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약의 정경화 과정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 출현 이후 60년이 지나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게 예루살렘이 멸망하자 남은 유대인들이 날로 확장해가는 예수의 새 종교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살 길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들의 경전 중 예수와 관련이 있는 내용들을 추려 정경으로 완성하고 이를 신약과 함께 성경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신약은 초대교회 교세의 전 유럽 지역 확장과 더불어 교육의 필요성에 따라 예수의 생애와. 교훈, 기적, 비유 등을 복음서에 포함시켜 정경 화되다가 점차 바울 등 예수그리스도 추종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예수 언행과 원 사도의 전승 분석 결과를 바울의 서신과 요한복음, 요한 1,2,3 서, 베드로 전후서. 야고보 서, 유다 서 등으로 추가시켰고 그 후에 비 그리스도 유대인들이 얌니아 회의를 통해 구약과 합치기로 합의했으며 로마 공 교회 화 결정이후 그리스도 교도들이 교세의 확장을 위해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을 원 사도와 바울의 이름으로 기록했다.

* 예루살렘 함락
이 전쟁은 기원 후 66년에 발발했는데. 그리스계 로마인과 유대인 사이의 종교적 분쟁에서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기원 후 70년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우고 유대인 저항군을 진압함으로써 끝이 났다. 이 유대인 반란의 패배의 결과로 유대인은 자신의 국가를 잃어버리고 흩어져 로마 제국의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되는 디아스포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얌니아 회의
얌니아 회의(Council of Jamnia)는 기원후 90년경에 있었던 회의로 생각된다. 예루살렘 멸망 이후 랍비 요하난벤 자카이가 팔레스틴의 얌니아에 세운 학교에서 유대교인들이 구약을 완결을 시겼다는 전승이 오늘날 구약성경 정경화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발단은 예수에 관한 경전들이 많이 나오는 것에 자극을 받은 유대인들이 경전의 마감을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묵시 경향을 띤 유대교 분파와 바리새파 간에 벌어진 논쟁이 직접적인 동인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이 때 정경에 주로 포함된 구약 성경의 원류에 해당하는 유대인의 성경 타나크는 대략 B.C. 1500~400년대 사이에 오랜 세월을 거쳐 바벨론, 블레셋, 이집트 등의 지역에서 낱권들로 기록된 경전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서, 오랜 세월을 거쳐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는데, 본 얌니아 회의를 통해 현재의 분류과 확립되었다.

7. 성경 이후 유럽 2천 년
가. 기원 후- 중세
로마 공화정은 기원전 509년 성립하고 기원전 1세기경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로마 제국이 된다. 기독교는 기원후 4세기에 로마 제국 국교가 되고, 6세기에 중요 도시였던 로마, 콘스탄티노플, 안티오크,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에 5두 주교 체제를 구성한다.
앗틸라가 이끄는 흉노(훈족: 조선인들)이 발틱3국의 선주 게르만족(아리안 족과 토착민들의 혼혈)을 공격하여 게르만의 대 이동이 시작되고 창궐하던 페스트 등 전염병으로 인해 로마 제국은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분열된다. 이후 서유럽은 중세 시대가 열린다. 비잔틴 제국은 동쪽에서 문명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유지한다. 451년부터 지속되던 분리 상태에 1054년 교회의 대분열이 더해지고 이어서 서방에서는 무슬림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동방으로 십자군을 보낸다. 1200년 경 몽골의 침략과 흑사병으로 인해 봉건 사회는 점차 와해되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함락되지만, 유럽은 신대륙을 1492년 발견한다. 유럽은 고전 문화의 재발견을 통해 중세 시대에서 깨어났다. 마틴 루터가 교황 권위를 공격하며 르네상스는 종교 혁명으로 이어졌다. 30년 전쟁, 베스트팔렌 조약, 명예 혁명은 팽창과 계몽의 시대의 주춧돌이 되었다.
나. 근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혁명은 생산력을 증가시켰다. 미국은 독자적인 정부를 세우면서 영국에 독립했다.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를 내세운 프랑스 혁명은 유럽 대륙의 정치 변화에 불을 지폈다. 이후 나타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815년까지 전쟁을 통해 유럽 대륙을 정복하며 사회 구조를 개혁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선거권을 가졌고 사회주의자와 노동자 조합이 형성되어 갔고 혁명은 1848년에 잇따랐다.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는 농노제가 1848년에 사라졌다. 러시아의 농노제는 1861년에 사라졌다. 발칸 반도의 국가들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재차 이루었다. 1870년부터 1871년까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후에 공국의 집단이 모여 이탈리아와 독일이 형성되었다. 제국이 되어 지구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분쟁은 결국 제1차 세계 대전을 터뜨렸다. 전쟁의 절망에서 러시아 혁명은 사람들에게 '평화, 빵 그리고 토지'를 약속했다. 독일은 패배하였고,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경제적 파탄을 맞았다.
다. 현대
전 세계에 걸친 대공황 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 파시즘에 맞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승리 이후 냉전이라는 새로운 체제가 자리잡는다. 소련의 철의 장막에 의해 분리된 서유럽은 자유 무역 지역을 만들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무렵, 유럽 연합이 만들어졌다. 그 이후 징병제였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병역 제도를 모병제로 바꾸기에 이른다.
라. 백인의 유산
유럽인은 수 만 년간 어둡고 온난하고 어두운 지중해성 기후에서 식물 식량이 부족하고 해양에서 인간의 힘에 의존하여 살아온 환경으로 인하여 유전적으로 육식을 좋아하고 빛은 선호하며 완력이 강하고 귀가 밝으며 언어적으로는 도치어, 수동태, 격의 발달, 시제의 발달이 특징이며 습관적으로 희생제사, 밤에 일하는 것, 피를 좋아하는 것, 인신 공양, 분석적 사고, 의학과 과학의 발전, 살육, 전쟁, 음악 선호 등 특징이 있고 성경을 쓴 유대인들도 이들의 이러한 생리적, 언어적 특징과 습관을 구약 성경 기록에 많이 반영하였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가장 강한 신, 큰 신 갓“(God)로 표현 한 것 또 ”태초에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있다” 창조 순서에 인간의 피로를 고려하여 안식일을 만든 것, 우리들(하나님들)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든 것. 남자를 창조에서 우선 시 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마. 수메르의 유산
유대인인 아브라함은 아람인으로 수메르의 가지 에벨을 조상으로 하고 있어 수메르의 특징인 인본 주의적 특징을 그대로 이어 받았고 이것 역시 구약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즉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 주인과 종이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계급사회를 만들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해야 하며 인간의 자손은 식량을 확충하기 위해 지구상에서 무한대로 늘어나야 한다는 것,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남의 땅과 재산을 빼앗는 것. 기복신앙. 식민 정책, 등이 그것이다.
바. 유대인(주로 레위지파)의 유산
돈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선민의식, 정보 조직과 정보망 확충에 밝음, 인간을 돈으로 회유할 수 있다. 힘을 가져야만 타인을 지배할 수 있다. 먹을 것을 통제하면 타인을 지배할 수 있다. 돈으로 돈을 만들고 그 돈은 힘이다, 나라가 없어도 돈 만 있으면 된다. 모든 기술(의학, 건강, 과학)기술의 장악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세계의 에너지를 통제하면 타민족 통제가 가능하다.
사. 요약
아리안 족과 수메르 계 유대인들에 의해 개화된 유럽인 사회는 처음에는 수메르의 인본주의적 유일신과 재물 지상주의의 영향으로 봉건화(노예, 지주의 계급제도)되었으나 기독교의 전파로 점차 자유화되다가 게르만 대 이동으로 민족이 형성된 이후 기독교가 종교개혁으로 더욱 민족화 되고 민족주의적 기독교는 결국 민족 이기심으로 발전되어 지리상 발견, 산업혁명이후에는 식민지 개척을 위한 전쟁으로 발전되어 그 후 대규모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다. 반면에 산업혁명 이후 개인의 이기주의도 더욱 발전되어 프랑스 혁명, 미국의 독립, 1, 2차 세계 대전은 유럽의 이러한 역사적 토양 아래에서 발발되었다.
2천 년대에 들어온 지금에는 동방 조선이 중심이 된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자연주의 유일 신관과 힘으로 인간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인본주의 유일 신관이 대립하고 있고 개인적인 이기심도 만족과 불만족 민족 사이에서 중화가 이루어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성경은 유럽의 집단이기주의와 개인 이기주의 모두에 영향을 미쳤고 과학과 의료의 발전에는 기여했으나 계급사회와 인종차별, 자연 파괴의 폐습을 현대 사회에 물려주었다.

IV. 유럽 역사의 얻을 것과 버릴 것
가. 얻을 것
1) 잃었던 하느님 찾기
기원 전 7-8천년 경 한웅 조선 이후 중국 화하 족(황하 족)의 인본주의(황제 헌원의 농경문명과 한자문명을 말함) 문명의 침략으로 잃어버렸던 한국인의 조상들의 하나님을 서양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되찾아야 한다.
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천손 선민 의식 회복
이 천손 선민은 윤치영 장로(고종 때 외무대신)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지은 최초 애국가 가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천부경, 삼일신고, 단기 고사등 모든 한국인들의 조상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가사 제정은 오랜 기간 민족 속에 살아있던 정신이 되 살아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단시 조선의 정신은 비록 서양 문물에 점령을 당했으나 살아 있었음을 의미한다. 2013년인 지금도 한국은 서양 문물에 점령당해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민족 정신 속의 하느님을 찾는 것이 첩경이다. 야만 족인 서양인들이 우링늬 하느님을 찾아 개화되고 선진 된 문명 사회를 만들었는데 우리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인본주의 문명에 젖은 점을 인정하는 전재 아래에서 예수를 믿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최초 애국가 가사
애국가의 가사는 윤치호. 안창호 등이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나 어느 것도 공인되지 않았고 현재까지 작사미상으로 남아 있어요. 본래 애국가 가사의 첫 절은
■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수려 동반도는 우리 조국일세 라고 되어 있었는데 도산 안창호가 하루는 서울서 내려온 교장 윤치호를 보고 이 가사가 적당하지 않으므로 고쳐서 부름이 좋겠으니 교장께서 새로이 한절을 지어 보시라고 청하자 윤치호가 도산의 의중을 다시 물으니 이에 도산께서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라는 구절을 보여주자 윤치호기 기뻐하며 찬성하자 도산이 이를 당시 교장인 윤치호가 지은 것으로 발표하자고 제안하여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는 설도 있구요. 또한 4절 첫구절도 원래는
■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임군(임금)을 섬기며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였으나 1919년 상해에서 이를 지금과 같이 고쳐 부르기 시작하였고
이 또한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개사 한 것으로 추정 되고 있다