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 한국 기독교에서 고쳐야 할 부분
1 구약은 신약의 참고서이다.

구약보다는 신약을 믿어야 하고 신약도 공관복음과 바울 서신 위주로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자체를 믿는 것이고 성경을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제외한 다른 부분은 유대인과 백인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갖다 붙인 군더더기이다. 사실 예수님은 자연의 하느님을 인간 세계에 전파하려고 오신 하느님이다. 한국인들에게 예수 믿는 것은 옛날 조상들의 하느님, 즉 인본주의 하나님이 아닌 자연의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예수님은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顯現)하신 것이다. 그런데 서양의 하나님의 경우 그 하느님이 인간의 집단적 생활과 생활을 죄로 여기시지만 인정하시고 그 죄를 예수를 믿음으로 사해 주신다는 점에서 우리의 하느님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 민족에게는 죄가 없는가? 중국과 페르시아와 서양의 노예제도가 고려 시대 이후 우리에게 도입된 지가 천 년이 넘었고 서양의 인본주의 문물이 들어온 지도 갑오경장(1.894년)이후 백 년이 넘었으며 지금 세계에서 유래 없는 인본주의 문명의 급진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나라로서 원죄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더 큰 죄의 사함을 받기 위해서라도 한국인은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는 아리안 족이 인도에 강요한 계급 제도, 그것도 고조선에서 배운 천신 제사장 제도를 남성 위주로 바꾸어 한인조선의 연방국 서납아국(인도)에 강요한 카스트 제도에 항거하기 위해 나타난 종교로 인간의 힘으로 세속의 욕심을 비울 수 있다는 인본 적인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므로 무시할 수 있고 회교는 같은 하느님인데 관습의 차이일 뿐이고 힌두교는 고조선의 종교가 토착화 한 것이며 유교는 종교가 아니므로 문제가 없어 한국에서는 예수를 통해 세계의 종교가 통합될 수 있다.
다만 서양의 기독교의 계급제도에서 나온 주라는 용어와 전쟁과 살육을 가져온 피를 선호하는 의식과 욕심에 이끌리는 기도 등 모든 이기적인 발상을 예수님의 마음인 “우리“로 바꾸면 된다
한국 기독교인이 신구약 성경을 다시 본다면 구약은 폐지해야 하고 신약은 공생애만 인정해야 맞으며 대신에 조상의 빛난 얼을 기록한 경서들(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세속오계, 삼강오륜 등)을 애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주라는 말은 쓰지 말고 예수로 기독교는 예수교나 그리스도 교로 그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

* 현현[顯現 , Manifestation ]
내적인 것, 본질적인 것이 외적인 것으로서 정립되어 그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지만, 현상보다도 고차적인 의의를 지닌다. 현상이 근거와 실존의 반성운동으로서 존재하는 것인 데 반해, 현현은 자기의 외면적 존재에서 존재하는 한에서 자기 자신이라는 자기규정의 운동을 나타내며, 근거와 실존, 내면과 외면이 동일한 '현실성'의 지평에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현상이 본질적인 것으로 환원되어 본질의 자기규정으로 되어 있는 경우의 현상이 본질의 현현이라고 말해진다. "현현은 자기 자신에 동등한 절대적 현실성이다"[『논리의 학』 6. 218].
예를 들면 빛의 존재는 빛이 빛나는 활동 그 자체이지 빛나는 현상과는 별도로 빛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빛은 자연의9 현현이고 자연의 규정들을 자기로서 개시한다[『엔치클로페디(제3판) 자연철학』 275절 이하]. 나아가 정신의 규정성은 자기에 대해서 자기를 규정하고 그 외화에서 자기 동일적이라는 것으로서 특별히 현현이라고 불린다[『엔치클로페디(제3판) 정신철학』 383절, 564절].


2. 하나님의 이름 틀렸다. 하느님이 맞다.


하나님은 서양의 God이고 한국어로는 하나님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인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
한국인에게 하느님은 나를 포함하는 천지인 결합 생명체이다. 한국인에게 천지인은 서로가 상호 관련성을 가지고 서로 의존하며 한쪽이 다치면 함께 다치는 한 생명체 속의 일부이다.
한국인에게 천지인 삼신은 인간을 낳아준 생명체이다 그 수명은 우주가 약 150억 년 지구가 약 50억 년이고 지구의 자연도 모두 그렇게 생겨났다. 자연에서 맨 마지막에 태어난 것 가장 진화되어 태어난 것이 인간이니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인간이 소 우주이다. 인간의 생각이 자연과 우주의 생각이다. 그래서 인간의 구성요소도 2천 억 개의 별로 구성된 2천 억 개의 은하계만큼 많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의 말처럼 인간 스스로가 신이 되기 이전 시대(약 1만 년)에는 대 제사장이 기도하면 그 기도는 우주와 땅과 사람이 합일되어 있으므로 모두 이루어졌다. 마가복음 11:24절에“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고 하셨다. 그러나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고 야고보서 4장 3절에서 문명을 통해 편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본래 창조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을 내 세우지 말고 자연 속에서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에 의존하는 인간이 될 것을 강조했다. 우리 한국인 특히 착하고 양심이 바른 한국인은 그러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인의 이 하느님은 유대교의 여호와와 다르다 유대인의 여호와는 원래 아브라함이 창조한 것으로 서양의 식인 신을 포함하여 시리아 에볼라도시의 여러 신의 총칭이었다. 이 신은 인간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을 닮았고 축복을 받아 자손과 재물이 많이 생기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남의 땅을 빼앗고 이 민족을 죽여도 되는 인간 본위의 신인 반면 한국인의 하느님은 자연 본위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그 의미와 근본에서 동일하다. 그러면 여기서 구체적으로 성경의 여호와 하나님과 고조선의 하느님(예수 그리스도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을 다시 비교해 보자.
유대교의 여호와는 수메르의 신과 백인들의 신을 합쳐놓은 에볼라의 다신(多神)을 총칭하는 이름으로 유대인들(구약에는 아브라함)이 창조했는데 인본적인 신이고 인간 중심의 신이다. 그래서 창세기1장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라고 했다. 당시에 지중해 지역은 흑암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동방의 해뜨는 나라인 우리 나라는 햇빛을 따라와서 밝았다(북애노인 규원사화 창세기 참조) 그 원인은 백인들은 호모사피엔스가 되기 훨씬 이전인 기원 전 15만 년-6만 년 전에 즉 아리안 족과 혼혈이 되기 전 따뜻한 곳을 찾아 어두운 지중해 지역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만 운행하시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수면에만 계신 것이 아니고 무소 부재(無所不在) 하시다. 해안 가에서 살기 위에 인간의 힘으로 고기를 잡아야 하는 해양 민족들에게는 당연히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있었을 것이다. 여호와는 유럽인에게 필요한 선택적인 신이며 생존 환경이 낳은 인본 신이다. 한인조선에서 삼신(여성신)을 버리고 농사지을 땅을 찾아 남성들을 중심으로 스텝을 따라 서쪽으로 간 수메르의 가지 유대인들과 백인들이 만든 인본 신이다. 반면에 우리 민족의 신은 자연을 섬기고 자연에서 허락하는 범위에서 만난 신이기 때문에 자연이 풍성한 해 뜨는 곳의 자연 신이다. 창세기에 기록된 유대인의 신은 어두워 싸우고 이겨 식인을 해야하며 인간의 노력으로 살아야 하는 지중해 식 인본 주의 신들과 수메르의 농사 및 전쟁 신이 합쳐진 신인데 하나 더 특징적인 것은 수메르 점령지역(에굽 포함)에서 지역 간 교역을 맡았던 아람 인들의 재물 신이 여기에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구약과 창세기를 비롯하여 예수님의 메시아 설과 십자가 보혈 등 성경의 모든 줄거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모두 이해될 수 있다.
창세기의 창조 순서, 에덴, 인간 창조, 원죄, 당시의 수명, 노아의 홍수. 아브라함의 재물 욕심, 일부 다처, 인신 공양 나쁜 부분을 삭제하고 예수님의 공생애 주장과 예표, 교훈들을 모아 놓으면 바로 우리 한국인의 사람 즉 양심이 주도하는 하늘 나라가 된다.
구약의 여호와는 에볼라 국의 다 신의 총칭으로 식인 신이고 인육을 먹는 신이다. “레위기 8:21 물로 내장과 정강이들을 씻고 모세가 그 숫양의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사르니 이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드리는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외 신명기, 민수기에 다수. 여기서 짐승은 백인의 전통에 따르면 원래 아브라함의 이삭 제물처럼 인간이었음(불교의 인신 공양)

3. 교회에서는 예수의 공생애만 설교하고 가르치고 본 받고 전도해야 한다.


구약은 신약의 참고서이고 신약도 공생애 이외에는 기독교인과 유대인 그리고 로마 정권이 갖다 붙인 군더더기이다. 예수의 탄생을 가르치고 주일을 지키고 부활절과 성탄절을 지키며8 유대인을 선전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자청해서 그들의 노예가 되는 것으로 조상들과 하느님께 짓는 가장 큰 죄악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목사들이 성도 개인과 민족의 축복을 바랄 수 있겠는가? “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4. 예수 그리스도는 主(주)가 아니고 그냥 예수님이고 우리의 일부분이다.


주(主)라는 호칭은 는 주종관계가 전제된 용어이고 우리가 그의 노예라는 표현인데 예수님 자신도 우리를 섬기려고 왔지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다(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하늘나라 즉 어느 아버지의 나라 표현에도 종이라는 용어가 없고 품꾼과 청지기라는 표현뿐이며 주인과 종이 존재하는 인간이 만든 계급 제도는 고조선에서는 없었다. 중국의 인본주의 황하 문명의 영향으로 고려 시대부터 한국 사회에 들어왔는데 수천, 수만 년 간 해와 달을 보고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제사를 지내면서(朝가 가진 상형의 의미를 관찰해 보라!) 물고기를 잡아먹고 가축을 키우면서 억지로 인본주의적인 생각으로 인구 증가를 위한 대규모 집성 농사를 하지 않던(鮮자가 가진 상형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 그래서 문명을 추구하지 않았던 고조선의 유민들은 고려조 1.00-1.400년 간 20회 이상 노예의 반란(만적의 난, 망우이의 난 등등) 일으켰으나 고려의 역사는 이를 옳지 않는 반역으로 기록했다.

5. 성찬식은 버려야 한다.


예수님은 한국인들에게는 주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년 전까지만 해도 수 만 년 동안 자연스럽게 살아와 주인과 종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또 서양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은 것은 히 9:22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모든 물건이 피로서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죄 사함도 없느니라.” 라는 백인들의 식인 풍습을 따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피를 좋아하고 그 향기를 흠향하는 여호와라니? 따라서 한국인은 성찬식이나 그리스도의 보혈이니, 보혈의 은혜니 하는 말을 하면 안되고 그리스도의 은혜라고만 생각하면 된다.

6. 안식일은 유대인이 장사를 하지 않는 날 일 뿐이며 틀린 개념이다.

매일이 하느님이 주신 날이고 예수의 날이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제 6일 때 인간을 만들고 제7일 째 쉬었는데 그래서 제7일은 안식일이라는 창세기의 기록은 유대교의 제사장과 서기관(주로 레위의 자손)들이 자신들에게 편하게 조작한 것이다 원래 인간은 제7일날 쉬는 것이 아니고 밤에 쉬도록 만들어졌다. 유대인들이 밤에 일하기를 좋아하는 백인들을 장사 목적으로 상대하기 위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일주일 중에 하루를 쉬도록 했다. 원래 고조선에서의 일(日)월(月)화(火)수(水)목(木)금(金)토(土) 는 각각을 창조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도록 정한 날로써 음양 오행설에서 유래했다. 자연의 하느님은 사람은 해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도록 만들었으므로 그렇게 하면 된다. 밤의 문명은 인간의 죄의 문명이다. 따라서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도 틀렸고 토, 일요일에 쉬는 것도 틀렸고 건강에 맞지 않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맞다. 밤이 있는 것은 낮에 일을 하고 밤에 자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 가는 것,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것 등 개인의 신앙 생활 등 기존 교회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던 일과들도 지금부터는 우리 아버지의 뜻, 즉 인간의 생태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 져야 한다.

7. 주기도 송을 바르게 불러라. 주기도문 만 진실이다.


원래 마태복음 6장9절의 주기도문은 9절 “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절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절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라고 되어 있으나 실재 교회에서 부르는 주기도 송은 다음과 같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 거룩하사
* 아브라함 이후 아누님(하느님)보다 멜기세덱(수메르의 말뚝신, 전쟁 승리의 신)을 더 거룰히 여긴 것을 고치라는 뜻인데 이를 무시하였음
주님 나라 임하시고
* 원래는 하느님의 하늘 나라 즉 고 조선의 자연의 나라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계급 사회에나 있는 노예를 합법화하는 나라로 그 말을 바꿈
뜻이 이루어 지이다
일용할 양식 주옵시고
* 인간 집단을 만들어 먹을 것 때문에 싸우지 말라는 뜻이나 단순화시킴
우리들의 큰 죄 다 용서 하옵시고
* 우리가 죄지은 이웃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용서하지 말라는 목숨을 건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나 일반적인 죄를 용서해 달라고 치부하고 있음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시고
이 부분은 문명사회를 만든 인간에게 필연적인 이기심 때문에 오는 자신 내부의 휴혹을 말하며 하느님이 아니고서는 피할 길이 업다 그래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 이 부분은 문명 사회 속에 사는 인간에게 필연적인 타인으로부터 받는 피해를 말한다
주의 나라 주의 권세 주의 영광 영원히....
* 이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명령한 하느님 아버지 즉 혈육의 나라를 주인과 종이 있는 노예의 나라로 영원히 만들자고 하는 반역의 노래이다.
덧붙이면 모든 찬송에서 주라는 말은 빼야 한다.


8. 사도신경은 거짓 말이다.

주일 예배 때마다 외우는 것은 백인과 유대인에 대한 충성 서약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죽은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눅 9:22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 마16:21 )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예수께서도 증거하신다)
( 마27:1 )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 마27:20 )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
( 막15:1 )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
( 눅22:66 )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이어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 빌라도는 무죄하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 눅23:4 )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 눅23:20 )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 눅23:22 )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 마27:24 )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 요19:4 )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 하더라
( 요19:6 )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 요19:14 )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 일이요 때는 제 육 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빌라도는 예수님과 대화를 한 후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고백한다.)
따라서 교회의 예전에서 사도신경 암송은 틀린 갓이다

9. 찬송은 이렇게 해야


개신교에서 부르는 찬송가는 대부분 종교 개혁 이후에 나와서 그런지 천주교와 유대인의 영향이 적고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가사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많고 거의 대부분의 가사에 “주” 라는 접두사가 붙어 있거나 예수를 아예 주라고 부르고 있다. 이 부분을 고쳐야만 정말 기독교가 된다. 모든 찬송가에 있는 주라는 가사와 하나님이라는 가사는 예수와 하느님이라는 가사로 고쳐야 한다. 설교자들이나 평신도 입에 붙어 있는 하나님과 주를 떼라!!

10. 잘못된 십자가 보혈 개념 없어져야 한다


십자가는 서양에서 기원 된 것이 아니다. 한자(漢子)의 십(十)자(字)는 원시 글자로 고비사막에서 1990년대에 발견된 만 3천 년 전의 흑피옥 조각상에도 그려져 있는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으로 팔을 벌린 모습이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단군이고 사제이다. 원래 우리는 수 만 년 동안 채식을 해 왔지 서양의 백인들처럼 사람의 피를 먹고살지 않았고 사람을 제물로 삼지 않았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피의 재물로 생각하여 십자가나 보혈을 통한 속죄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인신 공양은 참고, 견디고, 배려하고, 희생하는 것이다. 서양 기독교인들처럼 예수님의 흘린 피에 그들이 수 만 년 동안 지은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필요가 없다.


11. 기도는 이렇게 해야 한다


한국인의 경우 기도는 좀 특별하다. 6만 년 전 고조선이 제사장 국가였을 때 수명을 천년에 달했고 무엇이든 기도하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자연에 최적화 된 인간의 대표가 필요로 하는 생태계의 요구를 하느님께서 모두 들어 주신 때이다. 사람들과 동식물이 갈증을 느끼면 기도하고 기도하면 비를 주신 것이다. 하늘과 관련해서는 더욱 명확하였다. 그래서 비, 구름, 바람을 거느리고 인간을 도우신 우리 옛 터라는 개천절 노래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야고보서 4:3절에서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라고 하였다. 기도에 관한 한 성경 기록은 정직하다. 교회를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7) 또 예수님도 막 11:17절에 “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교회는 조상들의 교회 개념과 같다. 교회에서 돈 걷고, 유흥하고, 목사의 개인 욕구를 가르치고 즐거움을 위해 찬양하는 것은 금물이다.
가. 한국인에게 기도의 첫 번 째 과제는 한을 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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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한(恨)의 정의에 대해 여러 설이 있으나 필자가 보기에는 한문의 어원으로 따지는 것이 가장 고전적인 풀이라고 생각된다. 한문에서의 恨(한)은 말 그대로 좋은 마음 즉 양심을 말하는데 양심이 상처를 받았을 때 생긴 억울한 심정을 한이 맺힌다고 표현 한 것으로 본다. 인본주의가 자연주의를 지배하면서 게급과 주종이 생기고 우리 민족에게 한이 생긴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죄를 짓는 상대방 인간에게는 한이 생기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심성에 관한 한 사람들은 대표적으로 한(恨)이 많은 민족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한(恨)의 의미를 억울함, 성취되지 않는 욕구가 오래가서 상처로 남는 것, 미움의 마음이 지속되는 것, 후회하여 애통하는 마음, 비통한 마음, 슬픈 마음 등 여러 가지 해석을 내 놓고 있다. 이러한 해석이 모두가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의 원인에 대한 설명은 한 마디도 어디에도 없다. 이 말이 생겨난 시기는 중국의 한문 문화를 숭상하던 시대, 즉 신라(新羅)나 이조(李朝) 시대일 것으로 본다. 또 이 시대는 우리 한 민족이 아시아와 중원의 대륙 대국에서 한 반도 안으로 축소된 시기였다. 우리나라(칸의 나라, 신의 나라, 소도 나라), 우리 민족이 제후국 관경(소도에 대비 되는 단어)에 한 일은 적어도 1만 년 전부터 제사를 지내주고, 불사용법과 농사와 치료를 가르치고 학정을 하는 지배자를 인근의 군사들을 세워 물리친 것이고 즉 천리를 따라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제세이화(?世理化)의 조상들(桓因, 桓雄, 檀君)의 정신을 따라 좋은 마음, 착한 마음, 선한 마음으로 베풀었는데 돌아온 것은 침략과, 영토 상실, 외세의 노략질, 억압, 수탈뿐이어서 이에 대한 억울하고 슬픈 마음 즉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대한 한탄이 심성이 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6:9절 주기도문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라는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또 마태복음 5:6절에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고 9절에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10.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11,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12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13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14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5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6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17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8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9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위의 모든 말씀은 한을 풀어주는 하늘 나라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의 유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많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보인다.


나. 한국인에게는 예의범절이 하느님이 주신 사회규범이다

두 번 째는 십계명보다 이를 두고 기도해야 한다.
예의 의미는 예(禮)자를 글자 그대로 풀이해 보면, 보일 시(示)변에 풍년 풍(豊)자로서 풍성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즉 몸에 옷을 입어서 풍성하게 보이고 남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예란 나의 행동과 언어를 통하여 남에게 보이는 것이지 마음속의 깊은 내면세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예란 다른 사람과의 생활에 있어서 남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며 마음에 들도록 처신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란 나의 행동과 언어를 통하여 남에게 보이는 것이지 마음속의 깊은 내면 세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예란 다른 사람과의 생활에 있어서 남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며 마음에 들도록 처신하는 것이다' 또는 '상대방에 대하여 자기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의하여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는 능력에 예의범절의 본질 있다'고 서양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즉 인간 사외 속의 삶이 전제가 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마음과 행동을 말하며 신약의 사랑(고전 13장)의 개념을 포함한다. 서양은 이 개념을 성경에서 따 와 에티켓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으나 적용 범위가 여성에게 국한되며 남자들끼리는 서로 싸우고 죽여서 이겨야 하는 경쟁 관계가 일상이다. 일본에는 조선에서 건너간 예의염치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혼네(本音) 정신 때문에 그 속을 알 수가 없고 살기 위해 예의를 지키는 척 하는 것이다 예의염치가 없기는 열등한 네안데르탈 계통의 잡 족인 중국인들이 대표적이다. 지금 당장 중국에 가서 확인해 보라 우리와 다른 점을 느낄 것이다. 오죽하면 공자도 인도인들도 우리를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고 했을까. 이들 국민들은 모두 우리처럼 하늘을 존경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비 제사 민족이고, 본능적으로 수 만년을 지내온 네안데르탈인의 후손들이다.
제사에 관한 한 필자가 할 말이 많다. 왜냐 하면 1996년 미국 켈신 대학원 박사 논문 제목이 성경제사와 한국제사 비교 연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개신교 선교의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개신교도들은 우상에 절을 한다고 기독교인들을 비난하고 비 기독교인들은 개신교도들을 조상을 모르는 놈들, 에미 에비도 몰라는 것들이라고 서로 비방한다. 그래서 시작한 연구로 오늘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이 70이 되어서야 나의 조부님이셨던 차신환 장로(경남 양산 중앙교회: 장로교 고신 측)님께서 나에게 육사 나오더라도 출세만 좋아하지 말고 때가 되면 복음 사역을 하라 는 말씀과 함께 돌아가시기 얼마 전(86세 당시 1971년?)에 네가 원하면 제사를 지내라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과 환인 하나님은 같은 분이다. 유대인들은 피조물이지만 우리 민족은 하나님께서 낳으셨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유엔에서 카터 코벨(Cater Covel)박사가 증거하고 이를 공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이 문명 인류의 시원 민족인 것이다. 성경의 내용과 다른 것은 아담은 과 이스라엘 민족, 유럽인들은 피조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한국 민족은 하나님이 직접 낳은 성자이고 대제사장 민족이다. 다음에는 이 동방의 프레스트 죤(Priest Jhon)의 나라, 제사장민족이 어떤 역사의 길은 걸어왔는지 살펴보자.
제사장 나라라는 용어는 서양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밀레니엄 신드롬과 함께 서양 사회에 오랜 동안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나라의 이름이다 마르코 폴로는 그의 책 동방견문록에서 "원래 타타르인들은 웅크 칸이라 부르는 강력한 제왕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이 웅크 칸이야말로 프랑스어로 '프레스트르 장'이라 하며 세계적으로 그 강대함을 모르는 자가 없는 프레스트 존 바로 그 사람이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격전이었다. 쌍방 모두가 다수의 사상자를 냈으나 결국 칭기즈 칸이 승리를 얻고 프레스터 존은 패했다. 징키즈 칸은 승리의 기회를 포착하여 적군을 모조리 정복했으므로, 프레스트 존의 나라는 여기서 멸망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프레스트 존의 나라는 아골타가 세운 금(金)나라를 의미하는데 일설에 의하면 마의 태자의 후손 김행(金幸)이라고 한다. 김행은 스스로 신라 마의태자의 후손임을 자처했는데 그를 이어받은 후금의 누루하치(후에 청태조)는 국호를 후금(後金)이라고 칭하고 자신의 성을 애신각라(愛新?羅) 라고 하여 지금 중국공산당정권에 의 한 동북공정(東北工程)의 가장 큰 장애가 되어있다. 이렇게 세상에 알려진 제사장 존의 나라는 결국 신라이며 김씨의 나라임이 틀림 없다. 누루하치가 병자호란 때 인조를 남한산성에서 끌어내어 소위 삼전도(지금 서울 강남의 잠실)에서 항복을 받을 때 네가 조상의 가르침인 천신교를 버렸기에 징벌을 하려고 한다는 말을 하고 그 내용을 삼전도 비문에 새겼는데 그 후에 유교를 숭상한 선비족 사대주의자들이 이 비문을 없애 버렸다고 한다. 제사장 직분을 버리고 되놈들의 풍습을 따랐다는 것이었다.
신라의 천신제사는 일정기간 유지되다가 불교가 들어오자 신궁이 일본으로 옮겨질 때 함께 일본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도 팔관회를 통해 이씨조선으로 이어져 내려 왔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 제사제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살펴본다. 우리의 조상이 단군이다(일본도 터키도 같다) 그리고 단군은 제사장이다 고대의 제정일치 시대의 지도자이다. 단군 이전은 한웅이고 그 이전은 한인(하나님)이다.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시기는 마지막 빙하기 이전으로 시베리아의 마지막빙하기를 이기고 살아남은 네안데르탈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최초의 호모사피엔스인 이들 네안데르탈인이 바로 우리 조상들로 지구상에서 최초로 고개를 들고 하늘을 인식하고 제사를 지낸 사람들이다. 그래서 한국어가 원형언어이고 한국의 제사 속에 고대 제사의 뿌리가 있다. 한국어와 한글은 제사민족이 쓰던 언어이고 문자이다.

12. 부활은 없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항상 살아 있다.


자식들이 살아있고 인류가 한 명이라도 살아 있으면 나도 살아 있고 나아가 천지인 중 한 부분 즉, 우주와 땅과 인간이 살아 있으면 나도 살아 있다. 그래서 기독교의 부활은 조상들의 정신 계승으로 바꾸어야 한다.
영혼은 없다. 마음, 또는 정신이 있을 뿐이고 인간 모두가 한 생명체이므로 인간이 살아 있는 한 마음 또는 정신도 살아 있다. 그것이 자연계의 부활로써 영원히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을 버리는 것이고 인간의 힘으로 인간이 영원히 살도록 할 수 있고 그것은 예수를 이용하며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산다. 우리에게는 조상들도 돌아가시어 살아 있고 자손들도 이웃들도 동포도 인간도 한 명이라도 살아있으면 나도 살아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일은 없다.

13. 조상의 제사 제도를 부모와 하느님께 대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한국 민족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로 백인과 유대인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희생당하신 대 제사장 인 것처럼 한국인은 주로 중국과 일본인들부터 수천 년 간 고난을 받고 희생해온 제사장 민족이다. 그 제사장 전통의 유일한 흔적이 조상제사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도 제사 제도를 인정해야 한다. 한국 민족의 긴 역사를 이해하려면 몇 가지 전제에 대한 무조건 수용이 필요하다. 첫째는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처럼 역사란 강한 자, 살아남은 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한 거짓말이라는 것과 둘째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민족의 역사가 아니고 한반도라는 지역의 반도사라는 것이다. 셋째는 한국민족사의 진실을 고고학과 과학적 분석 방법으로 재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전제를 기초로 볼 때 우리 민족의 긴 역사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다음 세 가지 사실이다 첫째는 일본역사 학자 존 카터 코벨과 존 에나 코벨의 만주 인근 지하에서 1만 7천년 전(기원전 1만5천년) 인간의 유골과 탄 벼를 발견한 것과 전남 광주 거주 김희용씨가 고비사막에서 1만 4천년 전 흑피옥 유물들을 발굴한 것. 셋째는 서울대 천문학과 박참범 교수와 광운대 천문학과 나대일 교수의 고조선과 고구려, 신라, 백제의 각각 1.500여 개의 천문관측 자료(삼국사기, 삼국유사)를 기초로 컴퓨터 시물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거꾸로 도출한 고조선과 삼국의 지상 관측지점을 근거로한 각 국의 위치판단들이다.
이 책의 내용과 결론들은 이러한 최근의 과학적 자료들을 기초로 우리의 반도사가 아닌 민족사를 이스라엘민족사(구약)처럼 구성해 본 것이다, 연구 결과 얻은 결론은 잃어버린 1만년 역사를 모르고는 지금 한국인들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방향을 모르며 서구인들이나 중국인들(도치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처럼 동물적으로 살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이들에게 길과 진리,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 모든 짐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입장은 다르다 유럽이나 미국인들과 다르게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자손인 제사장 민족이고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소도경전 등을 보고 천지인(天地人)사상을 인간 삶의 길과 진리를 알고 나아가 서구 기독교인들과 다르게 자연과 우주와 내가 하나의 생멸체라는 인식으로 죽으면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자식들과 조상들을 보며 천국으로 돌아가는 제사장민족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짐을 함께 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서구인들이 만든 유일사상, 인간 중심 개인주의 특히 유대인들의 거머리 식 물질제일주의와 전쟁을 통한 통일주의에서 비롯된 영미의 힘의 우위에 의한 전쟁 통일을 지양하고 배려와 이웃돕기(홍익인간, 제세 이화, 자연 사랑)를 통한 지구의 통일이 가능한 세상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이 제사장 민족이면서도 1만년간 침략을 당하는 십자가를 져 온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1만년역사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려주신 여러 가지 탁월한 재능을 발휘할 때가 왔음을 깨달아야 한다

14.. 북한 선교는 세계 복음 화를 위한 우리의 숙명이다.


개신교 목사들과 평신도들의 타락의 정도로 미루어 한국에서의 국내 전도는 이제 한계가 왔다(전제 국민의 15-20%) 따라서 모든 전도는 그 목표를 교회 성장이나 교세 확장에 두지 말고 교회 내 구제와 북한 선교에 두어야 한다. 북한 동포들은 인본주의자들이 만든 최악의 역사적 작품으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대인(칼맑스)와 러시아 백인(레닌)이 만든 인본주의 극치의 정치 제도로 인간이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창조주 그것도 인공의 창조주를 비롯하여 자연적 창조주도 없다고 생각하는 지구 상 극악한 악인의 별종들의 지배를 받는 동포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의 지배를 받는 북한 동포들을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박정희 대통령의 결론, 미친개는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
우리가 믿는 자연의 하나님과는 유럽의 인본주의 하나님보다 거리가 더 멀다. 반면에 북한 동포들은 이씨조선 왕정의 중국식 노예 제도를 거쳐 바로 일본 황조(皇祖: 아메다라스 오오미 가미) 주의 식민치하에 있다가 계속 지배만 받아 서양 기독교의 때에 전혀 물들지 않았고 1907년 평양 대 부흥과 회개 운동의 발상지이므로 통일만 된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선교의 핵심 세력이 될 선교사들이다.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반드시 사용하실 것이고 통일도 반드시 성취된다. 목사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는 나라로 돌아오고 양심을 회복하여 기도하면 이루어진다. 북한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군사력도, 경제 지원도, 외교도, 종북도 아니고 개신교 인들에 의한 전도 밖에 없다. 이 방법만이 북한을 변화시키고 그들을 조상들의 뜻에 맞게 세계 선교의 지도자로 세우는 길이다.

15. 십일조는 없다. 헌금만 있다.


한국 교회는 목사들과 제직들을 돈의 노에를 만드는 십일조 제도를 없애고 감사헌금과 주일 헌금으로 운영해야 하고 건축헌금, 부활절 헌금 등 목적 헌금 제도도 없애야 한다. 또 교회 제정은 하느님께서 주는 데로 써야 하고 교회 증축, 학교 건립 등 인위적인 목표를 세워서는 안 된다. 특히 주의할 것은 믿습니다. 적극적인 사고 등을 기도에 포함시키는 것은 그 교회가 개인과 나라를 망칠 징조이다. 또 교회 재정은 모두 구제와 전도에 써야 한다. 예수님이 말한 대로 과부의 두 렙 돈이 귀하다. 레위의 유대교가 레위인을 영원히 잘먹고 잘살게 만들려고 만든 십일조 제도는 레위인을 통해 온 세상을 돈이 지배하는 세계로 만드는 결과가 되었고 현대 교회의 십일조는 목사들에게 유대인들과 같은 돈 귀신을 씌우는 것이다.

16. 아멘은 에굽의 아멘호텝 태양신을 부르는 것으로 기도 끝에 붙이면 안 된다.


기도 뒤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필요하지만 “아멘”을 붙여서는 안 된다. 원래 이 “아멘”이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에굽의 제18왕조 4대 왕이었고 자신들을 아라비아 사막의 미디안 광야로 인도해준, 후에 “모세”라는 이름으로 창작, 변조된 아크나톤 왕자로 후에 왕이 된 아멘 호텝의 이름에서 유래된 말로 태양신 아멘을 의미하므로 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17. 한국인에게 회개는 양심을 되찾는 것이다.


죄란 양심을 지키지 않는 것을 말하고 회개는 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한국인에게 죄는 서양 사람들의 경우와 다르다. 서양 사람들은 어두운 그러나 따뜻한 지중해 지방에서 수천 수만 년을 살아오면서 필연적으로 열매가 부족하고 식량이 부족하야 살기 위하여 물고기 또는 물론 동물들을 먹게 되고 내륙에서는 타인 또는 타 종족을 죽이고 심지어 먹어야만 자신이 살 수 있는 상황이 빈번했다. 그래서 유럽의 고대 내륙의 동굴 벽화(프랑스 알타미라, 쇼베 동굴, 독일의 크로마뇽 동굴 등)에는 인육을 먹거나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그림이 많다. 반면에 지중해 해변에서의 유럽인들의 삶은 거친 바다를 극복하고 생선을 잡아야 살수 있는 생존 환경으로 살기 위하여 인간의 힘이 필수적인 조건 즉 인본주의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조건이 형성되어 왔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스나 로마의 고대 신들은 모두 사람의 형상이다. 유럽인들에게 죄는 살기 위해 아시아인(주로 고조선 12 연방국)에 비해 일찍 인간 집단을 형성하고 인간끼리 죽이는 살육 전쟁이 먼저 생기고 식인 풍습이 생긴 것 같다. 유럽인들의 죄는 어원이 헬라어로 하말티아즉 빗 나간 화살을 의미한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고조선인들 보다 환경 극복을 위해 훨씬 먼저 죄를 인식했고 이를 면하기 위해 인신공양과 희생제사를 드린 것으로 보인다. ( 히 9:22 피 흘림이 없은 즉 죄 사함이 없느니라)
반면에 한국인에게 죄란 자연의 질서를 거스리는 것과 천리에 따르지 않고 즉 양심에 의하지 않고 인간의 힘과 의지로 인간 집단을 만들고 인간의 수를 늘이며 인간끼리 생존투쟁을 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세속(世俗)이라고 부른다. 한국인에게 죄는 한 마디로 양심에 거리끼는 것을 말한다. 서양 사람들은 살기 위해 양심이 화인 맞아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을 받아야 하나 한국인의 의인은 오직 양심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고 양심대로 살았는데 결과가 나쁘면 한이 맺히는 것이고 한국 민족의 역사는 한의 역사이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한 맺힌 삶을 살았다면 한국은 민족적으로 한 맺힌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인은 서양의 편익 문명이 들어와 기반을 잡고 동화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야 죄에서 구원을 받는다.
한국인에게 죄란 나를 만들고 유지시켜준 삼신에게 폐를 끼치거나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을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자기 자신과 조상, 후손을 비롯하여 타인과 자연, 그리고 우주와 시간에게까지 해를 입히거나 마음을 쓰지 않거나 양심대로 하지 안는 것으로 서양인들 보다 훨씬 엄격하다.

18 성령에 순종하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다.


성령이란 본래 하나님의 영, 거룩한 영, 예수의 영을 의미하는데 서양의 하나님과 우리의 하느님이 다르고 예수님의 의미도 다르므로 당연히 성령의 의미도 다르다.
서양에서는 사람이 영혼육(靈魂肉)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죽은 사람의 영이 유령이 되어 나타나며 산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사람이 정신(精神)과 육체(肉體)로 구성되었으며 죽으면 혼백이 있어 귀신이 되고 이 귀신은 산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고 한다. 우리 한국에 귀신이라는 말이 들어온 것은 기언 후 4세기 경 불교가 중국에서 들어올 때 함께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영이라는 개념은 서양과 중국의 인본주의 사상에서 들어온 개념으로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것이다. 따라서 성령이라는 말도 우리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비슷한 한국어 표현으로 마음, 넔, 얼이라는 말이 더 이해하기 쉽다. 인본주의 민족에서 영이라는 말이 죽음과 연관되어 나오게 된 것은 그들에게 필연적인 죄와 관련이 있고 억울한 죽음으로 모는 빈번한 죄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용어로 보인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나니(롬5:12-21)....
성령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정확한 해석으로 예수와 같은 착한(더 나은, 더 남을 위하는) 마음이 될 것이다.

19. 결론


한국교회가 가장 시급히 고칠 점은 목사들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즉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신 것은 지금까지 자연의 유일신인 하느님께서 죄로 여기시던 인간문명을 인정하시고 그 죄를 사하시려고 우리에게 오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신구약 성경 중에서 예수님의 공생애만 믿고 가르치고 전도해야 하며 유대인과 백인들이 자신들 위주로 만든 하나님, 주, 안식일등의 잘못된 용어와 개념을 찬송가와 사도신경, 기도 등 교회 예전에서 빼고 일상 생활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만 메시아고 진실이니 믿으라는 것이다. 거짓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 말도 잘 믿는다. 따라서 우리 한국인들은 하느님아버지를 바로 알고 신구약 성경 중에서 예수님의 공생애만 믿고 가르치고 전도해야 하며 유대인과 백인들이 자신들 위주로 만든 하나님, 주, 안식일등의 잘못된 용어와 개념을 찬송가와 사도신경, 기도 등 교회 예전에서 빼고 일상 생활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만 메시아고 진실이니 믿으라는 것이다. 거짓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 말도 잘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