국대 행정학 박사학위 과정을 포기하고 미 켈리포니아 신대원에서 기독교 교육학 석사, 박사과정을 이수했고 1.996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1988년부터 지금까지 군 문서선교지인“포도원 편지” 혹은 “월간 포도원”을 만들어 무료로 보급해 왔고 약2천여명의 입대하는 한국군 병사들에게 군 선교사 양성교육울 해 왔다. 1996년에 장로교 합동정통교단(현 천안대학교, 기독신학대학)에서 선교목사로 목사 안수룰 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