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유대인의 관습

가. 개요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이셨다. 기독교는 팔레스타인에서 탄생하였고 그 최초의 교인들 역시 유대인이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의 종교적 배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곧 유대인의 종교 그 자체이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들은 세례 요한이 나타나기 400년 혹은 그 이전에 활동하였으나 그때 이후로 오늘날까지 유대인의 종교는 일어서지 못하였다. 구약의 전통적인 종교는 유대교로 발전(어떤 이들은 전락하였다고 말할 것이다)하였으나 기독교에 대해서는 유대인의 종교는 반역의 종교였고 유대인의 역사도 성경에 대한 반역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끊임없이 은밀하게 성경의 정신을 훼손했는데 그들의 하나님은 끝까지 돈이었다.

나. 유대인의 몇몇 특징적인 제도들

성전 :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귀환한 유대인들이 건축한 간소한 성전(스룹바벨 성전)은 헤롯왕(B.C. 40-4년)의 명령에 따라 웅장한 건물로 대체되었다. 헤롯의 성전은 B.C 19년에 착공하여 예수

 

 

 

 

 

당시까지도 준공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요2:20) A.D. 64년에 이르러 완공하였으나 불과 (2:20) A.D. 70년에 로마인들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놀라게 한 (막13:1) 것이 바로 최고급의 화려한 색깔들을 가진 거대한 돌들과 대리석과 황금으로 지어진 복잡하고도 위압 적인 이 성전의 건물들이었다. 여기서 제사장들과 성전 수종자들의 집례로 수세기에 걸쳐 내려온 제사의식과 경배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안토이나 요새의 로마 수비대가 성전 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낱낱이 내려다보고 있었다(행 21:31이하).또 이방인의 뜰(이 뜰에서 이방인이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죽임을 당하였다-행21:28-29: 엡2:14)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노여움을 샀던 장사하는 자들(비둘기 등 제물들을 파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성전세를 위한 환전상)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지붕이 가리워진 행각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무릇 자신의 뜻을 펴고자 하는 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회당 : 성전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으나 각 지역사회는 그들의 회당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제사의식이 거행되지 않았다. 회당은 예배와 율법연구의 지방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안식일에는 회중이 모여 남녀간에 자리를 따로 하여 앉아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고 해석하는 것을 듣고(눅 4:16이하) 또 기도식에 참예하였다. 그러나 회당은 예배처소 이상의 무엇이었다. 그것은 지역사회 학교요 공동체의 중심이요 또한 지역행정의 본부였다. 회당의 장로들은 그 지역사회의 행정당국자들이요 행정관들이요 공중도둑의 파수꾼들이었다.

율법과 유전 : 이스라엘은 모세 이후로 율법을 항상 지녀왔다. 그러나 에스라 시대(B.C 5세기, 선지자들의 율법에 대한 백성의 불순종이 초래한 직접적인 결과로 보았던 바벨론 포로생활이 풀려 고국으로 귀환하던 시대)이후로는 율법의 연구에 더 큰 강조점을 두었고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학자 백성"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 철저한 율법연구는 "유전"의 목록이 점차 비대해져 가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그 유전들은 율법 못지 않는 구속력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는 데까지 나아갔다. 율법과 유전의 직업적인 연구생들이자 전문가들인 서기관들은 모든 경우들





에 대한 규례들을 정하여 둘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금지된 행위에는 39가지의 형태가 있었는데 추수하는 일과 타작하는 일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는 것도 역시 금지사항에 해당되었다(눅 6:1-2).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행 1:12,3분의 2마일 정도)은 허영된 최대치였다. 애석하게도 유전의 세목에 지나치게 열중한 나머지 서기관들은 때때로 율법 자체의 보다 더 중요한 부분과 관심사를 잊어버리곤 하였다(막 7:1-13,3:4-5,마23:23).

다. 유대인에 대한 호칭

이브리트

고대(古代) 유대인을 히브리 인(人)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창세기 14장 13절에

음 나오는데 아브라함을 가리킨다. 히브리어로 히브리인을 이브리트라고 하는데 창세기 10장 24-25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조상 에벨에서 이 단어가 비롯되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건너왔다 란 뜻을 가진 에베르 동사(動詞)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참고로 히브리어 동사 원형은 과거형이다. 아브라함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시리아 땅에 정착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남달리 거룩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에베르 동사를 의역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대인을 이스라엘 백성 또는 이스라엘 자손(子孫)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유대인이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다른 이름이다. 이스라엘은 아들을 열 둘이나 낳았는데 네 번째 아들의 이름이 예후다. 이것을 우리말로는 유다라 발음한다. 참고로 예후다의 복수(複數)는 예후딤이다. 이스라엘의 열 두 아들은 대개 한 지파(支派, tribe)씩 이루었는데 유다는 유다 지파를 이루었다. 본디 유대인은 이 유다 지파 사람들을 일컸는 말이었다. 하지만 훗날 유다 지파 이외 다른 지파들은 제 이름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유다가 히브리 민족 또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에스더 2장 5절은 모르드개를 유대인이요 벤야민 지파 사람이라 한다. 본디




 

벤야민은 유다와 마찬가지로 한 지파의 이름이었다.

라.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유대인이다.

누구를 유대인이라 하느냐고 질문하면 유대인들은 보편적 원칙 두 가지를 제시

한다. 첫째,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무조건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둘째, 유대교 신자가 된 사람도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비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유대교 신자가 되지 않고 정통파 유대인의 신앙을 따르며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며 산다고 하자. 그렇다 해서 그가 유대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유대 율법을 지키기는커녕 신이 없다고 해도 그(녀)가 유대인 여자에게서 태어났다면 그(녀)는 유대인이다. 이 두 가지 보편적인 원칙에 대하여 모든 유대인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성향의 유대인들은 아버지가 유대인이면 아이도 유대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남자에게 왜 성차별을 하느냐고 분노하면서.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유대인 아버지와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유대인이 된다. 하지만 정통파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는 유대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정통파는 만약 그 아이를 유대인이 되게 하고 싶으면 유대교가 정한 개종 절차를 밟으라고 요구할 것이다. 정통파에 따르면 아버지가 기독교인이라 해도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아이는 유대교 신자가 되는 개종 절차를 밟지 않아도 유대인이 된다. 참고로 정통파는 유대교 율법을 오늘날에도 대부분 글자 그대로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교의 한 파벌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유대인들 대부분은 정통파나 보수파에 속한다. 반면 미국의 유대인들 가운데는 자유파에 속한 사람들이 많다. 유대인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모세 5경 즉 토라에는 분명히 나와 있지 않다. 그런데 토라에는 유대인 여자와 비 유대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유대인이라고 판정할 수 있는 기록이 있는 반면, 비 유대인 여자와 유대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유대인이 될 수 없다고 볼 수 있는 기록들이 있다. 신명기 7장 1-5절, 레위기 24장 10절, 에스라 10장 2-3절을 참고





하라. 그렇다면 다윗 왕의 할머니였던 이방 여인 룻은 유대인인가 이방인인가? 유대인들은 룻은 유대인이었다고 주장한다. 룻기 1장 16절을 근거로 룻은 보아스와 혼인하기 전에 유대교 신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전설에 따르면 시내 광야에서 아론이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을 때 이스라엘의 여자들은 거기에 머리 숙여 절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대인들의 황금 숭배 사상을 가족들도 경멸한 증거이다.

마. 개종을 통한 유대인

유대인들은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인, 합법적인 개종자 또는 의로운 이방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유대인 공동체 안에 들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비 유대인들을 일컫는 말들인 것이다. 토라는 이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유대인처럼 대우하라고 한다. 그래서 유대교는 비 유대인들이 유대교 신자가 될 수 있는 소정의 절차를 마련해 두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라도 이 절차를 밟으면 유대교 신자가 될 수 있다. 유대교 신자인 사람은 유대인으로 태어난 사람과 똑 같은 대우를 받는다. 유대인은 본디 셈족으로 생김새가 아랍인과 구분되지 않는다. 머리가 검고 눈은 밤색이다. 금발이나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이 없다. 그런데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외관상 서구의 백인과 같이 생겼다. 장사를 위해 코카시안과 섞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틴의 아랍인들은 오늘날 유대인은 민족적으로는 셈족이 아니므로 이스라엘 연고를 주장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서기 630-640년에 볼가 강 하류에서 창건된 카자르 왕국 때문이다. 카자르의 구성 민족은 코카서스 계 부족들인 사비르, 사라구르스, 자벤더, 발란자르였다. 서기 740년, 유대교에 심취한 불란 왕이 유대교로 개종하자 카자르의 모든 백성은 유대교로 개종하여 사상 초유의 비 유대인의 유대 국가를 이루었다. 그래서 이 카자르 왕국을 열 세 번째 지파라고도 한다. 카자르 왕국은 9세기부터 쇠약 해 져서 결국 965년 우크라이나의 스비아토슬라프 왕의 침략으로 급속히 몰락했고 13세기 타르타르인에 의해 완전히 멸망했다. 이후 카자르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보헤미야 및 모라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로 흩어졌으나 그들의 유대교 신앙은 더욱 강화되었다. 19세기 초 유럽 전역에서 조사된 유대인은 350만 명이었는데 1881년에 일어난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 때는 650만 명이었고 홀로코스트(?) 직전인 1939년에는 850만 명이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의 인구 성장률은 아주 저조하다고 한다. 오늘날 유럽 유대인들은 15세기에 지중해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1492년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추방된 유대인 수는 30만 명 미만이다. 이들 가운데 10만 명 정도만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로 이주했고 나머지는 북아프리카로 갔다. 따라서 오늘날 1400만에 이르는 유대인 인구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의문이다. 유대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이스라엘 거주 유대인들은 가나안 출신의 셈족이 아니라 종교만 유대교를 택한 터키 계 백인 왕국이었던 카자르의 후손들이라 주장하고 있다. 영.미와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 정확하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 만약 자신들이 카자르 출신이라 하면 셈족에 바탕을 둔 유대인의 인종적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미국 유대인들은 종교적 유대인을 강조하고 있다.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 간 이스라엘 민족의 수는 고작 70명. 그런데 400년 후 출애굽 할 때 그들의 인구는 장정만 60만 명. 남녀노소 모두 따지면 200만 명을 넘을 것이다. 이게 모두 야곱의 후손이었을까? 그리고 요셉을 모르는 바로에게서 박해를 받았다는데 과연 박해 받은 민족이 400년 만에 70명이 200만이 되었을까? 바로의 유대인들에 대한 추격 이유가 단순히 노예로 삼기 위한 것이었을까? 금은보화와 패물을 지참한 것으로 미루어 조상들의 수전노 습관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유대인들은 세계 전역에 들어가 살고 있는데 모두 그 중심에는 돈줄인 레위와 회당, 유대교가 있다. 중국에도 주후 1-2세기에 유대인들이 들어 온 증거가 있다. 주후 6세기 당(唐) 나라에 들어 온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서 카이펑(개경: 포청천의 고향, 개성으로 추측)에서 청진사(유대교 성전)에서 살아가고 있던 유대인들의 이야기가





서방 세계에 전해 졌다고 한다. 이 세상에 유대인들은 얼마나 있을까? 최대한 1천 4백 만 명의 유대인들이 이 세상에 있지 않을까 한다. 이스라엘에 각각 500만 명, 외국에 약 1.500만명이 있는데 유럽에 250만 이하, 라틴 아메리카에 1백만, 캐나다에 30만, 아프리카에 16만 5천, 이 가운데 대부분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합쳐 10만 명 등 이 있다고 하는 통계가 있지만 세계 어디든지 돈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있다고 봐야 한다.

사. 아쉬케나짐, 스파르딤, 기타

아쉬케나짐은 프랑스, 독일, 동유럽 출신의 유대인들을 말한다. 스파르딤은 스페인, 포르투갈, 북아프리카, 서남아시아 출신의 유대인들을 말한다. 아쉬케나즈는 독일을, 스파르드는 스페인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이다. 오늘날 미국의 유대인들 대부분은 아쉬케나짐으로 독일과 동 유럽으로부터 1800 년 대 중엽에 이민 와서 정착한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그 이전에 미국에 이주한 유대인들은 스파르딤이었다. 미국의 첫번째 유대인 공동체는 필라델피아에 세워진 콩그리게이션 미크베이스라엘인데 스파르딤이 세운 것이다. 스파르딤의 유대교는 정통파 유대교를 답습했다. 하지만 스파르딤은 유대 율법의 시행세칙이라 할 수 있는 할라카를 아쉬케나짐과 다르게 해석한다. 스파르딤 개인은 비교적 할라카를 잘 지키지 않고 또 어떤 스파르딤은 전통적 유대교의 가르침에 모두 동의하지 않기도 한다. 역사를 보면 스파르딤은 아쉬케나짐보다 더 많이 현지인들과 동화되었다. 아쉬케나짐이 살았던 기독교 국가들에서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갈등은 컸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비유대인 이웃들과 격리되어 게토라는 특정한 구역에서 주목을 받으며 살았다. 하지만 스파르딤이 살았던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그런 격리가 없었다. 기독교를 의식한 이슬람교는 유대인들을 환대하기도 했다. 아랍들은 유대인들에게, 수학, 천문학, 의학, 문학을 보급했으며 무역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스파르딤의 철학과 문화는 아랍과 그리이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스파르딤의 히브리어 발음은 아쉬케나짐의 발음과 약간 다르다. 오





늘날 스파르딤은 아쉬케나짐 처럼 발음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아쉬케나짐의 발음을 표준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파르딤의 기도문이나 찬양의 멜로디나 절기나 전통적인 음식들은 아쉬케나짐의 것들과 많이 다르다. 유대인들의 국제적 언어로 잘 알려진 이디쉬라는 언어는 아쉬케나짐의 언어였다. 스파르딤은 나름의 국제어를 사용했는데 라디노라고 한다. 이디쉬가 독일어와 히브리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라디노는 스페인어와 히브리어가 바탕이 된 것이다. 이디쉬와 라디노의 히브리어를 중세 히브리어라 해서 고대 히브리어와 구분한다. 그리하여 성경을 읽을 때는 성서 히브리어인 고대 히브리어를 해득해야 하지만, 탈무드를 읽을 때는 중세 히브리어를 해득해야 한다. 중세 히브리어 해득도 방대한 양의 사전을 필요로 한다. 현대 히브리어는 이 모든 전통을 합친 것으로 풍부한 어휘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현대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공화국의 국어(國語)이다. 아쉬케나짐이나 스파르딤에 속하지 않는 유대인들도 있다. 예멘과 이디오피아의 유대인들이다. 이디오피아 유대인들은 베타 이스라엘,또는 팔라샤스로 알려져 있다. 베타 이스라엘의 얼굴은 흑인며 나름의 관습과 전통을 지니고 있다. 예루살렘 성묘 교회 옆에 이들의 회당이 있어 항상 그곳에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있다.

아. 유대인의 탄생

유대인이 되는 길은 출생이나 개종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출생으로 유대인이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으로의 출생이 하나님의 복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출생에 관련한 많은 예식을 만들어 놓았다.

유대인들은 사람의 영혼(靈魂)은 탄생 이전에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인생(人生)은 탄생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하지만 산모(産母)의 목숨은 태아(胎兒)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원죄(原罪)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아기는 죄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출생한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아기가 출생하면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한다. "오, 하나님.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아기의 영혼은 순결합니다. 주님께서 이 아기의 영혼을 창조하셨고 조성하셨으며 또한 숨결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산모는 니따, 즉 정결례(淨潔禮)에 따라서 남편과 일정 기간 떨어져 있는다. 남아를 낳으면 7일, 여아를 낳으면 14일 동안이다. 성전시대에는 이 정결의 규례가 더 엄했다. 남아를 낳으면 33일, 여아를 낳으면 66일 동안 정결례를 치루어야 했던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아버지는 '알리야'의 영예를 갖는다. 회당에서 드리는 예배 때에 단에 올라가서 축복의 성구를 읽을 수 있는 자격을 갖는 것이다. 이때 회중은 어머니와 아이의 건강을 기도하는 찬송을 부른다.

자. 이름 짓기

알리야를 할 때 아버지는 아기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러므로 알리야를 하기 전에 부모는 아기의 이름을 지어 두어야 한다. 여아의 이름은 아버지가 알리야를 행할 때 부르는 그 이름으로 공식화가 된다. 남아의 경우에는 브리트 밀라, 즉 할례를 행할 때 그 이름을 처음으로 부른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히브리식 이름이 권장된다. 히브리식 이름은 남아의 경우 <아이 이름>+<벤>+<아버지 이름>이 되고 여아는 <아이 이름>+<바트>+<아버지 이름>으로 된다. 벤은 아들, 바트는 딸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이다. 제사장 집안이라면 제사장이란 뜻의 히브리어 코헨을 붙여서 이름을 만든다. <아이 이름>+<벤>+<아버지 이름>+<하 코헨>이다. 레위인이면 <하-레위>가 붙는다. 대개 레위를 레비라고 발음한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아이에게 히브리식 이름을 붙여 줄 의무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저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흔히 사용하는 이름을 붙여 준다. 아쉬케나짐은 최근에 사망한 친지의 이름을 붙여 주기도 한다. 아쉬케나짐 전통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붙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스파르딤의 전통에서는 보편적으로 부모나 살아 있는 친척의 이름을 붙인다.

차. 할례 - 브리트 밀라

할례는 유대인 사회에서 가장 광범하게 지켜 지고 있는 율법이다. 하나님은 없다고 하면서 유대 율법을 우습게 생각하는 세속적(世俗的)인 유대인들도 할례는 행한다. 브리트 밀라의 율법은 창세기 17장 10-14절, 레위기 12장 3절에 기록되어 있다. 이 율법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이고 유대인들이 처음 실천한 것이라 한다. 성경에 따르면 할례는 하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영원한 계약이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정결해 진다고 믿는다. 또한 할례는 아버지와 아들을 이어 주는 율법이어서 민족의 율법이기도 하다. 만약 아버지가 아기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으면 아이는 성년이 되자 마자 이것을 행해야 한다. 할례를 행하지 않은 사람은 다가 올 하나님 나라, 즉 올람 하 바에서 자신의 몫이 없다고 한다. 할례는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계산하여 제 8일에 행한다. 아이가 수요일에 태어났다면 그 다음 수요일에 할례를 행한다. 할례는 안식일에도 행할 수 있다. 안식일에는 피를 흘릴 수 없지만 할례는 예외다. 의사가 아이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면 할례를 연기할 수 있다. 이후 의사가 아이의 건강에 더 이상의 문제가 없다고 진단하면 그 진단 후 7일째 되는 날 할례를 행한다. 할례는 남아의 생식기의 표피를 외과적으로 잘라 내는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여자에게도 할례를 행하지만, 유대 율법은 오직 남자에게만 할례를 행하라고 한다. 할례는 '모헬'이라는 사람이 행한다. 모헬은 기름으로 리듬을 만드는 자란 의미다. 이 사람은 경건하고 충성스러운 유대교도이며 아울러 외과적 기술을 가지고 있다. 만약 아이가 생식기의 표피를 갖지 않고 태어났거나 의사가 포경을 해 버렸다면 상징적으로 아기의 생식기를 핀으로 찔러 피를 낸다. 이것을 할례로 본다. 이를 하타파트 담 브리트라 한다. 할례를 할 때는 산데크라고 부르는 사람이 아이를 안는다. 산데크는 천주교의 '대부(代父)'와 비슷한 것인데 랍비 가족의 할아버지가 맡는다. 할례를 행하기 위해 아이를 앉히는 의자 옆에 의자를 하나 더 두는데 이것을 엘리야의 의자라 한다. 엘리야는 메시야의 출현을 예고하는 사람인데 그가 할례를 시술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할례 때에 많은 축복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중요한 것이 포도주 한 방울을 아이의 입에 떨어뜨리는 예식이다. 이때 히브리식 이름을 준다. 장자의 구속 - 피디욘 하벤 유대 율법에 따르면 처음 난 것과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속한다. 그래서 장남들은 하나님의 것이 된다. 장남들은 제사장이 되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시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예배한 이후 레위 지파의 장남들만 제사장이 되도록 했다. 이 레위 지파의 남자들은 나중에 성전과 하나님의 주인이 되었다.. 민수기 8장 14-18절을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파에 속한 장남들도 이러한 그들의 신성한 의무를 감당해 왔다. 아들의 구속(救贖)이란 의미를 지닌 피디욘 하벤 때문이다. 장남은 태어난 날부터 계산해서 31일째에 구속을 받아야 한다. 이 예식은 할례와 달리 안식일에는 행할 수 없는데, 돈이 오가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해 성경 시대에는 은 5세켈, 오늘날에는 5달러의 속전(贖錢)을 제사장이나 가족 가운데 가장 경건한 사람에게 준다. 그리고 간단한 예식을 행한다. (민수기 18장 15-16절을 참고) 속전은 랍비가 제사장이라면 몰라도 랍비에게 내는 것이 아니다. 피디욘 하 벤 예식은 오로지 장남을 위해 행하는 것이다. 장녀를 위해서는 행하지 않는다. 또 레위 지파의 장남이나 이에 속한 여자의 아들에게는 행하지 않는다.

카. 입양 (入養)

입양에 관한 율법은 성경의 법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민속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있어 아이들이 친부모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양육되는 것을 입양이라 한다. 입양의 경우에도 양부모는 친부모와 똑 같은 권리를 갖는다. 탈무드는 양부모는 친부모와 같다고 한다. 누구든지 자기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입장이라면 입양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생육하고 번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아이는 양부의 이름을 따른다. 양부모가 죽었을 때 양자녀는 친부모가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애도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의 지위는 친부모를 따른다. 가령 친아버지가 제사장이거나 레위인이거나 장남이면 그에 해당하는 모든 권리와 의무가 아이에게 세습되는 것이다. 유대인 양부모에게 비유대인 아이들이 입양될 경우에 그 양자녀들이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는 한 유대 율법을 적용할 수 없다. 개종 하려면 베이트 딘 즉 랍비 법정이 인정한 절차에 따라 1년 이상 유대교가 실시하는 종교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후, 구술 시험에 합격하고 즉시 할례 또는 하타파트 담 브리트를 시술하고 코셔 미크바 즉 정결례를 행해야 한다. 이후 양부모는 양자녀들에게 성실하고 꾸준히 유대 율법을 가르쳐야 한다.

타. 성인식 - 바 미쯔바, 바트 미쯔바

바 미쯔바란 율법의 아들,바트 미쯔바는 율법의 딸이란 뜻인데 우리 말로는 성인식(成人式)이라 할 수 있다. 유대 율법 성인식을 치루기 이전의 어린 아이들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다고 본다. 나이가 들어 지각이 생기고 율법의 의미를 이해한 후에 율법을 준수할 의무가 생긴다고 한다. 남자 13살, 여자 12살이 바로 율법을 이해하고 준수할 수 있는 나이다. 성인식은 유대교의 율법적 의무가 발생함을 공표하는 예전이다. 이때부터 남자는 종교 예식을 인도할 수 있다. 그리고 율법적 성인 남자로서 민얀의 멤버가 된다. 민얀이란 종교적인 일을 처리할 때 그 가부를 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을 말한다. 성인이 되면 종교법정에서 선서할 수 있고 증언을 할 수도 있다. 유대인 소년은 13살이 되면 성인식을 거행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율법적으로 성년이 된다. 바 미쯔바 예식은 13회 생일 후 가장 가까운 안식일에 행한다. 이때 회당에 가서 파라샤트(한 주간 읽어야 할 성경의 몫)의 토라 파라샤트(portion이란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또는 예배 순서를 인도하거나 기도를 한다. 그리고 짧게 소감을 말한다. 이후 "나는 이제 남자가 되었습니다"라고 선언한다. 이때 아버지는 아들을 대신해 큰 짐을 지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큰 짐은 아들의 죄를 상징한다. 성인식 후에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정통파나 하시딤은 지금도 여자들이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있어 바트 미쯔바, 즉 여자의 성인식은 파티의 하나일 따름이다. 자유파 유대인들은 여자들도 종교적 의미를 지닌 바트 미쯔바를 행한다. 성인식은 유대 교육의 목표가 아니다. 유대 교육을 수료하는 것도 아니다. 유대인들은 평생 토라를 연구해야 하는 신성한 의무를 지닌다. 그래서 어떤 랍비들은 성인식은 유대 교육을 계속 해서 받겠다는 공식적인 약속이라고 주장한다. 개혁파 유대인들은 13세에 성인식을 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13세는 옛날 농경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좀 더 철이 든 16세나 18세에 성인식을 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현대 랍비들 가운데는 24세가 남녀 모두에게 적합한 혼인 나이라고 한다.

파. 혼인식

유대 신비주의인 카발라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영혼은 남성과 여성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혼이 육체를 입어 탄생하기 위해 지상으로 올 때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기 다른 자궁에 잉태 된다. 성년이 되면 남자는 본래 하나였던 자신의 여성을 찾아야 한다. 누가 진정한 자신의 여성인지는 하나님만 아신다. 남자는 열심히 자신의 여성을 찾아야 한다. 잘못 찾으면 혼인 생활이 행복할 리 없다. 유대 혼인은 이런 신비한 이유에서 출발한다.

하. 상대 구하기

유대인의 이른바 구전 전통의 모음집이라 하는 미쉬나의 제 3부 제 7장 키두쉰 1 절에 따르면 남자는 여자에게 돈을 주거나 혼인 계약서를 주거나 성 관계를 갖자고 함으로써 청혼 의사를 표현 할 수 있다. 오늘날 유대인의 혼인식에서 돈은 반지(班指)로 대신한다. 돈의 액수는 거의 명목적이다. 남자가 가난하다면 구리 동전 하나로도 충분한 것이다. 여자가 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을 때 돈을 받는 것은 혼인을 허락한다는 증표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 남자로부터 혼인 계약서를 받는 것이며 성 관계를 갖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혼전 성 관계에 대해 자유로운 사고를 갖는 것은 이런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듯 하다. 혼인을 위해 여자에게 주는 반지는 신랑이 제 힘으로 스스로 마련한 것이어야 한다. 반지는 빌려서도 안되고 친척이 주는 것으로 해도 안 된





다. 반지는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값진 것이며 취소할 수 없는 선물이다. 그러므로 신랑은 반지의 가치를 반드시 신부에게 알려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혼인의 값진 가치를 서로 나눈다고 생각한다. 혼인에 관련한 모든 것은 여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혼인식 때 남편은 아내에게 케투바를 준다. 케투바는 '(글)쓰기'란 뜻으로 혼인 생활 동안 남편이 아내에게 지켜야 할 의무를 적은 것이다. 혼인 생활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을 잘 기르겠다는 조항도 포함된다. 이 의무는 이혼을 하더라도 지속된다. 기타의 계약은 쌍방 합의에 따른다.

키두쉰과 니수인 유대인의 혼인식은 토라에 따른 두 가지 절차가 있다. 보통 정혼으로 번역하는 키두쉰과 혼인 생활로 들어가는 니수인이 그것이다. 키두쉰은 여자가 남자로부터 돈 또는 혼인 계약서를 받거나 성 관계를 제의 받으면 시작된다. 키두쉰의 본 뜻은 '순결'이다. 키두쉰은 한 여자를 한 남자를 위해 구분해 두는 것이다. 키두쉰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약혼 보다 더 강력한 개념이다. 중세의 랍비 람밤은 키두쉰의 여자는 이미 법적으로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키두쉰이라도 죽음이나 이혼으로만 파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니수인은 본격적이고 완전한 혼인이다. 니수인 이후에 남편은 아내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혼인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키두쉰을 1년 동안 진행하고 난 후에 니수인을 행했다 키두쉰 1년 동안 남자는 아내가 될 여자를 위해 가정을 준비해야 했으므로 헤어져 있었다. 그런데 헤어져 있는 동안 여자가 더 좋은 남자로부터 청혼을 받거나 남편이 될 남자가 죽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랍비들은 이에 따른 복잡한 율법들을 제정했다. 오늘날은 키두쉰과 니수인을 함께 치루므로 이런 문제가 없다. 혼인은 성숙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적(私的)인 약속이어서 랍비나 종교인들이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혼인하기가 쉬운 것이다. 하지만 랍비들은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 적어도 율법적으로는 함부로 이혼 할 수 없게 했다.

거. 유대인의 혼인식 전형





혼인식이 진행되는 일주일 동안 신랑과 신부는 서로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아쉬케나짐의 경우에는 혼인식이 있는 주간의 안식일에 신랑으로 하여금 회당에서 알리야를 하게 한다. 이것을 '우프루프'라고 한다. 그리고 회당에서 화려한 축하 파티를 연다. 혼인식 전날 신랑과 신부는 금식을 한다. 리브가가 이삭을 만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혼인식 직전에 신부는 베일을 쓴다. 식은 20-30분 동안 진행되는데 키두쉰과 니수인 둘로 나누어 진다. 키두쉰을 거행할 때 신부는 신랑에게 와서 그 주위를 한 바퀴 돈다. 이때 신랑은 포도주를 따르며 두 번 축복 한다. 한번은 일상적인 축복이고 다른 한번은 혼인의 율법으로 축복을 하는 것이다. 신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어 주고 이렇게 말한다. "이 반지를 끼고 모세와 이스라엘의 율법을 좇아 내게 순결하시오 (메쿠데쉐트)! 키두쉰이 끝나면 케투바, 즉 혼인계약서를 읽는다. 이어 니수인이 진행된다. 신부는 신랑과 함께 '후파'라고 하는 4개의 기둥이 있는 차양 아래 선다. 이는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집에 들어가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한다. 혼인식을 후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어 신부와 신랑은 민얀 앞에서 일곱의 축복들(쉐바 브라코트)을 읊는다. 쉐바 브라코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누가 그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했나? 2) 누가 사람을 지으셨나? 3) 누가 그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나? 4) 누가 그녀의 아이들을 통해 시온을 즐겁게 하나? 5) 누가 신랑과 신부를 즐겁게 하나? 6) 누가 기쁨과 즐거움을 만드셨으며 누가 신부와 함께 있는 신랑을 즐겁게 하나? 7) 포도주와 관련한 축복 기도. 이후 신랑과 신부는 포도주를 마신다. 포도주를 마신 후 신랑은 포도주 잔을 바닥에 던지고 오른 발로 문질러 깬다. 성전이 파괴 된 것을 애통하는 것이다. 신랑이 신부를 밀폐된 방으로 데리고 들어 간다. 이후 음악과 춤이 있는 축하연이 벌어진다.

너. 혼인 생활

유대교는 혼인을 삶의 활력이라고 한다. 그래서 혼인하지 않은 사람은 항상 음란의 죄를 짓는다고 주장한다. 탈무드에는 늙은 랍비가 혼인하지 않은 젊은 랍비에게 혼인 할 때까지 자기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한 이야기가 실릴 정도다. 혼인의 목적은 자식을 얻기 위함만이 아니다. 혼인은 친구를 얻는 것이요 사랑과 친밀함을 만드는 것이다. 창세기 2장 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남자의 독처(獨處)를 좋게 여기지 않으셨다. 토라와 탈무드에 따르면 남자는 여러 여자들과 혼인을 할 수 있지만, 여자는 오로지 한 남자와만 혼인을 해야 한다. 그러나 유대 전통에서도 일부다처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탈무드에 나오는 랍비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아내를 여럿 두지 않았다. 주후 1000년 경 아쉬케나짐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일부다처를 금했다. 이슬람 세계의 유대인들은 일부다처를 지속했다. 오늘날에도 예멘과 이디오피아의 유대인들은 일부다처를 받아 들인다. 현대 이스라엘 공화국에서는 한 아내만 허락한다. 여러 아내와 함께 이스라엘 공화국에 정착한 사람이라면 새 아내를 또 다시 얻을 수는 없다. 케투바에 규정된 대로 남편은 아내에게 음식과 옷과 성 관계를 제공해야 한다. 성 관계는 남편의 권리가 아니라 아내의 권리다. 남편은 아내에게 성 관계를 강요할 수 없다. 혼인한 여자라도 그녀가 가지고 온 소유를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하여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남편은 그 소유와 거기서 나오는 이익을 함께 사용할 수는 있다.

더. 금지된 혼인과 사생아들

유대 율법에 따르면 남자는 13세부터, 여자는 12세부터 혼인 할 수 있다. 키두쉰은 그보다 더 일찍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중세 때까지 시행되었다. 그러나 성인식의 나이는 계속 많아 지고 있다. 탈무드는 남자 나이 18세 또는 16-24세에 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토라는 성립할 수 없는 혼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남자는 자신의 가까운 친척과 혼인할 수 없다. 친척의 전 아내와 혼인 할 수 없다. 전 남편과 합법적으로 이혼하지 않은 여자와 혼인 할 수 없다. 전 아내의 딸이나 손녀와 혼인할 수 없다. 전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녀의 자매와 혼인 할 수 없다. 이상의 금지된 혼인 대상을 통해 얻은 자식을 '맘쩨림'이라 한다. 사생아란 의미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혹독한 제재가 따른다. 근친상간이나 금지된 대상에게서 출생한 자들만 맘쩨림이라 하고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그렇게 부르지는 않는다. 한 남자가 아내 아닌 여자에게서 얻은 자식은 맘쩨림이 아니지만, 혼인하지 않은 남자가 혼인한 여자를 통해 얻은 자식은 맘쩨림이다. 이 관계는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비 유대인과 혼인하거나 코헨, 즉 제사장이 자격 없는 여자와 혼인하면 이것도 금지된 혼인에 속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심각한 윤리적 타락의 모습이 없기 때문에 그 자식들을 맘쩨림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제사장의 아내가 될 수 없는 사람은 이혼했거나, 개종자이거나, 난잡한 여인 등으로 남편의 성직을 내조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공동체가 인정한 사람이다. 자식을 남기지 않고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된 여자도 제사장의 아내가 될 수 없다. 이런 여자들과 혼인한 제사장은 제사장 자격을 잃으며, 그들의 자식은 제사장 직을 결코 세습할 수 없게 된다.

러. 이혼, 죽음 등

유대인들은 수 천 년 전부터 실수 없는 이혼을 생각 해 왔다. 이혼은 불행이 틀림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삶의 현상들 가운데 하나로 여기는 것이다. 유대교는 부부가 함께 살면서 항상 다투고 비탄 속에 있기 보다 이혼하는 게 낫다고 주장 한다. 카발라에 따르면 본디 하나로 창조되었던 남자와 여자가 이 땅에서 각기 태어났다가 다시 만나게 되면 이 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 반드시 이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이 혹은 둘 다 실수나 잘못을 해서 엉뚱한 상대에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진정한 짝인지 하나님은 아시지만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개입하지 않으신다. 결국 진정한 짝을 찾아 나서든지 아니면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해 괴로와 하면서 살든지 한다. 여기서 유대인들은 이혼의 정당성을 발견한다. 유대 율법에 따르면 남편은 어떤 이유에서나 또는 이유가 없어도 여자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 탈무드에 따르면, 남편은 아내가 저녁 식사를 잘못 준비했다고 판단되거나 더 매력적인 여자를 발견하면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아내가 그 이혼에 동의하는 지는 상관이 없다. 유대 율법은 어떤 환경에서는 이혼을 하라고 한다. 여자가 성적 범죄를 저질렀을 때 남자는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이혼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교가 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을 처절하게 이해하려고 노력 한다. 여자의 부정 따위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혼을 할 경우 남자는 케투바에 따라 엄청난 액수의 위자료를 여자에게 지불해야 한다. 유대 율법은 전 아내가 다른 남자와 혼인한다면 그 여자와는 결코 재결합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 이혼하는 과정

토라에 따르면 이혼장을 써서 여자에게 주면 그것으로 이혼이 성립 되었다. 남편이 경솔하게 이혼장을 쓰지 못하도록 랍비들은 이혼장 쓰기, 송달, 접수의 절차를 아주 까다롭게 만들었다. 탈무드는 이혼장을 '세페르 크리투트'라 한다. 이것이 '게트'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게트는 부정적(否定的)인 말이 아니다. 게트의 목적은 혼인 관계가 파기되었다고 선언하거나 이혼의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혼인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혼하는 남녀는 서로 만날 수 없게 gks다. 그래서 심부름꾼을 통해서 게트를 전해 준다. 여자는 게트를 받아야 비로소 이혼이 성립되고 다른 남자와 혼인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절차 없이 다른 남자와 혼인을 하면 그것은 간음(姦淫)이 되며 그 자식들은 맘쩨림이 된다.

- 성의 불평등

이혼 문제에 있어 남편과 아내의 지위는 평등하지 않다. 탈무드에 따르면 이혼 제의는 남편이 할 수 있다. 이것은 법이었다. 남편이 제 멋대로 이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랍비들은 이 법을 느슨하게 만들어 여자의 이익을 도모하려 했다. 랍비 법정은 남편이 병적으로 쌀쌀하거나 음식과 옷과 성 관계를 제공하지 않으면 이혼할 수 있게 했다. 남자가 성불구자이면 즉시 이혼할 수 있다. 만약 남편이 행방불명 되었는데 죽은 것으로 짐작되거나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는 죽음의 증거가 있을 경우 그 아내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혼은 남편이 제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청상과부로 살아야 하는가? 이 경우 여자는 자신이 아구나(멈춤이란 뜻)에 처해 있다는 것을 호소할 수 있다. 랍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다. 다른 남자와 혼인하면 남편이 살아서 나타날 경우 간음이 되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 아닌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편은 전장(戰場) 등 살아 돌아온다고 약속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날 때는 아내에게 게트를 써서 그 손에 쥐어 주어야 한다. 몇 년이 지나도 행방이 묘연하면 유대인 공동체는 그녀를 남편과 사별(死別)한 여자로 인정해 달라는 진정서 행방불명으로 사랑하는 아내가 아구나흐에 처하는 것을 면제해 달라는 것이다.

- 삶과 죽음과 애도

삶: 탈무드는 모든 인간은 한 사람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한 생명을 없애는 것은 천하를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유대교의 613개의 율법에 따르면 살인, 우상숭배, 근친상간, 간음을 금지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생명을 구하기 위함이다. 유대교는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계명을 어기는 것도 용납한다. 예컨데, 속죄일인 욤 키푸르 때는 모두 금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병들어 금식을 하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그는 욤 키푸르임에도 불구하고 금식을 하지 않는다. 의사는 안식일이라도 응급환자를 치료해 주어야 한다. 그 치료 행위가 비록 수 많은 안식일 규정을 범하게 하더라도... 산모의 목숨이 위태로우면 태아의 목숨을 포기할 수 있다. 태어나지 않은 자의 생명을 살아 있는 인간의 생명 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무한한 가치가 있으므로 죽음으로 갈 수 있는 어떤 행동도 금지된다.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안락사를 시키거나 자살이나 자살 방조나 이를 돕는 행위 등은 일체 금지된다. 탈무드는 죽음을 촉진시키는 일이라면 죽어가는 사람의 팔도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죽음이 절박하고 기정 사실화 되고 환자가 심각한 고통을 느껴 생명의 연장이 무의미하게 여겨지면 유대 율법은 인공적인 장치들을 제거 해도 좋다고 한다.

- 죽음

유대교에서 죽음은 비극이 아니다. 요절하거나 비통하게 죽더라도 그것은 결코 비극이 아니다. 죽음은 자연적인 현상이며 또한 과정일 따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죽음은 삶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다. 그리고 유대교는 내생(來生)에 대하여 확고한 믿음을 제공하고 있다. 내생에서는 현재 삶의 질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카발라에 따르면, 죽기 30일 전에 사람의 영혼의 한 부분인 네쉬마는 사람을 떠난다. 임종을 기다리는 동안 네쉬마는 하늘의 심판대에 서서 자신이 깃들었던 사람의 생각과 행위를 하나님께 고(告)한다. 이때 육체는 심각한 고통에 빠진다. 심판의 결과가 좋게 나오면 사람의 전신에서 땀이 나며 고통이 줄어들고 네쉬마가 돌아와 그를 비추게 된다. 임종을 하면 네쉬마와 네페쉬는 몸으로부터 분리되고 루아흐는 육체와 함께 남는다. 유대인들이 죽은 자를 애도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나 증오 때문이 아니다. 애도하는 목적은 죽은 자에 대한 존경 때문이며(카보드 하 메트), 죽은 자를 사랑했던 산 자들을 위로하기 위함(니훔 아벨림)이다.

- 시신 다루기

사람이 죽으면 눈을 감긴 후 몸을 바닥에 눕히고 천으로 덮는다. 그리고 초를 켠다. 시체는 죽은 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매장할 때까지 홀로 두지 않는다. 시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쇼므림'이라 하는데 지키는 자들이란 뜻이다. 쇼므림은 시체 옆에서 먹거나 마시거나 율법을 논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것은 죽은 자는 그런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 공동체는 장례 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를 '헤브라 카디솨 즉 거룩한 위원회라고 한다. 위원들은 모두 자원 봉사자들로 존경을 받는다. 왜냐하면 보상 받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가 어찌 보상을 하겠는가? 검시는 시신을 모독하는 것으로 여겨 기피된다. 하지만 생명을 구하는 일이거나 현지 법이 그것을 요구하면 검시를 허락한다. 검시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실시한다. 시신이 있는 곳에 들어 가는 것은 종교적으로 부정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코헨, 즉 제사장은 시신이 있는 곳에 들어가지 않는다. 시신이 있는 곳에 있던 사람들은 집으로 들어 갈 때 손을 씻어야 한다. 이것은 종교적인 의미지 위생적인 것은 아니다. 시신을 만졌더라도 손만 씻으면 된다. 매장을 위해서 시신은 깨끗한 무명 천으로 몸을 감아 싼다. 유대 현자들은 시신에 입히는 옷이나 관은 단순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가난한 자들이 부유한 자들과 차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신을 탈릿이나 찌찌트로 감는 것은 옳지 않다. 시신은 존중되므로 장기나 혈관 등을 추출할 수 없지만 기증은 가능하다고 유대인들은 생각한다. 시신은 화장하지 말고 흙에 묻어야 한다. 관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관을 사용할 때는 드릴로 구멍을 뚫어 시신을 흙과 접촉 시킨다. 관을 열어 놓는 행위는 금한다. 원수에게 그 죽음을 보여 모독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석을 세워서 죽은 자가 기억 되게 한다. 미리 비석을 세워 베일을 씌우거나 애도 후에 비석을 세우기도 한다. 애도자는 무덤에 돌을 하나씩 올려 놓아 다녀 간 것을 기념한다. 애도 (哀悼) 유대인의 애도는 슬픔이 삭혀 들 때 까지 일정 기간 계속한다. 애도 기간은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는 시간이다. 그럼으로써 애도자들이 자연스럽게 정상 생활로 복귀하도록 돕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 즉 부모나 형제 자매 배우자 또는 자식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 옷을 눈물로 적시며 슬픔을 나타낸다. 부모가 죽었으면 심장 부분을 적시고 다른 사람의 경우는 가슴을 적신다. 이 행위를 '케리야'라 하는데 눈물을 흘리다라는 의미다. 애도자는 하나님께서 참된 심판주이심을 찬양하고 그가 죽은 자의 목숨을 취하셨다고 말한다. 죽음부터 매장까지 애도자는 애도에만 전념한다. 이 기간을 '아니누트'라 한다. 이때 애도자는 "~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장례가 우선 순위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은 대개 하루나 이틀인데 유대교는 신속한 매장을 권한다. 아니누트 동안 죽은 자의 가족들은 홀로 고통을 견뎌야 한다. 이 기간에 조문은 없다. 매장 후에는 가까운 친척 친구 이웃이 애도자를 위해 첫번째 식사를 준비한다. 이것이 '세우다트 하브라아'로 '고통의 식사'란 뜻이다. 이 식사에서 생명을 상징하는 계란과 빵을 먹는다. 이 식사는 죽은 자의 가족들만 위한 것이다. 이후에 조문이 허락되고 문상을 받는다. 아니누트가 끝나면 7일 동안 애도 기간을 갖는다. 이를 '쉬바'라 한다. 쉬바에는 죽은 자의 부모, 자식, 형제 자매, 배우자가 참여한다. 죽은 자의 집에 모여 이것을 하는 것이다. 쉬바는 매장한 날 시작해서 일곱번째 날 아침까지 계속한다. 애도자들은 낮은 걸상이나 마루에 앉는다. 가죽 구두는 신지 않으며 면도나 이발을 하지 않는다. 화장을 하지 않으며 즐거움이 되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 즉, 목욕이나 성 관계나 새 옷을 입거나 하지 않는다. 토라 공부를 하지는 않지만 애도나 슬픔에 관련한 토라의 구절들은 읽어도 된다. 애도자들은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또는 장례식 때 찢었던 옷을 입으며 집안의 모든 거울을 보자기로 가린다. 쉬바 때는 친구나 이웃이나 친지들과 함께 기도회를 열 수도 있다. 카발라에 따르면, 시신이 매장된 첫 7일 동안 네페쉬는 울면서 무덤과 집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이다. 7일째 되는 날 육체가 부패하기 시작하면 네페쉬는 세상으로부터 풀려 난다. 쉬바 기간에 안식일이 오면 그 안식일 만큼은 애도의 날이 아니다. 만약 이 기간에 축제가 있으면 애도는 끝난다. 매장이 축제 기간에 있으면 애도는 축제가 끝날 때까지 연기된다. 쉬바 다음에는 '쉴로쉼'이 있다. 서른이란 뜻인데 매장 후 서른 번째 날이 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때 애도자들은 어떤 파티에도 참석하지 않으며 축하연이나 극장이나 공연장에 가지 않는다. 매장부터 열 한 달 동안 죽은 자의 아들은 매일 애도자의 카디쉬를 읽어야 한다. 이 카디쉬를 읽으면서 죽은 자가 좋은 곳에 가도록 기도한다. 유대인들은 죽음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카발라의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네페쉬는 세상으로부터 해방되기까지 열 두 달 동안 몸과 함께 남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네쉬마는 칠 일 동안 남고, 네페쉬는 열 두 달 동안 남는다고 한다. 칠 일 또는 일 년이 지나면 그때까지 무덤 위에 서서 네페쉬를 보호하고 있던 토라는 네페쉬와 함께 하늘로 올라 간다. 토라는 네페쉬를 위해 길을 치우며 앞장 서 나아가 막벨라 굴에 이른다. 그리고 무덤으로 돌아와 육체가 부활하는 날까지 그곳에 머문다. 네페쉬는 에덴 동산으로 간다. 거기서 가장 먼저 손에 불칼을 들고 있는 케루빔과 마주 친다. 네페쉬가 에덴 동산에 들어갈 자격이 있으면 케루빔은 들어 가라고 한다. 의롭게 살지 못한 사람의 네페쉬는 게힌놈에 던져 진다. 그리고 두마라고 하는 게힌놈의 왕자에 의해 지옥의 심장부로 끌려가 사방이 불타는 곳에 갇힌다. 그곳에서 부활을 기다리는 것이다. 아벨루트의 기간이 끝나면 가족은 애도하지 않는다. 다만 자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일을 한다. 매년 죽은 날에 알리야흐를 읽고 24시간 촛불을 켜둔다. 욤 키푸르, 쉐미니 아쩨레트, 유월절 마지막 날, 샤브오트 때는 회당에서 하프타라를 읽은 후에 가까운 친지들이 애도자의 기도문을 읽는다. 이찌코르(그가 기억되기를)를 읽는 것이다. 조문객은 애도자가 먼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서 애도자가 죽은 자에 대한 생각만 하도록 돕는다. 조문객은 죽은 자를 칭찬할 수는 있다. 상가(喪家)를 떠날 때 조문객은 "우리 주님께서 시온과 예루살렘을 위해 애도하는 모든 자들과 함께 당신을 위로할 겁니다"라고 인사한다.

- 카디쉬

카디쉬는 애도자들의 기도를 말한다. 이 기도는 "그의 위대하신 이름이 그가 뜻대로 창조하신 이 세계에서 뛰어나며 거룩하기를 바랍니다. 그의 왕 되심이 당신의 살아가는 날 삶 속에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애도자의 기도는 엘 몰라이 라카밈이다. 카디쉬가 애도자들에 의해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의 죽음과 같이 큰 슬픔을 겪으면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할 수가 있다. 그래서 애도자들로 하여금 하루에 한번씩 민얀 앞에서 공개적으로 신앙고백을 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하시다고 하는 것이다.왜 11개월 동안인가?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을 정결케 할 시간이 필요하다. 정결에 필요한 시간이 12개월이나 되면 악한 사람이었음을 말한다. 그래서 11개월만 카디쉬를 하는 것이다.

- 내세 -

유대교는 인간의 존재가 죽음으로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대교는 이 세상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내세를 덜 강조할 뿐이다. 유대교는 내세에 관한 교리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의인의 영혼은 천국에 간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사는 동안 그런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메시야가 오면 그런 세계가 건설되리라고 한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사악한 자들의 영혼은 악마들에게 고통을 당하거나 죽음과 함께 그 존재가 사라진다고 한다.

- 부활과 재생

부활은 유대교의 기본 신앙이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을 사두개인들로 부터 구분하는 기준이다. 사두개 인들은 토라에 부활의 언급이 없다 해서 부활을 믿지 않았다. 죽은 자의 부활은 람밤의 13개 신앙조목에도 들어가 있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씩 하는 쉬모네에스레이 기도의 두 번째 항목이 바로 부활에 관한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은 메시야의 시대에 일어나게 되는데 메시야의 시대를 히브리어로 '올람 하 바'라 한다. 이 단어는 영적인 사후 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카발라에 따르면, 메시야의 날에 네페쉬는 육체와 다시 결합하고 땅 속에 있는 육체와 함께 남겨 졌던 루아흐도 풀려나 네페쉬와 하나가 되며 하늘에 있던 네쉬마도 내려와 그 몸을 비추게 된다. 어떤 신비주의자들은 부활은 한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라 한다. 사람은 틱쿤 올람 즉 개선되어 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세계에서 사람들은 정해진 대로 재생된다는 것이다. 다른 신비주의자들은 이런 현상은 특별한 경우에만 일어난다고 한다. 이러한 재생의 믿음은 시내산에서 현재 과거 미래의 모든 유대인들의 영혼이 함께 토라를 받았다는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 다가 올 세계

올람 하 바는 메시야 시대를 일컫기도 하고 고결한 존재의 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세상은 안식일 전야와 같다. 올람 하 바는 안식일이다. 안식일 전야에 음식을 준비해서 안식일에 그것을 먹는다." 토라 공부와 선행으로 올람 하 바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탈무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올람 하 바에 몫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두 같은 분량의 몫이 아니다. 의로운 자는 더 큰 몫을 받는다. 그리고 악한 행위로 그 몫을 잃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유대 율법을 행함으로 천국 가는 표를 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랍비들은 천국에 가는 것이 유대교도들의 목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유대교의 목표는 현재의 삶을 어떻게 충실하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라는 것이다. 미쉬나에 이런 말이 있다. "대가를 받으려고 주인에게 충성하는 하인처럼 살지 말라. 차라리 대가 없이 주인을 섬기는 종처럼 살아라." 유대교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에 따라 내세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따라 보장받는다고 가르친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실 수 있는 행동을 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비유대인들도 올람 하 바에서 몫을 차지할 수 있는가? 의인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유대인이 되는 것이 올람 하 바의 멤버가 되는 조건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 간 에덴, 게힌놈

의인들을 위한 대가(代價)의 장소를 히브리어로 간 에덴, 즉 에덴 동산이라고 한다.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에덴 동산이 아니라 영적으로 완벽한 곳을 말한다. 우리가 안식일에 누리는 평화는 죽음 이후에 누리는 평화의 60분의 1도 안 된다고도 한다. 이 평화는 화창한 날의 따뜻함 보다 더 좋은 것이다. 이 세상만 알고 살아가고 있는 자들은 그 좋은 것을 알지 못하는데 마치 장님이 색깔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유대인들은 말한다. 아주 의로운 사람들은 곧장 간 에덴으로 간다. 보통 사람들은 벌을 받거나 혹은 성결 하게 되기 위해서 훈련을 받으러 게힌놈으로 내려 간다. 게힌놈은 히브리어 구히놈이나 게헨나또는 쉐올의 이디쉬이다. 한 신비주의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죄는 한 천사의 타락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게힌놈을 불과 못이 있는 지옥이라 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평생 지은 죄를 알게 된다. 거기서 우리는 그 죄로 말미암은 잘못된 결과와 놓쳐버린 기회들을 관찰한다. 하지만 게힌놈에서는 열 두 달이 넘지 않는 기간 동안만 머문다. 후에 올람 하 바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오로지 사악한 사람들만 이 기간이 끝나도 올라가지 못하고 벌을 받는다. 열 두 달 후에 어떻게 되는가? 자료마다 설명이 다르다. 어떤 자료는 그것으로 존재가 끝난다고 한다. 다른 자료는 회개를 위해 계속 머문다고 한다. 게힌놈에서 머무는 열 두 달에 대하여는 탈무드 여기 저기서 말하고 있다. 카디쉬에 나오는 애도 기간과 관계가 있다.

머. 유대인과 돈

돈은 `버는` 게 아니라 `불리는` 것 유태인들에게 13세가 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때부터 종교적인 차원에서 성인 대접을 해 준다. 때문에 13세가 되는 생일 행사는 `성인식`으로 여겨져 정말 성대하게 거행된다. 개인의 일생에서 결혼식과 함께 평생 가장 중요한 두 날중 하루로 꼽힐 정도이다. 남자 아이들의 성인식은 `바 미쯔바(Bar Mitzvah)`라고 한다. 히브류어로 바는 아들, 미쯔바는 계명을 의미한다. 즉 바 미쯔바는 `계명에 따라 사는 아들`이라는 뜻으로 이 행사를 마치면 종교적으로 `책임있는 사람, 즉 완전한 성인`이 되는 셈이다. 과거에 여성들에게는 이런 행사가 없었다. 그러나 여권이 신장되면서 1921년 미국에서 유태인 여성들의 성인행사가 처음 시작됐다. 여성 성인식의 이름은 `바트(Bat) 미쯔바`. 바트는 딸을 의미한다. 바트 미쯔바도 바 미쯔바처럼 통상 13세 생일에 열린다. 하지만 일부 교파에서는 12살 생일에 성년식을 하기도 한다. 이 나이의 소녀들의 경우 소년들보다 신체적으로 빨리 성숙해진다는 이유에서다. 성인식이 의미가 큰 만큼 유태인 어린이들은 바(바트) 미쯔바 1년전 부터 이날의 행사를 준비한다. 부모의 지도에 따라 기도방법을 배우고 당일 시나고그(교회)에서 읽고 설명할 토라(성경)를 배운다. 물론 이 토라는 히뷰류어로 쓰여진 것. 유태인들이 이스라엘에 살지 않더라도 대부분 성인이 되면 유창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히뷰류어를 읽을 수 있게 되는 이유이다. 1년동안 대중 앞에서 말하는 방법을 배운 덕에 유태인 성인들이 대부분은 토론에 달인이라는 소릴 듣는다. 성인식에는 결혼식 처럼 일가 친지 친구등 많은 사람이 모여 축하를 해준다. 뉴욕 인근 유태인들이 많이 다니는 중학교에는 1년내내 성인식 행사가 있어 학교에서 `행사 날짜`가 중복되지 않도록 사전에 조정해주기도 한다. 날짜가 중복될 경우 어느 한쪽에 친구들이 몰리면 다른 한쪽은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를 받는 탓이다. 뉴욕 월스트리트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는 한 유태인 직장인은 역시 유태인인 자신의 직속 상관 딸의 성인식에 초대받지 못한 뒤 고민을 하다가 결국 사표를 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이다. 그렇게 중요한 날 초대받지 못한 것은 그만큼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평가 받았다는 생각에서다. 바(바트)미쯔바는 통상 시나고그에서 종교적인 행사를 갖고 행사를 마치면 연회장이나 대형 식당을 빌려 축하모임을 갖는다. 결혼식 피로연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날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결혼식 때와 마찬가지로 `부조금`를 낸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물론 가족들도 대부분 `현금`으로 부조를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나 가까운 친척들은 이때 `유산`을 물려주는 생각으로 적지 않은 금액을 주기도 한다. 월가에 근무하는 한 유태인은 "일반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보통 직장인`의 경우 통상 바(바트)미쯔바 행사에 일인당 평균 2백달러 정도 내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축하객이 2백명 왔다고 계산하면 들어오는 돈은 모두 4만 달러. 그러나 친척들은 조금 더 많은 돈을 내기 때문에 뉴욕 중산층의 경우 성인식 한번을 하면 평균 5-6만달러가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물론 가난한 집안에서는 1-2만달러 모아지는 반면 맨해튼의 고급호텔을 빌려 행사를 할 정도의 부자 집안에서 수십만 달러가 들어오기도 한다. 이날 들어오는 돈은 모두 성인이 되는 주인공의 것이다. 행사준비에 들어간 실비를 빼고 나머지는 모두 성인이 된 소년 소녀의 이름으로 예금을 하거나 채권을 사서 묻어 두는게 보통이다. 이 돈은 이들이 10년 후인 20대 초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쯤 되면 적어도 두배 이상 불어나 있다. 평균으로 따져 우리 돈으로 약 1억원 안팎의 `쌈짓돈`을 가지고 사회 생활에 나선다는 계산이다. 때문에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유태인 청년들의 고민은 `당장 먹고 살기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이 돈을 불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이다. 똑똑한 유태인들이 젊은 시절에 창업의 길로 나서거나 쌈짓돈을 눈덩이처럼 굴려 키울수 있는 금융업종을 선호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주머니에 한 푼 없이 `일단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직장을 선택해야 하는 한국의 젊은이들과는 사회생활의 출발점 부터가 다른 셈이다.

버. 유대인과 권력

유대인은 아브라함 때부터 성경의 축복개념 속에 권력의 쟁취가 기록되어 있다 물론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받게 된 은사로 받은 것이지만 그들은 이러한 기록들을 근거로 하여 권력 자체를 목표로 삼은 적이 많고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의를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유대인들에게 표본이 된 권력은, 에굽에서의 모세, 요셉, 바사에서의 에스더 바벨론에서의 다니엘 등이 있고 주 후에는 에스더서가 가장 많이 애독되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유랑을 예수를 죽인데 두지 않고 자신들을 박해하는 본토인들에게 돌리고 부림절에 모르드게를 죽이는 것처럼 기존 권력을 이용하여 원수를 갚는다는 것으로 유대인들의 세계지배욕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서. 유대인의 신앙

유대교의 신관은 유일신 사상이다. 이는 그리스도교와 같다. 다만 삼위일체신 이라는 것이 다르다. 유대교는 하나님이 유대인을 선민으로 하고,유대인들은 그렇게 믿어왔던 것유대교의 신관은 유일신 사상유대교의 신관은 유일신 사상이다.





이는 그리스도교와 같다. 다만 삼위일체신 이라는 것이 다르다. 유대교는 하나님이 유대인을 선민으로 하고,유대인들은 그렇게 믿어왔던 것. 유대교의 신관은 유일신 사상이다. 이는 그리스도교와 같다. 다만 삼위일체신 이라는 것이 다르다. 유대교는 하나님이 유대인을 선민으로 하고, 유대인들은 그렇게 믿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구약시대 즉 모세 때 출애굽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나타내심)하셨으나 유대인들은 금송아지를 여호와로 대치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유일신 사상을 벗어나 우상종교로 전락했다. 그래서 유대인의 역사는 우상숭배의 연속에서 외부의 노예도 되고 전쟁에 휘말려 왔으며,2천년간 나라 없이 유리방황하였다. 유대교가 주류임에도 창조주종교에서 전통(정통)을 벗어나 곁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메시야 예수의 출현으로 창조주 종교가 성경(구약)적 신앙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종교인 유대교는 에덴에서 부터 시작된 종교로 아브라함을 비롯해 전해오다가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받아 성막제도에서 여호와를 섬기며 흘러왔다. 그러나 아브라함(요8:56-)이나 모세(히11:24-) 그리고 다윗(마22:43-)은 다른 유대인들의 신앙관 또는 신관과는 다르게 메시야 신앙이었다. 이런 메시야신앙은 오늘날까지 유대인에게는 극히 적은 신앙이며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관이다. 이런 메시야 신앙이 마지막 때(메시야 출현의 신약시대)에 메시야 예수께서 성육신 하시어 유대인의 선생인 제사장,서기관,바리새인,사두개인 등에게 질책하시며 그들의 외식과 메시야의 탄생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이나 일(하나님과 메시야를 믿는 것)에 대해 증언하셨다. 아기 예수가 출현하게 된다는 소문을 들은 헤롯왕은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에게 메시야가 어디서 태어난다고 했느냐고 물었고 베들레헴이라고 답변했듯이 지도자들은 메시야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위한 메시야,구세주로서의 메시야를 기다란것이 아니라 국가적 해방자로서의 메시야를 기다렸다는 오해이다. 거기에 구약식 율법주의에 머물러 있고,율법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바울사도의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구약개념은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창세기를 비롯한 구약의 메시야의 약속과 의미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에 비유했다. 아울러 랍비들의 율법해석이나 준수에 있어서 계명분류 적극적인 것 248조, 소극적인 것365조 등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구약에 대한 오해는 오늘날의 사이비들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오늘날 유대교는 세파로 정통파와(그들의 개념상 분류)율법 고수파, 중간파 등은 서로 유사하며 결국 율법주의에 랍비(레위의 다른 말) 중심의 사고에 좌우되는 것이지 성경(구약)을 중심으로 한 사고가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을 마지막 때(종말)가 오기 전에 돌아오게 하시므로 해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신다는 것이다(롬11장). 오늘날 유대교는 세파로 정통파와(그들의 개념상 분류)율법 고수파, 중간파 등은 서로 유사하며 결국 율법주의에 랍비중심의 사고에 좌우되는 것이지 성경(구약)을 중심으로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을 마지막 때(종말)가 오기 전에 돌아오게 하시므로 해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신다는 것이다(롬11장). 그리고 구약시대 즉 모세 때 출애굽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나타내심)하셨으나 유대인들은 금송아지를 여호와로 대치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유일신 사상을 벗어나 우상종교로 전락했다. 그래서 유대인의 역사는 우상숭배의 연속에서 외부의 노예도 되고 전쟁에 휘말려 왔으며,2천년간 나라 없이 유리방황하였다. 유대교가 주류임에도 창조주종교에서 전통(정통)을 벗어나 곁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메시야 예수의 출현으로 창조주 종교가 성경(구약)적 신앙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종교인 유대교는 에덴에서 부터 시작된 종교로 아브라함을 비롯해 전해오다가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받아 성막제도에서 여호와를 섬기며 흘러왔다. 그러나 아브라함(요8:56-)이나 모세(히11:24-) 그리고 다윗(마22:43-)은 다른 유대인들의 신앙관 또는 신관과는 다르게 메시야 신앙이였다. 이런 메시야 신앙은 오늘 날 까지 유대인에게는 극히 적은 신앙이며 부분적인 신관이다. 이런 메시야 신앙이 마지막 때(메시야 출현의 신약시대)에 메시야 예수께서 성육신 하시어 유대인의 선생인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사두개인 등에게 질책하시며 그들의 외식과 메시야의 탄생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이나 일(하나님과 메시야를 믿는 것)에 대해 증언하셨다. 아기 예수가 출현하게 된다는 소문을 들은 헤롯왕은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에게 메시야가 어디서 태어난다고 했느냐고 물었고 베들레헴이라고 답변했듯이 지도자들은 메시야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위한 메시아, 구세주로서의 메시아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국가적 해방자로서 메시아를 기다렸다고 볼 수 있다. 이점이 유대 세계지배 종교의 근간이 된다. 즉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을 마지막 때(종말)가 오기 전에 돌아오게 하시므로 해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신다는 것입니다(롬11장).

러. 자신들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기도만 하나님이 응답하신다고 자부한다. 반면에 그리스도는 자신들의 많은 선지자들 중 한 사람일 따름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