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한국 민족의 특징

가. 오랜 역사

한단고기에 의하면 한민족은 2015년 현재 69.095년의 역 년을 유지하고 있고 시베리아의 하늘에서 건국했다고 했는데 이는 "한국인의 80%가 북방계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현대의 과학적 검증결과와 일치한다. 그래서 우리가 바로 바이칼 창시자 효과를 겪은 시원 언어를 가진 시원 민족(카터 코벨의 부인 안나 코벨의 보고로 유네스코에서 1992년 평가)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는 약 7만 년 간 부모에 의해 자식이 키워졌다는 의미이고 이 혈통 유지로 인해 지성과 감성이 지구상에서 최고 수준인 민족이라는 점이다. 2014년에 실시한 세계의 IQ 검사 결과 한국인이 1위, 북한이 2위, 이스라엘인이 3위로 나타났음이 이를 증명한다.

나. 자연 주의

박재상의 부도지에 의하면 한국인은 처음에 지유(地乳)만 먹고 살았

다고 했다. 이는 비록 한자(漢字) 표기지만 지유(地乳)는 땅에서 나는 젖이라는 의미이고. 나무에 붙어있는 열매가 아니고 떨어진 열매라는 뜻이다. 떨어지지 않는 과일은 자연을 해치는 것임으로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성경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창세게 2:17)와 같다. 한국인들은 자연을 너무 사랑해서 나무에 붙은 실과를 먹은 것도 죄악시하였다. 하물며 4대강 문명의 농경이

랴!!! 한국인은 인류 언어를 창조한 당시부터 자신들이 자연에서 나왔고 자연이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알았으며 창조주인 유일신도 자연의 유일신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은 서로 연결된 생명이므로 자연을 해치면 안 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인간이 땅을 파고 농사짓는 것은 자연을 해치는 것이므로 죄악시했고 농경 집단이 자연 집단을 해치는 것을 성경에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사례로 들었다. 지금 인간이 편익을 위하여 농경 문명 시절부터 문자를 만들어 정보교환을 하면서 인간 집단을 키우고 도시를 만들고 과학을 발전시켜온 것은 자연을 해치는 것이므로 우리 한국인에게는 죄악이다. 성경에서 말세는 여기에 기원하고 미래 학자들의 지구 멸망 이론도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어 문자를 가지고 산 것은 6천 년 밖에 되지 않지만 자연에서 진화한 것은 한단고기의 기록만은 보더라도 거의 7만 년에 이른다. 아무리 과학이나 의술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수명과 건강을 유지하고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지 못한다. 자연주의는 인본주의와 다르다. 인간이 자연에 의존한 기간은 영원, 장구하고 인간 문명에 의존한 기간은 6천 년이다. 인간이 언어에 의존한 기간은 7만 년이고 문명에 의존한 기간도 6천 년이다. 인간의 수명, 체질, 건강 등 은 모두 전자에 속한다.

자연과 함께 오래 살면서 자연에 적응하고 자식을 가르치고 집단 생활을 하면서 인간에게 자연이 준 가장 큰 선물은 인간이 자연과 다른 인간에게 하는 행동의 기준인 소위 양심이다.

다. 샤머니즘

한국 민족은 언어 시대의 민족임에도 문자시대의 관점에서 배워 왔으므로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인은 언어 폭발 이후에만 해도 6만 년을 자연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자연 친화적인 체질, 언어, 심성, 정서, 감정을 가지고 자연과 우리가 하나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서양인들이 흔히 부르는 샤머니즘을 가지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닮기를 원하고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생각이 샤머니즘이다. 동양인들의 귀납적인 사고나 한국어의 교착어도 이 샤머니즘에 근거한다. 바이칼에서 시작한 한국민족의 이동과 농경 시대의 영토 점령(고조선의 경우) 및 마지막으로 한 반도를 살 곳을 삼게 된 것도 이 샤머니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의 언어, 사고, 정서, 감정, 체질도 이 샤머니즘을 알아야 한다.

라. 한민족의 삶의 터전과 건강

언어 시대를 포함하여 우리가 살아온 삶의 터전은 바이칼에서 1). 따뜻하고 밝은 곳을 찾아 남하한 것과 2) 홍수를 피해 산 위에서 살아온 것과 관련이 가장 많다. 이동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보면 창시자

효과(약 7만 년 전) 이후 홍수 전 까지는 시베리아에서 남하하는 과정이었고 기원전 만4천년 전부터 기원전 8천 년 전까지는 비와 홍수 때문에 산 위에 살았다. 원래 한국이었던 시절 한국인들은 홍수가 시작된 기원 전 만 4천년 경부터 삼한으로 나누어 졌는데 모한(마한=막한)은 본래 위치에 번한(반조선)은 중국에 진한을 고비사막, 타림분지, 신강성, 청해성을 따라 양자강 상류까지 남하했다가 양자강을 따라 해안으로 나와 상하이 인근에서 지역 네안데르탈인 및 해양을 따라온 페르시아, 인도인들과 섞였고 여기서 장강 문명을 만들었다. 이들이 중심이 된 진한인들이 나중에 신라가 되었다가 기원후 500년 신라 지증왕 때 마한 지역이었던 한반도로 피난을 옴으로써 처음으로 삼한 중 2한이 합쳐졌다. 한국인들은 중국과 일본인들과는 다르게 홍수 기 이후 1만 6천 년간 주로 산 위나 강가에 살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나라 이름을 금수강산(중국인은 강호), 팔도강산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의 언어나 몸도 식성도 여기에 맞추어 발전해 왔다. 우리가 쌀을 먹기 시작한 것은 5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공부나 하면서 거드름을 핀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민족

은 오랜 동안 산에서 가축을 키우면서 잡곡과 약초를 포함한 나물을 먹고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도 건강 보약으로 그것들을 찾는다. 장수하려면 산으로 간다. 산삼을 비롯한 모든 약초도 산에 있으며 엄마들은 출산 후 염소 고기를 먹는다. 고개를 넘어 많이 걷고 힘을

써야 오래 산다. 우리가 산에서 와서 살았고 산으로 간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이 많다. "돌아가셨다" "묘(뫼=산)를 쓴다" 등이다. 산을 말하는 원시 언어 중 아직 살아있는 어휘는 메아리, 메뚜기, 맷돌, 메 부리 등이다. 그래서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다.

마. 인본 문물 500년+120년

인본주의 문물이 우리 샤먼민족에게 들어온 중죽에서 들어온 이씨 왕조의 500년과 해방 후 지금까지 120년 도합 600년을 말한다..

바. 기타 한민족의 특징

- 가족(家族)과 사회(社會)

한민족은 고대로부터 가족으로 구성되었으나 유럽이나 농경 지역은 사회로 구성되었다. 가족은 자연에서 주는 것에 만족하고 살아왔지만 사회는 인위적으로 식량을 만들어 인구를 늘이고 농사지을 땅을 넓히기 위해 힘을 키워 왔다. 그래서 농경사회나 서구 봉건 사회는 억압과 수탈이 있었고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왕과 계급을 비롯하여 엄청난 법과 제도가 있어왔으나 한국에는 이조 이전까지 자연에

서 가족끼리 효와 예의만 있으면 자연스럽고 평화스럽게 살았다. 양심만 있으면 중분했다. 그래서 사회에서 출발한 서구 시민사회,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는 자연이 인간에게 준 양심의 범위를 넘지 못한다. 자칫 인간이 만든 권력과 돈을 우선시 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사회제도라고 하더라도 탐욕을 목적으로 한다면 한국에서는 양심의 잣대를 넘어서지 못한다. 이것이 2014년 현재 그릇된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한국에서 통하지 않는 이유이다. 숫자(국회의원)와 힘(중국, 미국, 일본, 북한)과 돈(재벌, 미국. 중국, 러시아)은 이 한국인의 양심을 이기지 못한다.

- 양심(良心)과 비(非) 양심(良心)

4대 강 문명에서 시작된 인본주의 문명 사회는 인간집단의 편익과 번식을 위한 역사를 추구해서 양심이 없거나 점차 소멸되어왔으나 샤머니즘 사회는 자연을 닮아 착하고 선한 양심을 유지해 왔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서양문명과 농경문명 민족은 양심을 별로 개의하지 않는다. 이익 추구가 우선이다. 이조시대에는 중국식 농경 문명의 비 양심이 5백년간 한국인은 물들였고 현대는 서양의 비 양심이

한국에서 판을 친다. 정치인과 호남사람들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기업인들은 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한국의 부모들은 조상들이 물려준 방법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착하게 자라라고...

- 외침(外侵)과 피침(被侵)

우리나라는 한문(漢文) 기록에 의한 역사가 생긴 이후 5천 년 간 약 972회의 외침이 있었다. 5년에 1회 꼴이다. 반면에 타국을 침략한 작은 없다. 공자의 6대손 공부(孔府)는 평하기를 "조선은 강한 군대를 가졌으나 남을 침략한 적이 없다"라고 했다. 왜 이러한 피침(被

侵)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중국인들처럼 농토 확보를 위해 침략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시왕 때 기록을 보면 "묘족(苗族)은 진나라 군대가 공격하면 바다 쪽으로 도망을 갔다"고 쓰여 있다. 수 만년 동안 자연에서 먹을 것을 찾아다닌 습성 때문이다. 국가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남의 것을 뺏을 필요가 없었으므로 중국은 72회 왕조 교체가 있었으나 우리는 7회 뿐 이었다.

- 인격적 유산

서양과 중국의 인본 문명은 후손들에게 물질적인 유산을 많이 남겼으나 우리 조상들은 수 만 년 동안 이렇게 자연과 함께 인간끼리 서로 싸우지 않고 살아오면서 아주 중요한 정신적인 유산을 남겨주었다. 바로 홍익인간의 정신과, 예의 범절을 비롯하여 백의 민족의 전통이 그것이다. 이러한 정신적인 유산은 게르만인, 인도인, 중국인, 일본인 등 그 어느 민족에게도 없다.

- 홍익인간의 정신: 홍익인간의 정신은 지구상 어느 민족의 국시에서도 불 수 없는 정신이다. 이스라엘처럼 "잘먹고 잘 살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 복 받아야 한다" 정신, 또는 인본주의 정신, 민족 우선 주의 정신은 있어도 세상 인간들을 두루 이롭게 한다는 정신은 없다. 우리 조상들에게 이 정신은 농경을 시작한 한웅 시대에 이미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한인 시대에는 농경을 위한 인간의 집단 생활

을 죄악시했으나 한웅 시대에 1) 국호를 "벼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볏알님= 배달(倍達)이라고 하고

2) 기원 전 2.600년 경 제 14대 한웅인 치우 천왕이 중국의 농사를 위한 철제 농기구를 제작하고 중국의 전체 광경을 개척한 것으로 미루어

홍익인간의 정신은 서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서로 사랑하라"는 교훈을 주기 1.900년 전에 한국에서 먼저 생겼다.

- 예의 범절

한국인이 일본을 제외한 중국인과 서양인들에게 하는 일반적인 욕은 "예의 범절이 없다" 는 것이었다. 서양 사람들은 촌수도 경어도 없다. 그들은 극존칭으로 우리말의 "십시오"를 흉내 낸 듯한 "Sir"라는 단어만 사용하고 중국인도 비슷한 발음으로 말한다. 공자는 "조선인들은 길도 서로 양보한다" 라고 했다. 오죽했으면 중국은 유교를 통해 예의 범절을 가르칠 정도일까?

- 백의 민족

외국인들은 우리 민족을 백의 민족이라고 불렀다. 2천 년대에 들어와서 색깔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졌지만 해방 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온 서양인들의 눈에는 흰옷만 보였다. 옷은 피부를 보호하는 기능과 사람끼리의 접촉에서 청결을 유지하는 기능이지만 흰옷은

자주 빨아야 하고 주변까지 깨끗해야 하므로 유대인들의 구약 민수기 19장과 레위기 12장-16장의 그 복잡한 정결 의식을 대신하기에 충분하다. 유대인들은 한국에서 페르시아(12연방 중 비리국)를 거쳐 나간 장사꾼들 가지로서 여러 곳을 다니므로 좀 더 상세하게 기술한 것 같다. 한국의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좀더 단순하고 쉽게 정결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오래 전부터 흰옷을 입으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 체질과 식성

한국 민족은 약 7만 년 전에 바이칼에서 창시자 효과를 경험한 이후 줄 곳 산에서 살아오면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왔고 체질과 식성도 그렇게 변화해 왔다. 요동성 인근 1만 7천 년 전 유골의 유전자 분석을 근거로 홍수 이전인 기원전 14.000 전까지는 수명이 약 1천 년일 것으로 판단하는데 이 분석 결과는 역대 한인의 재위 기간 300-500년과 연관이 있고 성경 창세기의 노아 이전 인간의 수명과 일치하고 한웅 시절의 150 여년의 재위 기간도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므로 원동중 저 한단고기 삼성기 전 하권의 기록을 믿을 수 있다.

한국 민족은 홍수 기간에 홍수를 피해 산 위에 있었을 것이며 따뜻한 곳을 찾아 산맥을 따라 남하한 것으로 보인다. 진한의 경우는 홍수 이후 양자강 상류에 나타나 양자강 하류 상해 인근에서 뱃길을 따라 이동해온 물길 족(인도, 페르시아인)들과 섞였을 것으로 보이

나 마한 인들은 계속 흑룡강, 송화강, 요하를 따라 산맥으로 남하 한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이 황해 연안지역으로 축소 된 이후에 신라에 의해 한반도에 정착하고 고려를 거쳐 이씨조선이 될 때까지 한국민족의 체질과 식성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바다에서 나는 생선은 약 2400년 전부터 먹었다. 2) 쌀(밥)을 주식으로 한 지는 600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다. 3) 본격 적으로 부식으로 집단 재배 채소(배추, 상추)와 가축 고기(소, 돼지)를 먹은 지도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4) 따라서 한국인의 건강과 체질 강화를 위해서 산에서 나는 자연식과 산에서의 삶은 필수 불가결하다. 산에서 나는 자연식은 콩이 들어간 음식과 산 약초와 산나물이고 피해야 할 음식은 밥과 생선이다. 산에서의 삶은 산림욕과 고개를 넘는 것이고 산에서 사는 것이며 다리와 팔, 어깨 운동이다.

- 정서

서양 사람들의 노래는 모두 짝짓기에 관한 것이다. 반면에 한국인은 나의 살던 고향과, 부모형제에 관한 것이다. 서양 노래의 주제는 도시이고 우리는 산골이나 섬, 강과 산이다. 우리는 평화를 좋아하지

만 서양과 중국은 이기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인정을 선호하고 자식들에게 "착하고 바르게 살아라" 하고 가르치지만 4대 문명 출신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성공하고, 잘먹고잘살고 돈 많이 벌고 자식 많이 낳고 복받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